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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책 읽어주는 남자 <십자군이야기1>




본디 유명 저자가 책을 내면 뒷말이 무성한 법이다. <로마인 이야기>로 성가를 올린 시오노 나나미의 신작 <십자군 이야기> 국내 출간에도 화제가 많았다. 그리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일단 저작권료가 천정부지로 솟았다는 말이 있고 번역자 문제도 불거져 나왔다. 어찌 보면 눈살 찌푸릴 만한 일이지만, 워낙 팬이 많은 저자인지라 오히려 신간 홍보에 도움이 되는 양상이다.

필자는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을 비판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로마인 이야기>부터가 그렇다. 저자는 이 책의 집필목적을 뚜렷하게 밝혔다. ‘왜 일본은 제국건설에 실패했을까. 그렇다면 제국을 세우고 이를 오랫동안 유지했던 로마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바는 무엇일까’가 바로 그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여러 장점, 그러니까 이야기를 풀어 가는 능력, 역사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 특히 인물에 대한 주관적인, 그만큼 매력적인 평가 등이 있더라도 그 점을 바로 보지 못한다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십자군 이야기>는 어떨까. 먼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십자군 전쟁을 요령껏 잘 정리하고 해설한 장점이 있다는 점은 인정할 만하다. 특히 이 전쟁이 알려진 대로 순수하게 종교적 목적만을 두고 일어난 것이 아님을 밝힌 점은 칭찬할 만하다.

십자군 전쟁을 제창한 교황 우르바누스 2세부터 그랬다. 겉으로야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고 했지만, 속내는 황제와 벌이는 주도권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정치 목적을 숨기고 있었다.

십자군 파병을 원한 비잔틴 제국의 황제 알렉시우스는 아예 음모가 수준이다.

십자군이 점령한 영토를 비자틴제국의 영토로 병합하려는 속내가 있었으니, 정말 남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려 했다.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이탈리아 항구도시와 연합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경제 이익과 관련된 협약이 이루어졌다. 책을 조금만 읽어 보아도 이 전쟁이 얼마나 추악한 목적을 지극히 종교적인 이유로 포장했는지 눈치챌 수 있다.

그럼에도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읽는 내내 불편했다. 가장 심하게 든 의구심은, 혹 저자가 이 전쟁 이야기를 유럽판 삼국지의 소재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점이었다.

물론 전쟁을 이야기로 풀어 가다 보면 전투 이야기를 자세히 아니할 수 없으니, 전술을 설명하고 승장과 패장에 대한 평가가 나오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 전쟁의 심각한 의미가 이런 유의 이야기로 희석되고 거리를 두고 즐기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싶다.

너무 엄숙주의적인 평가라 하지는 말자. 오늘, 우리가 왜 십자군 전쟁에 관한 책을 읽어야 하는가는 분명하다. 아직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는 포성이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전쟁이 탈레반의 테러에서 비롯되었고, 그 성격이 기독교 문명권과 이슬람 문명권의 충돌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말하자면, 놀랍게도 역사가 반복해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니, 먼저 있었던 충돌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성찰해 보아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책을 읽으면서 과연 시오노 나나미가 이런 문제의식을 품고 책을 썼는지 자신할 수 없었다. 특별히 십자군의 1차원정이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는지라, 그 평가에서 십자군은 일치단결하여 현명하게 처신한 것으로 나오고, 이슬람 쪽은 작은 이익에 눈멀어 쉽게 분열하는 것으로 나온다.

특유의 인물평에서도 십자군에 참여한 제후들에 대해서는 정성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슬람 쪽은 양적으로도 부족하다. 제3자의 시선으로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십자군 전쟁을 평가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전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올리는 아이디어다.” 책의 첫 구절이다. 맞다.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우고 있더라도 전쟁은 그 이면에 추악한 목적을 숨기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도 결국에는 석유자원 확보를 위해서였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글·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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