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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걸그룹 못지않은… “우리 가락 좋을시고”




구성진 민요가락이 울려 퍼지는 강당 안, 관람석을 가득 메운 군복차림의 장병들은 한 소절이라도 놓칠까 무대쪽으로 귀를 기울이며 공연 감상에 집중하고 있었다.

국악의 주청취층이 아닌 젊은 장병들에게 국악 공연이라니.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객석을 가득 메운 육군 52사단 212연대 장병 6백여 명은 누구 하나 지루한 기색 없이 오히려 공연 내내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무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악을 국민속으로>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날의 공연은 국립국악원이 준비한 위문공연이었다. 공연을 준비한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권성택(44) 악장은 “지난 폭우로 국립국악원이 수해를 입었는데 국군장병 여러분들께서 복구를 해 주셨다”며 “혼신을 다해 복구작업에 임해 주신 장병 여러분들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길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우리가 가장 잘하는 국악 공연을 보여드리면 좋을 것 같아 오늘의 위문공연을 기획했다”고 공연의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인근 주민 16명이 사망하고 4백여 명이 대피하는 등 큰 피해를 기록한 지난 7월의 우면산 산사태로 서초동 국립국악원은 주차장을 비롯한 건물 외관이 토사와 나무로 뒤덮이고 전기실이 침수되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극장운영이 중단돼 예정된 공연이 모두 취소되는 사상 초유의 재해를 딛고 국립국악원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극장운영을 정상화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수해복구를 위해 애를 쓴 국군장병들의 힘이 컸다.

복구작업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장병들에 대한 감사인사로 열린 이날의 공연은 국립국악원의 마음이 가득 담긴 ‘선물’ 같은 공연이었다. 공연은 국악관현악인 <프론티어>로 시작됐다. 재일동포 출신의 국악가 양방언이 작곡한 곡으로 2002 부산아시안게임 테마곡으로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곡이다.

국악의 신명을 클래시컬한 음악요소 속에 담아낸 <프론티어>가 창작국악의 웅대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면 그 뒤를 이은 <아리랑> 연곡에선 귀에 익은 친숙한 멜로디와 가사로 장병들의 흥을 돋워주는 각 지방별 아리랑이 연달아 연주됐다.

청아하면서도 화려한 해금솔로와 국악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이뤄진 해금협주곡 <추상>은 장중한 멜로디로 창작국악의 깊이를 보여줬다. 뒤이어 연주된 <제비노정기>는 우리에게 친숙한 <흥보가>의 눈대목을 현대적인 노래로 재탄생시켜 객석의 흥을 돋웠다.




이외에도 제주민요를 편곡한 <너영나영>, 놀이판과 굿판의 즉흥연주를 연상시키는 거침없는 연주로 풍물놀이의 느낌을 재구성한 <신푸리> 등의 창작국악과 <아름다운 강산>, <오버 더 레인보우> 등 국악풍으로 편곡한 가요와 팝 공연이 이어지면서 객석은 한층 달아올랐다. ‘국악공연은 지루하고 딱딱할 것’이라는 종래의 선입관을 단숨에 날려 버릴 만큼 흥겹고 다채로운 감성으로 가득한 무대를 보여줬다.

권 악장은 “전통을 가미한 창작국악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며, “장병 여러분들이 듣기 편하도록 친근한 느낌을 주는 곡들을 선정했으니 국악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던 분들도 즐겁게 감상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이 끝나고 손영수(22) 상병은 “지방출신이기 때문에 국립국악원 같은 큰 단체와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군대에 온 덕분에 이렇게 대단한 단체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든다”며 “평소 국악에 대해 큰 관심 없이 흘려들었는데 오늘 공연은 듣기에도 어렵지 않았고 너무 감동적인 연주여서 좋았다”고 감상을 밝혔다.


예전에 비하면 병영 내 문화가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우리 병영과 문화공연은 너무나 먼 관계다. 군악대나 국군방송 위문열차 등의 위문공연이 있긴 하지만 전국의 병영을 돌며 열리다 보니 군생활 중에 제대로 된 위문공연을 보지 못하고 제대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현실에서 국립국악원의 위문공연은 장병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다.

“저희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국립국악원 측에서 위문공연을 제안해 주셔서 너무 기뻤다”는 박윤미(27) 대위는 “병영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있어서 평소에 공연을 보고 싶어도 찾아갈 수 없는 장병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고 공연소감을 전했다.

박 대위는 “제대로 짜인 공연을 보기 힘든 장병들이 국립국악원이라는 우리나라 최고의 국악단체를 직접 접하고 연주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큰 기회였다”며 “앞으로도 보다 다양한 문화공연을 통해 장병들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이윤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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