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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허재 형 봤죠? 내가 먼저 해냈어요




강동희 감독은 프로 원년인 1997년 기아(현 모비스) 선수로, 2007~2008시즌 동부 코치로, 그리고 이번에 동부 사령탑으로 정규리그 정상에 올랐다.

이달 초엔 역대 사령탑 중 최단경기 1백승(8백42일)을 달성했다.

부산 KT 전창진 감독이 TG삼보(현 동부) 시절 1천91일 만에 이뤘던 종전 기록을 갈아치웠다. 중앙대를 거쳐 기아 엔터프라이즈에서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활약하며 ‘코트의 마법사’로 불렸던 강 감독은 이제 지도자로 새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강동희 감독은 중앙대 시절(1986년 입학)부터 지금까지 허재 현 KCC 감독과 가장 절친한 사이다. 허재 감독은 ‘농구 대통령’으로 통했던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며 KCC 사령탑으로 챔피언전 우승 두번, 준우승 한 번을 일궜다. 허 감독은 지난 시즌에 강 감독의 동부를 챔피언전에서 4승 2패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KCC를 7시즌째 맡으면서 정규리그 2백승도 돌파했다. 이런 허 감독도 아직 정규리그우승은 맛보지 못했다.


강 감독은 이번 정규리그 우승 후 “허재 형도 못해본 걸 제가 벌써 해봤으니 형이 부러워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송도고를 다닐 때부터 용산고의 허재를 본보기로 삼았다. 득점력을 앞세운 전천후 플레이를 하고 싶었다. 팬들은 ‘선수 강동희’를 예전 NBA(미 프로농구) LA 레이커스의 매직 존슨 같은 명 포인트가드로 기억한다.

중앙대 3학년 시절의 강동희는 평균 27득점을 올려 슈팅가드에 가까웠다. 당시 허재가 졸업하고 실업팀(기아자동차)으로 갔던 상황이라 자연스럽게 주 득점원 역할을 했다.

강 감독은 중앙대 선배인 한기범, 김유택(현 중앙대 감독), 허재가 뛰던 실업팀 기아 유니폼을 입은 후에도 한동안 득점력을 높이는 훈련을 많이 했다. 슛을 던지기가 어려운 상황을 가정해 자유투라인에서 훅 슛을 하거나 백보드 상단을 맞춰 림 안으로 공이 들어가게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또 경륜이 쌓이면서 어시스트에 매력을 느껴 다양한 패스를 갈고 닦았다. 비하인드(behind) 백패스, 노룩(no look) 패스처럼 상대 수비의 눈을 속이는 묘기는 기본이었다. 수비가 가장 막기 어려운 타이밍과 위치를 찾아 동료에게 공을 연결하는 기량을 발전시켜 나갔다. 수비 선수의 귀 옆쪽을 지나가는 빠른 패스는 어지간한 가드는 흉내 내기도 어려운 고난도 테크닉이었다.

선수 경력에 있어선 자부심이 남다른 강 감독도 허재 감독에 대해선 지금까지 “허재 형이 농구를 더 잘했다”고 몸을 낮춘다. 강 감독은 자신의 지도자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전창진 KT 감독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동부는 14일 부산에서 KT를 꺾고 정규리그 우승을 결정지었다. 강 감독은 “전 감독님은 내가 감독으로서 눈을 뜨게 해 주신 분”이라면서 “전 감독님 앞에선 잘하는 모습만 보여드리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감독은 기아를 거쳐 LG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2004년 LG에서 코치를 시작한 그는 이듬해 TG(현 동부) 감독이던 전 감독의 부름을 받고 팀을 옮겼다. 2007~2008시즌엔 전 감독과 호흡을 맞춰 팀의 통합우승에 힘을 보탰다. 2009년 4월 전 감독이 KT로 떠나면서 지휘봉을 물려받았다. 강 감독은 “처음엔 겁이 났다. 전 감독님 같은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리드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전 감독을 따라 KT로 가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당시 동부 구단 역시 검증되지 않은 코치에게 팀을 맡기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였다. 성인완 동부 단장이 강 감독의 사람됨을 보고 구단주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면서 허락을 받아냈다고 한다.



‘초보 감독’ 강동희의 출발은 순탄하지 않았다. 데뷔 무대였던 2009~2010시즌 정규리그는 5위. 6강 플레이오프에서 LG를 물리치고 4강에 올랐으나 모비스에 졌다. 당시 모비스는 챔피언전까지 진출해 통합 우승을 차지한 강호였다.

동부는 지난 시즌 한 단계 발전했다. 정규리그 4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해 LG와 KT를 연거푸 따돌렸다. 특히 4강 플레이오프에선 정규리그 우승팀이었던 KT를 눌렀다. 챔피언전 상대는 허재 감독의 KCC였다. 초반 2승 1패로 앞서던 동부는 하승진이 버틴 KCC의 높이에 밀리면서 2승 4패로 시리즈를 내줬다. 그러자 ‘현역 시절부터 2인자였던 강동희가 또 허재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강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플레이오프와 챔피언전을 치르면서 선수들이 단합하며 위기를 헤쳐나가는 힘을 키웠다고 믿었다.

2011~2012시즌을 앞두곤 “지난 시즌보다는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의 희망대로였다. 동부는 이번 시즌 개막 8연승을 달렸고, 단 한 번도 연패에 빠지지 않으면서 무적 행진을 했다.


강 감독은 “내가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라운드를 거치면서 단점을 극복하고 꾸준히 나은 모습을 보였다는 설명이다. 김주성, 윤호영, 로드 벤슨, 박지현 등 주전 선수들의 출전시간이 길어 4, 5라운드쯤 체력적인 문제에 부딪힐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잘 풀렸다는 점도 호재였다.

강 감독이 자신에게 주는 점수는 얼마나 될까. 그는 “전술적인 면이나 선수단 운영에 부족함이 없는 지도자가 되고 싶었다”면서 “세번째 시즌만에 정규리그 우승의 꿈을 이뤘고, 여러 기록을 세웠으니 80점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역대 최강의 팀’을 만들어가는 강동희 감독의 도전은 계속된다.

글·성진혁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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