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소포클레스의 비극이 새로 번역되어 을유문화사에서 나왔다. 대학시절 읽고 상당히 충격 받고 깊이 고민했던 추억이 떠올라 진지하게 다시 읽어 보았다.
이번에 나온 김기영의 번역본에는 세 편의 비극이 실렸다. 제목은 <오이디푸스왕 외>로 되어 있는데, <안티고네> <오이디푸스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순으로 실렸다. 발표 순으로 편집한 모양인데, 각기 독립된 작품이면서도 연관성이 있는지라, <오이디푸스왕>을 먼저 읽고 <안티고네>를 맨 마지막에 읽어야 이해가 잘된다.
<오이디푸스왕>의 내용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아이가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취할 거라는 끔찍한 신탁(神託)이 있었다. 지독한 운명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있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결과는? 신(神)의 뜻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는 없다.
이 점에 방점을 두고 이 작품을 읽으면 인간의 비극성이 도드라진다. 우리에게는 운명이 있고, 이에 대적해 보아야 소용없다는 말 만큼이나 비극적인 게 어디 있겠는가. 분명히 그런 면도 있을 터다.
그러나 오이디푸스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출생에 얽힌 비밀과 성장과정에 대해 집요하게 객관적 진실을 추구한다. 극(劇)의 여러 곳에서 그런 오이디푸스를 제지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가 그러했고, 어린 그를 죽이는 대신 살렸던 목자가 그랬다. 그것이 설혹
자신을 파멸시키더라도 진실을 알아내겠다는 정신은 위대하다.
옮긴이가 이를 일러 “그리스 합리주의 정신을 구현한다”고 평가한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오이디푸스는 모든 것이 까발려지자 “고의로 한 일이 아니니 죄 없다” 하지 않고,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책임을 지기 위해 두 눈을 찔러 멀게 한다. 번역자의 지적대로 이 때 비로소 오이디푸스는 “가혹한 운명의 희생자에서 벗어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위대한 영웅”이 된다.
<안티고네>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안티고네>는 왕위 계승의 기회를 놓친 폴뤼네이케스가 연합군을 데리고 테바이를 침공했다 실패한 내용을 배경으로 한다. 이 전투에서 형에 맞선 에테오클레스도 전사한다. 오이디푸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의 장례는 치러 주면서도 반역자인 폴뤼네이케스의 매장을 금하는 포고령을 내린다.
두 사람의 누이인 안티고네가 왕의 명령을 어기고 큰오라버니를 땅에 묻으려다가 적발된다. 기실 크레온은 안티고네의 외삼촌이다.
그리고 시아버지가 될 사이였다. 그럼에도 자신의 명령을 어긴 안티고네에게 형벌을 가한다. 이 비극은 그러니까 혈족의 관습과 국가의 법이 충돌하는 장면을 드라마틱하게 그려 내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코러스들이 부르는 노래에 “고집 센 자기 성깔이 그대를 파멸시켰구나”라는 구절이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안티고네에게 하는 말이다. <오이디푸스 왕>에서는 “무릇 적절함을 지키는 게
훌륭한 일이오”라는 구절이 나온다.
안티고네의 저항은 크레온 집안의 몰락을 가져온다. 그러니 오직 안티고네가 잘못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리스 비극은 우리에게 중용의 가치를 역설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도록 이끈다. 어디에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아 가는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들던가. 이런 의미로 <안티고네>를 읽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는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내용이 나온다. 아테나이가 이방인인 오이디푸스의 망명을 받아들여 주는 대목이 그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방인인 데다 저주받은 사람 아니던가. 그럼에도 다양성과 이질성을 존중하는 관용의 도시 아테나이는 그를 받아들였다.
그 대가로 아테나이는 복을 받는다. 오이디푸스가 아테나이를 이롭게 할 비밀을 테세우스에게 일러주고 신의 부름을 받기 때문이다.
다문화사회로 가는 우리에게 이 일화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래서 고전은 늘 새로, 다시 읽어 보아야 하는 것이다.
글·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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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