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최근 모 방송국에서 시작한 사극 <인수대비>는 요즘 유행하는 팩션이 아니라 사실에 가까우면서도 재미를 더해 자주 보는 편이다. 특히 기존의 사극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이현로(李賢老)라는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을 보고서 상당히 실력있는 작가의 작품인듯해 반갑기까지 하다.
수양대군에게 한명회가 있었다면 안평대군에게는 이현로라는 책사(策士)가 있었다. 이현로는 세종 때는 촉망받는 문신이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29년(1447년) 2월 16일자에 그의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데 이때 그의 관직은 집현전 부교리다. 종5품에 해당하는 관직이다. 당시 성삼문이 정6품 수찬으로 그의 바로 아래에 있었다.
이현로는 당대의 대표적인 풍수지리 전문가이기도 했다. 세종도 막내아들인 영응대군의 집을 마련할 때 이현로를 불러서 터를 보도록 할 정도였다. 세종이 죽고 문종이 즉위하면서 이현로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문종은 세자의 책봉일을 정하면서 은밀하게 이현로를 불러 택일을 부탁했다.![]()
이현로는 술학(術學)뿐만 아니라 시문(詩文)에도 능했다. 그래서 예술을 좋아하던 안평대군의 눈에 들어 일찍부터 안평의 사람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병약한 문종이 세상을 떠나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김종서와 안평이 하나의 세력을 형성했고 수양이 대항세력이 되었다. 김종서와 안평의 연결고리가 다름 아닌 이현로였다.
김종서와 안평대군을 등에 업은 이현로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이현로는 수양대군과 정면대결을 벌이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은 단종을 둘러싼 김종서와 안평이 유리한 입장에 있었고 수양은 수세 정도가 아니라 궁지에 몰린 지경이었다.
이 무렵 권람과 한명회가 나섰다. 사실 한명회는 일찍부터 이현로의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안평 쪽에 줄을 서라는 요청이었다.
그만큼 이현로는 한명회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명회는 당시 막강한 힘을 갖고 있던 김종서와 안평 쪽을 버리고 수양대군에게 ‘올인’한다. 친구인 권람을 찾아가 수양대군과 만남을 주선해 줄 것을 요청했고 결국 거사를 향한 책사 역할을 맡게 된다.
세종과 문종의 각별한 인정을 받을 만큼 풍수와 지리에 뛰어났지만 자신의 명운에 대해서는 보지 못한 때문일까. 계유정란으로 수양대군이 선수를 쳤고 안평대군과 김종서 일파는 죽음을 당했다. 이현로도 반역죄로 효수를 당했다. 역사는 이현로에게 가혹했다. 실록은 그의 동료였던 강희안의 이름을 빌려 이렇게 매도하고 있다.
강희안은 늘 자식들에게 이현로를 거론하며 이렇게 경계시켰다고 한다. “이 녀석을 가까이하지 말라. 종국에 가서는 자기 집에서 죽을 자가 못 된다. 내가 일찍이 이 녀석의 두상을 보니 피에 얼룩진 형상이다.” 수양대군은 정란 직후 이현로의 집에 있는 모든 책과 글을 태워 버리도록 명했다. “신비하고 괴상한 글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글·이한우 (조선일보 기획취재부장)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