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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말고도 배가 불룩하게 나온 야구선수를 보면 “야구는 운동도 아니다”라고 하는 팬들이 적잖다. 씨름, 역도 등 힘을 쓰는 종목의 선수들은 배가 나온 걸 용인받는데, 그라운드에서 뛰는 야구선수들은 뱃살 탓에 심심치 않게 조롱의 대상이 된다. 야구는 던지고 치는 것이 기본이고, 던지고 칠 때 몸의 회전속도가 아주 중요하다. 뛰는 것도 필수다. 뱃살이 두둑해 둔해 보이는 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그런데 올해 프로야구 타격 부문에서는 큼직한 배를 가진, 이른바 ‘술통형’ 몸매의 선수들이 초강세다. 어찌된 일일까. 프로야구 최고의 거구인 이대호는 2006년에 이어 올해 개인 두 번째 트리플크라운(홈런, 타점, 타율 3관왕)을 노리고 있다. 8월 13일엔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과거 이대호와 롯데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최준석(두산 베어스)도 각종 타격 부문에서 톱 10에 진입해 있다. 이대호는 8월 19일 기준 홈런(39개), 타율(0.360), 타점(114개) 1위다. 최준석은 타율(0.317) 8위, 홈런(17개) 12위, 타점(69개) 10위다.

둘의 정확한 몸무게는 대외비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자료에 따르면 이대호는 1백92센티미터에 1백 킬로그램이고, 최준석은 1백85센티미터에 1백15킬로그램이다. 한 포털사이트 프로필에는 이대호의 몸무게가 1백30킬로그램으로 돼 있다. 한때 그의 몸무게가 1백40킬로그램에 이른다는 말이 있었고, 최준석도 비슷했다.

이대호는 올해 살을 제법 뺀 편이지만, 몇 년 전엔 한눈에 봐도 1백 킬로그램은 우습게 느껴질 정도였다. 국제대회 때 이대호를 본 일본 야구 관계자들이 국내 지인들에게 “저 친구 야구선수 맞나. 어디 스윙이나 제대로 하겠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그러다 일본은 2008 베이징올림픽 때 이대호에게 호되게 당했다.

겉으론 둔해 보이는 이들이 시속 1백50킬로미터의 직구와 0.4초 이내 승부를 벌이는 데서 밀리지 않고 오히려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비결은 뭘까.
 

트레이닝 관점에서 보면 그 핵심은 유연성이다. KIA 타이거즈 김준재 의무 트레이너는 “큰 몸을 버텨내는 파워, 그 힘을 통제하는 유연성의 이상적인 공조로 설명할 수 있다”면서 “이대호나 최준석은 거구라 힘이 아주 좋은데, 힘을 살릴 수 있는 유연성이 있어 좋은 스윙을 하고 있다. 좋은 스윙이란 타구에 부드럽게 큰 힘을 실어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선수는 어쩔 수 없이 무릎이나 발목 등에 하중이 많이 실린다. 작은 동작 하나만 잘못해도 바로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순간적인 중심 이동이 쉽지 않고, 그러다 자칫 몸을 다치게 된다. 김 트레이너는 “유연성이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이대호와 최준석은 몸이 부드러워 중심 이동이 자연스러운 편이고, 다치지 않고 꾸준하게 활약한다. 보통 지방이 많은 선수가 근육질의 선수보다 부드러워 덜 다친다”고 말했다.

힘과 유연성을 갖췄다고 잘하는 건 아니다. 큰 몸을 그런대로 잘 놀린다고 스윙까지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래도 뚱뚱한 선수는 몸의 회전이 늦다. 마운드에서 타석까지는 18.44미터다. 투수의 손을 떠난 직구는 보통 0.4초 이내에 타자에게 도달한다.

힘과 유연성, 자신의 몸에 맞는 스윙법을 두루 갖춘 최준석.그런데 스윙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이대호나 최준석은 자신들의 몸에 맞는 스윙을 할 줄 안다. 왕년에 왼손 거구로 김응룡(현 삼성야구단 사장)과 함께 국가대표 중심 타선을 형성했던 실업야구연맹 박영길 회장은 “나름의 방법이 있다”면서 “몸의 회전이 아주 빠른 선수가 공이 전방 4~5미터 정도에 왔을 때 스윙을 시작한다면, 거구들은 이보다 빨리 전방 5~7미터 정도에서 몸에 시동을 걸면 된다. 타격 때 가장 중요한 게 타이밍이다. 어쨌든 타이밍만 맞으면 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특히 이대호는 기술적으로 정점에 서 있다”고 했다. “이대호는 전에는 상체의 힘만 이용한 스윙을 했지만 올해는 하체를 먼저 돌린다. 스트라이드(선 자세에서 스윙에 힘을 싣기 위해 한 쪽 다리를 조금 더 벌리는 동작) 이후에 하체와 연결된 허리가 먼저 돌고, 다음에 어깨가 돌아간다. 허리 회전은 빠르고 강하다. 그래서 상체 동작 때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마지막 순간에 타구의 방향과 높낮이를 일정 정도 조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대호는 타구를 정확히 강하게 칠 수 있다. 홈런도 많고 안타도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최준석의 경우 야구의 특징 덕에 큰 몸에 따른 불이익을 던다. 타자는 스윙 때 전신 근육이 아닌, 부분 근육의 순발력에 의존한다. 그는 상체 위주의 스윙을 한다. 상체의 힘으로 몸을 회전시켜 타이밍을 잡고 공을 때린다. 상체의 힘이 좋아 회전속도가 달리지 않는다. 문제는 정확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어깨에 과도하게 힘을 주면 어쩔 수 없이 히팅 포인트가 미세하게 흔들린다”고 밝혔다.

둘 다 약점인 과체중을 이겨내고 전성기를 달리고 있지만, 몸이 무거운 게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이대호는 28세, 최준석은 27세다. 아직은 젊어 몸을 끌고나갈 수 있는데, 서른이 지나 근력과 유연성이 떨어지면 현재의 몸무게가 부담스럽게 된다. 지금 당장도 좁은 수비 범위가 문제다. 스윙은 괜찮지만, 몸을 온전하게 움직이는 건 아무래도 느리다. 김 트레이너는 “당장은 현 몸무게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고, 장기적으로 몸무게를 줄여나가야 선수생활을 오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올해 프로야구 선수들의 평균 몸무게는 85킬로그램. 둘은 평균보다 20~30킬로그램 더 나간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현재 가장 날씬한 상태다. 최준석은 최근 몇 년보다 몸무게를 20킬로그램가량 줄여 올 시즌에 나섰다. 이대호도 지난해 말 4주 기초군사훈련 때부터 감량을 시작했다. 2005년 말 통도사에서 몸무게를 1백35킬로그램에서 1백15킬로그램으로 20킬로그램 뺀 뒤 이듬해 트리플크라운을 썼던 기억을 되살린 것이다.

이대호와 최준석은 운동선수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뚱뚱하지만, 야구를 하는 데 최적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 남모르게 악전고투하고 있다. 뼈를 깎을 정도로 지독한 ‘살과의 전쟁’이 오늘의 그들을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살은 타격 파워의 원천이면서 강한 정신력의 밑천인 것이다.
 

글·윤승옥(스포츠서울 야구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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