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더 노력해 월드컵 무대에서 한국이 우승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번 U-20 여자월드컵에서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거듭난 지소연(한양여대)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괜한 자만심은 아니었다. 한국 여자축구의 미래를 벌써 감지하고 있는 듯했다.
한국 여자축구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21위. 하지만 U-20 대표팀은 한국 여자축구를 세계 3위에 올려놓았다. 태극낭자들은 대회 조별리그부터 상대들을 큰 점수차로 대파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스위스를 4-0으로 완파했다. 이 경기에서 지소연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일찌감치 득점왕 후보로 떠올랐다. 이어 가나를 4-2로 누르며 8강 진출을 결정지었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는 세계 랭킹 1위 미국. 최인철 감독은 8강전에 대비해 지소연, 김나래 등 주전 일부를 쉬게 했다. 아쉽게 0-1로 패했지만 득점 찬스를 미국보다 많이 잡았을 정도로 경기 내용이 좋았다.
여유 있게 8강전을 준비한 태극낭자들은 북중미의 강호 멕시코와 8강에서 맞붙었다. 개인기는 멕시코가 한 수 위였지만 U-20 대표팀은 끈끈한 조직력을 앞세워 3-1로 완승을 거두며 4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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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전에서 개최국 독일에 1-5로 크게 패한 태극낭자들. 예상치 못한 큰 점수차 패배로 팀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았지만 선수들은 3, 4위전에서 콜롬비아를 1-0으로 누르고 3위로 대회를 마치는 투혼을 발휘했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어린 태극낭자들은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성숙함까지 드러내며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비록 우승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모습은 아름다웠다.
이번 대회에서 두드러진 스타는 단연 지소연이다. 3, 4위전에서 결승골을 넣은 것을 포함해 총 6경기에 출전해 8골을 뽑아내며 독일의 알렉산드리아 포프(10골)에 이어 득점 랭킹 2위를 차지했다. 대회 득점 2위에 주어지는 실버부츠, 대회에서 두 번째로 좋은 플레이를 펼친 선수에게 주어지는 실버볼을 동시에 수상했다. 대회 3위에게 주어지는 동메달까지 포함해 그는 3개의 상을 받은 셈이다. 남자 축구선수 어느 누구도 올라서지 못한 자리다.
지소연은 이번 대회에서 한국 여자선수가 세계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번 대회 우승을 차지한 독일과 벌인 경기 후반에 수비수 4명을 허수아비로 만들며 성공시킨 골 장면은 압권이었다. 지소연의 장점이 모두 담긴 골이었다.
지소연의 플레이에 많은 관계자들이 찬사를 보냈다. 특히 조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은 “지소연의 플레이는 매우 환상적이다. 경기를 풀어가는 그가 있었기에 한국 여자축구가 U-20 여자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고 극찬했다. 한국과 경기를 가진 모든 팀의 감독들은 지소연의 활약에 모두 혀를 내둘렀다. 지소연은 이번 활약을 계기로 미국무대에 도전장을 흔쾌히 내밀 수 있었다.
“미국으로 진출해 성인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더 많이 배워서 한국 여자축구가 계속 세계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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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에서 주목받은 실리축구가 U-20 여자월드컵에서도 빛났다. 스페인과 네덜란드 등은 남아공월드컵에서 실리축구를 앞세워 각기 우승, 준우승의 성적을 거뒀다. 극단적인 공격 및 수비축구가 아니라 볼 점유율을 높이면서 상대를 서서히 공략하는 실리축구를 U-20 한국 여자대표팀이 그대로 재연했다.
이전까지 한국 축구는 남녀 구분 없이 롱패스 위주의 수비축구가 대세였다. 특히 강호들과 만났을 때 위축되며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 U-20 여자대표팀은 달랐다. 수비에서부터 공격 작업을 펼칠 때 짧은 패스 위주로 상대를 서서히 공략했다. 공격이 쉽지 않을 경우 수비라인으로 볼을 패스해 다시 상대를 공격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볼 점유율을 높이면서 경기의 주도권을 확실히 잡아 골을 만들어내며 상대를 무너뜨렸다.
아쉽게 세계 정상을 향한 도전은 3위로 막을 내렸지만 U-20 대표팀의 플레이는 전술적으로도 완성도가 매우 높았다. 1년 전까지 여자대표팀 감독을 지낸 안익수 FC서울 수석코치는 “U-20 대표팀이 보여준 축구 스타일은 한국 여자축구의 미래가 그만큼 밝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이 따라준다면 남자보다 더 빨리 세계 정상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비인기 종목이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낼 때마다 항상 따라다니는 단어가 바로 ‘관심’과 ‘투자’다.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와 수영선수 박태환의 성공 사례를 보면 관심과 투자가 밑바탕이 됐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여자축구 또한 무관심과 서러움 속에서 볼을 차고 있다. 실업팀들은 기업이 공익 차원에서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현재 진행 중인 WK리그 현장을 가보면 관중석이 텅 비어 있기 일쑤다. 경기 도중에 선수들이 내는 소리가 경기장 내에서 쩌렁쩌렁 울릴 정도다. 간혹 부모들과 모기업에서 응원을 나올 뿐 일반 관중은 찾아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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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고등학교 팀이 16개인 데 반해 대학 팀은 6개에 불과하다. 실업 팀이 7개로 오히려 더 많은 기형적인 형태다. 대학 팀 수가 적다 보니 많은 선수들이 일찌감치 운동을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여자선수들의 특성상 대학에서 더 많이 발전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축구화를 벗는 이들이 다수라는 게 여자축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자축구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2002 한일월드컵 잉여금이 큰 몫을 했다. 당시 월드컵 잉여금을 지원받은 여자축구연맹은 초등학교 팀 창단에 많은 부분을 투자했다. 결국 이때부터 볼을 차기 시작한 어린 선수들이 성장해서 U-20 월드컵에서 세계무대를 호령했다. 팬들의 관심과 아낌없는 투자가 한국 여자축구의 세계 정상 등극을 앞당길 촉매제가 될 것이다.
글·최용석(스포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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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