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꿈에 그리던 고향역에 종착했다. 그것도 의미있는 선례를 남기고. 즉 자신이 받아야 할 연봉을 모두 국내 아마추어 야구 인프라를 위해 기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박찬호는 지난 12월 20일 프로야구 한화 입단식을 가졌다. 이날 공개된 박찬호의 연봉은 놀랍게도 KBO 규약상 최저연봉인 2천4백만원이었다. 한화는 대신 박찬호에게 애초 주려고 계획했던 연봉 4억원과 옵션 2억원을 포함한 최대 6억원을 아마야구 발전기금으로 내놓기로 했다. 박찬호는 연봉 2천4백만원도 꿈나무들을 위해 쓰겠다는 뜻을 밝혔다.
기부를 통해 연봉 논란을 잠재우고 특혜에 대한 보답을 하는 등 박찬호다운 해법이었다. 그의 연봉 2천4백만원은 한창 잘나가던 시절 몸값과 절대 비교하면 ‘반나절 몸값’이다. 하지만 그는 숫자를 지우고 꿈을 그렸다.
이 같은 박찬호의 ‘통 큰 결단’에 대해 야구팬들은 박수를 보냈다. 한화 이글스 골수 팬인 회사원 김기홍(40)씨는 “박찬호는 비록 황혼기에 접어든 노장이지만 메이저리그에서 1백24승을 거둔 대투수였다”며 “돈에 연연하지 않고 한국야구를 위해 백의종군한 그의 행보는 앞으로 그가 거둘 성적과는 별개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찬호의 한화 입단에는 ‘특혜’가 작용했다. 한국 프로야구 출신이 아닌 해외파 선수가 국내구단에 입단하기 위해서는 신인 드래프트를 신청해야 한다. 하지만 박찬호는 드래프트를 신청하는 원칙 대신 특별법에 호소했다.
야구계는 찬반논란으로 뜨거웠고 KBO 이사회는 지난 12월 13일 한화 입단을 허용한다는 특별법을 제정해 길을 터 주었다. 해외에서의 공헌도를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특혜를 주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람마다 달라지는 원칙의 훼손 문제를 야기했다.
박찬호는 지난 1998년에도 사실상 특혜를 누렸다. 방콕 아시안게임에 한국대표로 참가해 금메달 주역으로 활약했다. 태극마크를 달았던 것은 고국을 사랑한 것도 있지만 병역면제 혜택의 이유도 컸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승전보를 전해 주어 IMF 시름에 잠긴 국민들에게 많은 희망을 안겨준 덕택이었다.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그는 군복 대신 태극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고 메이저리그 1백 24승까지 달렸다. 이번에 두번째 혜택을 받은 셈이다.![]()
일부 야구인들은 은퇴할 시기에 한국야구에 뛰어들었다는 점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차라리 일본 오릭스에 입단하지 않고 2010년에 한국야구의 문을 두드렸어야 옳았다는 이가 많다.
이유가 어쨌든 일본에서 부진과 부상을 당해 방출된 뒤 한국야구에 복귀했다. 한 야구인은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의 행보치고는 모양새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래서 국보투수로 불리는 선동렬 KIA 감독과 비교하기도 한다. 선 감독은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4년간 뛰고 자신의 구위가 떨어지자 은퇴했다. 요미우리와 메이저리그 보스턴이 손짓을 했으나 고민 끝에 포기하고 야인이 됐다. 대신 선수가 아닌 KBO 홍보위원으로 야구발전에 기여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프로야구 경험이 없는 박찬호는 고향 팀에서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어했다. 수구초심의 마음에서 선 감독과는 다른 처지일 수 있다.
박찬호는 입단회견 자리에서 “한화는 중고시절 당연히 내가 프로에서 뛰어야 할 팀으로 생각했다. 오렌지 유니폼은 항상 마음속에 갖고 있는 꿈이자 목표였다”고 부푼 소감을 밝혔다.
한화구단은 1군 엔트리 한 자리를 마흔 살 박찬호에게 주었다.
젊고 유망한 신인선수의 몫을 그에게 투자한 것이다. 구단은 풍부한 경험을 살려 선발투수로 10승 이상을 따내고 후배들에게는 성공의 역할 모델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10승을 성공의 기준선이라고 본다면 달성 가능성은 반반이다.
성공을 점치는 이들은 노련함에서 이유를 찾고 있다. 그는 전성기시절의 무서운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지는 못한다. 평균 스피드는 1백40킬로미터 초반에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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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베테랑답게 마운드에서 여유가 넘치고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을 갖추고 있다. 땅볼을 유도하는 다양한 변화구를 던질 수 있고 완급 조절과 타이밍 뺏기로 10승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제구력과 체력, 부상 가능성 때문에 10승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전망도 동시에 나온다. 박찬호는 가끔 실투를 하는 편이다.
상대를 압도하는 구위가 아닌 만큼 제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장타를 맞을 수 있다.
한 경기에 1백개 이상을 던져야 하는 선발투수의 체력도 필요하다. 한국 타자들은 유인구에 잘 속지 않는 등 일본 타자들과 비슷하게 진화하고 있다. 공격적인 피칭으로 투구 수를 조절하지 않는다면 5회 들어 급격히 구위가 떨어질 수 있다.
부상은 나이 많은 선수들에게는 항상 찾아온다. 오릭스 시절 운동 도중 대퇴부 근육 파열상을 당했다. 각별한 관리가 필요한 대목이다.
박찬호의 역할이 더욱 주목받는 분야는 흥행이다. 한국야구는 내년 7백만 관중 돌파를 목표로 삼고 있다. 벌써부터 이승엽, 김태균과 함께 흥행 트리오로 활약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많다. 2001년 이종범(KIA), 2007년 최희섭(KIA) 등 해외파가 복귀하자 구름관중이 몰려들었다.
박찬호가 10승과 7백만 관중을 이끌어 내는 힘을 보여준다면 실로 ‘아름다운 회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박수와 환호의 2012시즌이 될 것인가. 다양한 스펙트럼을 안고 한국야구에 뛰어든 박찬호의 도전이 시작되고 있다. 벌써부터 봄바람이 기다려진다.
글·이선호 (OSEN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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