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조선후기 풍속화가 신윤복이 여성일 것이라는 가정하에 만들어진 영화 <미인도>(2008년 작·감독 전윤수)는 가문의 영광을 위해 남장을 한 채 여성성을 감추어야 했던 신윤복(김규리 분)이 강무(김남일 분)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본성과 예술적 개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거기에 18세기 말 정조 초년의 사회상과 ‘문체반정’이라는 다소 경직된 문화정책 속에서 예술가들이 느끼는 고뇌 등을 적절히 잘 섞어 넣어 스토리를 전개하였다.
신윤복이 여성이었을 것이라는 설은 그의 그림이 다른 남성화가(특히 김홍도)와 비교하여 선이 가늘고 섬세하며 그림의 소재가 주로 남녀의 사랑이야기이고 그의 호 혜원(蕙園)의 혜(蕙·풀이름 혜, 난초 혜)자가 남성에게는 잘 붙이지 않는 글자여서 혹시 그가 여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후대의 상상력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신윤복이 여자였을 것이라는 역사적인 증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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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역사에 남아 있는 신윤복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안타깝게도 그의 그림이 가진 명성에 비해 화가 신윤복 개인에 대한 기록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는 김홍도(金弘道)·김득신(金得臣)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화가로 지칭되는 인물이다.
풍속화뿐 아니라 중국 남종화풍의 산수화나 새와 짐승을 그리는 데도 뛰어난 직업적인 화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윤복 개인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는 없지만 그의 집안은 조선후기 화가 가문으로 꽤 유명했다.
그의 아버지는 영화에 나오는 대로 신한평이다. 영화에서는 신한평이 몰락한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딸아이를 사내아이로 만들어 도화서에 들어가게 한다. 하지만 역사상 신한평은 한 차례 귀양살이를 했으나 굳이 딸아이를 그렇게 만들지 않아도 될 만큼 그 자신이 상당히 잘나가던 화가였다.
도화서 화원이었던 신한평은 <연려실기술>에도 그림을 상당히 잘 그리는 사람으로 기록이 남아 있고 젊었을 때는 영조와 정순왕후의 혼례를 그린 의궤작업과 영조와 정조의 어진을 그리는 작업에도 참여했으며 77세 나이로 순조의 혼례의궤 작업에도 참여하는 등 말년까지 궁중의 공식 기록화가로서 그 화필을 날렸다. 신윤복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조부도 화원(畵員)이었고 작은할아버지도 당대 유명한 화원이었던 신일흥이었다.
조선시대 화원은 중인계급으로 도화서에 들어가 주로 국가 행사를 기록하고 왕의 초상화를 그리는 기록화가로서 활동하였다. 그 외 개인적인 취미와 의뢰 등으로 산수나 화조, 풍속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도화서는 그림 그리는 일을 담당하던 관청으로 한성부 중부 견평방(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화원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관직은 종 6품 ‘별제’까지였다. <경국대전>에 보면 도화서에는 그림을 배우는 생도 15명을 배치하여 화원을 양성하고 국가의 각종 의식이나 행사 및 초상화 등을 그리는 일을 담당하게 하였다. 이후 1746년(영조 22)에는 화원의 임무가 증대되면서 생도가 15명에서 30명으로 증원되었다.
영화에서처럼 신윤복이 도화서에서 화원으로 활동하였는지 아닌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그의 가문이 대대로 화원집안이었고 그가 그린 그림의 성취도로 보아 화원으로 도화서에서 활동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인간의 감정을 그린 그의 그림이 당시 유교 이념을 중심으로 문화를 이끌어 가고자 하였던 정조의 문화정책과 맞지 않아 도화서에서 쫓겨났을 것이라는 속설이 있다. 영화에서도 이 부분을 모티브로 하여 주요한 갈등의 축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처럼 신윤복과 김홍도(김영호 분)는 사제관계였을까? 이 또한 분명한 것은 없지만 김홍도가 신윤복보다 10여 살 많은 동시대 인물이고 신윤복이 그린 산수화 곳곳에서 김홍도의 영향으로 짐작되는 부분이 종종 발견되는 것, 신윤복의 호가 김홍도의 호인 단원에서 원자를 같이하는 것으로 볼 때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나 김홍도의 그림이 남성적이고 토속적인 데 비해 신윤복의 그림은 섬세하고 세련된 필치에 다루는 소재도 도회적이어서 김홍도와는 분명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익의 손자인 이구환은 신윤복에 대해 ‘마치 방외인(속세를 떠난 사람) 같고 여항인(저잣거리의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며 동가식서가숙하는 화가’라고 평하였다. 이 글을 볼 때 신윤복은 어느 순간 유명한 화원가문의 장남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한양거리를 떠돌며 자신만의 그림세계를 추구하던 예술가이자 기인이었던 듯하다.![]()
아마도 그가 머문 곳이 대부분 주막이나 유곽 같은 곳이라 남아있는 그림 또한 남녀의 내밀한 정을 나타낸 그림이 많으리라 짐작된다. 실제 신윤복이 그린 풍속화들은 그가 중년이 넘어서 그린 것들이 많다. 영화에서는 신윤복이 젊은 나이에 풍속화를 그리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는 그가 남긴 그림의 연대로 보았을 때 차이가 있다.
신윤복의 대표작이며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미인도>는 영화에서는 신윤복 본인의 자화상으로 나온다, 실제 미인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여염집 여인이 아무리 화가 앞이라고 하여도 얼굴을 내비칠 수는 없었을 테니 아마도 그림의 주인공은 신윤복이 드나들던 유곽의 기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미인도의 좌상단에 쓰여진 제시에서도 ‘마음에 꽃이 피어난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신윤복이 사랑했던 여인이었을 것이다.
글·김정미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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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