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비장한 최후는 영웅들의 트레이드 마크다. 영웅이 방 아랫목 요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자식, 손자들에 둘러싸여 유언을 남기며 평온하게 눈을 감는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위기와 절체절명의 순간에 영웅은 백성을 다 구하고 나서 전쟁터의 한가운데서 장렬하게 산화해야 제격이다. 이순신 장군은 바다 한가운데서 적의 유탄을 맞고 쓰러졌다.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그 자리에서 체포됐다.
영웅들의 삶은 죽어야 하는 삶이다. 인디언의 명언, ‘오늘은 죽기 좋은 날이다’는 ‘인간이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라는 명제가 인생의목표임을 선언한다. 그러나 자식을 기르는 일에 온통 매달려 사는 평범한 인간들이 가야 할 길은 아니고 많은 백성을 살리는 일을 하는 영웅들이 가야 할 길이다. 그들은 자신을 희생하여 다수를 살린다. 그래서 영원한 삶, 불멸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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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최종병기 활>에 나오는 활은 쏘는 활이지만 살 활(活)의 의미해석을 유도한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백성의 노예적 삶을 그린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활을 쏴 무수한 적병을 죽이고 백성과 나라를 구원한다. 생존의 도구이자 생명의 은인인 것이다. 조선 임금도 무릎 꿇고 비는 상황에서 일개 서민이 대국 청나라에 맞선다는 것은 사마귀가 수레를 막는 격이요 중과부적이다.
영웅의 면모는 그 상황에서 발휘된다. 그는 자신의 목을 내밀고 적과 마주한다.
그와 활은 한 몸으로 변한다. 그의 몸이 적을 향해 돌진할 때 한갓 비루한 삶은 천상의 음악이 되고 향기가 된다. 말 그대로 만백성을 살리는 생명의 꽃이 되어 흩어진다.
영웅의 고결한 희생은 일반인들의 마음속에도 살아있고 극한적 상황에서 인간은 가끔 그런 영웅적 행동을 모방한다. 강풀 원작만화를 영화화한 <통증>에는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두 커플이 등장한다. 불의의 사고지만 가족을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삶의 의미를 잃은 남자와 선천성 불치병으로 인해 시한폭탄 같은 삶을 유지해야 하는 여자의 사랑이야기. 그들의 사랑은 순수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들을 방해하는 인간 아귀들이 도처에 존재하니까.
남자는 이 비정한 삶의 끝에 스스로를 산화시킬 방법을 궁리한다. 생명보험금으로 가족을 살리고자 교통사고사한 세일즈맨처럼 말이다. 그건 분명 평범한 서민들 삶의 방식은 아니다. <통증>은 영웅의 삶을 모방하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영웅의 삶에 원하지 않게 내몰린 절박한 간증일수도 있다. 그는 어쩌면 평범하고 화목하며 소박한 삶을 꾸미고 싶었을지 모른다.
글·정재형 (동국대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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