문화/생활

“브리핑 때문에 현재 그림이 전시된 정론관(출입기자실)에 자주 오가곤 하는데 바쁜 업무 때문에 사실 그전(삐삐프로젝트 진행전)에는 그림이 있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눈에 그림이 확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건조하고 삭막하게만 느껴졌던 곳이었는데 벽에 걸렸던 아이 그림(시즌1 이상선 작 ‘兒孩-날으는 들꽃’)은 신선한 충격어었어요. 함께 그림을 감상하던 기혼 여직원들은 ‘집에 있는 아이가 생각난다’고
말하기도 했고요.
그 순간만큼은 업무를 잠시 잊고 평소 인사만 나누던 보좌관들과도 그림을 보며 얘기를 나누는 기회가 됐습니다. 전현희 의원(민주당)님은 업무 중 머리가 복잡할 땐 일부러 그림을 감상하러 내려가기도 했어요.” 전현희 의원 비서 조아라(30)씨의 말이다. 그는 “그림 하나로 공감대를 형성해 좋았다”면서 “다음엔 어떤 작품이 전시될지 벌써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국회 방문객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국회의회방문회 소속 김태일(38)씨도 “독특한 작품들이 많아서 보는 재미가 있고 갤러리나 전시회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작품들을 근무하면서 볼 수 있어 좋다”면서 “무엇보다 국회 방문객들이 국회본청에 들어서 그림부터 감상하는 것을 보니 그냥 지나치던 때와는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진 것 같다”고 전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입구와 정론관 입구 안쪽에선 문화예술 기획 ‘삐삐(pP)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시즌별로 테마를 달리해 진행하는 ‘삐삐프로젝트’는 지난 3월 9일부터 시작해 어느덧 세번째 시즌을 맞고 있다. 내년 3월 13일까지 1년에 걸쳐 시즌별 ‘초심’ ‘도시산책’ ‘투덜투덜’ ‘마음에 새기다’ 등 4개의 주제 아래 작가 16명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회다. 현재는 양은혜, 장석준, 임수식, 황은화 작가의 작품 등이 전시돼 있다.
삐삐프로젝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간인 대한민국 국회를 국민에게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인 동시에 꼭 가보고 싶은 장소로 만들어보자’는 소박한 애국심에서 비롯됐다. 아이디어는 재단법인 예올 전 사무국장 이정화(50)씨로부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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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의사당 시계탑 빅벤은 영국 역사와 전통의 상징으로 영국 여행의 필수코스입니다. 노만 포스터 경의 투명한 돔 건축으로 유명한 독일 의사당은 독일 문화관광의 명소이고요. 미국 국회도서관은 세계 최대의 도서관으로 연구기관뿐 아니라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개최하는 문화기관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회는 이렇다 할 만한 상징이 없어 안타까웠죠. 그래서 우리 국회도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장소로 꾸며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곳곳이 갤러리로 변하고 있는데 정작 문화강국을 주창하는 국회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소박하지만 어쩌면 결코 소박하지 않을 수 있었던 바람은 국회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서미경(42) 수석전문위원을 통해 권오을 국회사무총장에게 전달됐다.
“우연히 저녁식사를 하며 ‘프로젝트의 하나로 먼저 국회의 빈 벽에 촉망받는 젊은 작가들의 그림을 전시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얘기하니 서 위원이 ‘좋은 생각’이라며 바로 국회사무총장께 제안하겠다고 하셨어요. 그래도 국회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생각해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었죠.”
하지만 프로젝트 제안서를 검토한 권 사무총장은 망설임 없이 “삐삐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 권 사무총장은 이와 같은 결정에 대해 “발상의 전환이 마음에 들었다”며 “한편으로는 국회도 두드리면 열리는 곳이라는 것, 그리 벽이 높지
않다는 것을 프로젝트 기획자들과 젊은 예술가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3월 9일 국회 본관 입구 좌우, 정론실 좌우측 빈 벽엔 이전 국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과 주제를 담은 그림들이 걸리기 시작했다.
시즌Ⅲ로 작품을 교체하던 지난 10월 12일, 오가며 작품을 감상하던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몇몇 여직원들은 빨간 원색 바탕에 빈 의자를 그린 황은화 작가의 작품을 보며 “빈 의자에 앉아서 쉬고 싶다”며 푸념했다.
어떤 직원들은 ‘휴지를 둘둘 말아 그렇게 눈에 붙이고 다니면 좋으냐’라는 제목이 붙은 양은혜 작가의 작품을 보곤 웃음을 참지 못했다. 큐레이팅을 담당하는 문화예술기획자 이소연(45)씨는 “이제는 작품 교체하는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설명한다.
“처음 기획의도는 국회의 빈 공간에 예술옷을 입혀보자는 것에서 출발했지만, 궁극적으로는 문화의 힘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는게 삐삐프로젝트 참여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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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삐삐프로젝트가 빛을 발하는 건 기획자, 큐레이터, 16명의 참여 작가들 모두 도네이션(기부) 개념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림 한 점을 보면서 감동하고, 잠깐이나마 정쟁에서 시선을 돌려 쉬어갈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는 것에 뜻을 같이했다.
갤러리가 아닌 열린 공간에서의 전시는 자칫 작가들에게는 모험일 수 있지만, 오히려 ‘국회 전시’라는 이유 때문에 전시를 결정했다는 작가도 있다. 장석준(29) 작가는 “전시를 목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림을 걸었다”고 말했다.
시즌Ⅱ에 참여한 서윤희(43) 작가는 “운반에서부터 그림을 걸기까지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것과는 진행부터가 달랐지만, 기획의도가 좋았고 작가로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전시라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즌Ⅰ에 참여한 채성필(39) 작가는 “국회라는 가깝고도 먼(?) 장소에서의 전시가 일반인들과 소통하는 다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참여하게 됐다”면서 “국회라는 공간이 대한민국의 또 하나의 대표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현재 전시된 작품들은 방문증을 받은 국회방문객들이나 국회 직원들에 한해 관람할 수 있다.
서미경 수석전문위원은 “프로젝트P는 대한민국 국회가 문화예술의 후원자가 된 첫번째 프로젝트”라면서 “앞으로 전시공간이 넓어져 일반 국민도 ‘국회에 전시를 보러 간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프로젝트가 국회뿐 아니라 다른 공공영역으로 확장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글·박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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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