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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역사를 알면 영화가 재밌다 <궁녀>




영화는 궁녀 월령(서영희 분)의 자살사건에서 시작한다. 궁녀 출신으로 의녀가 된 천령(박진희 분)은 월령의 시신을 검안하다가 그녀의 죽음이 단순한 자살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교묘하게 조작된 살인이라는 의혹을 품게 된다.

월령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천령은 궁궐을 동분서주 헤집고 다니며 점점 진실에 다가가지만 그 진실은 그야말로 일개 궁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여기에 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성을 저버려야 했던 천령의 슬픈 과거와, 궁녀들의 행동과 입단속을 위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가는 감찰상궁(김성령 분), 권력다툼 속에서 왕을 속이고 인간성을 희생하며 왕자를 만드는 희빈(윤세아 분)과 월령, 심상궁(김미경 분)의 이야기가 섞여 들면서 영화는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영화는 남성이 배제된 궁궐 속, 희빈부터 의녀의 제자까지 여자들만의 조직이 만들어 내는, 견고하지만 잔혹한 질서와 더불어 그 속에서 서로 묵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절대 깨버릴 수 없는 단단한 연대를 그리고 있다.

영화는 재미를 위해 궁녀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다소 과장하기는 했지만, 조선시대 궁녀들의 실제 삶도 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궁녀란 왕족을 제외한 궁중의 모든 여인들의 총칭이다.

상궁(尙宮)과 나인(內人)을 비롯해 그 아래 하역(下役)을 맡은 무수리(水賜)·방자(房子)·의녀(醫女) 등도 모두 궁녀에 속한다.

궁녀들은 대개 신분적으로 중인 계급이 많았지만, 후대로 올수록 그 삶이 한스럽다 하여 민간에서는 딸을 궁녀로 들이는 것을 피했다고 한다. 대개 가난한 집안의 딸들이 궁녀가 되었다고 하는데, 궁녀가 되는 계층이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다만, 임금을 곁에서 모시는 지밀과 옷을 만드는 침방, 수를 놓는 수방 궁녀의 경우는 중인 출신에서 많이 뽑았고 그 외에는 상민들이 많았다고 한다. 궁녀의 아래에 있는 무수리나 각심이, 방자 등에는 노비 출신도 있었다.

조선시대 궁녀들은 궁에 들어가면서 궁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귀머거리·벙어리·장님이 될 것을 맹세하며, 평생을 왕의 잠정적 아내로 살아갈 것을 강요받았다.

영화에서 가장 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쥐부리 글려’는 실제로 섣달 그믐날 궁궐에서 궁녀들을 모아놓고 했던 행사였다. 조선시대 궁녀들은 대개 5~10세 사이에 궁녀 후보로 궁궐에 들어가 궁녀가 될 교육을 받고 평생을 궁궐에서 보낸다.




조선시대 궁녀는 대개 5백명 전후였는데 다양한 연령대의 여인들이 모인 데다 국가권력의 정점인 왕을 모시는 집단이다 보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 ‘쥐부리 글려’는 일년에 한번 공포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궁녀들의 입과 행동을 단속하려는 취지에서 행해졌다.

그 내용은 칠흑같이 어두운 대궐 뜰에 애기나인들의 입에 떡을 물리고 수건으로 입을 막게 한 후 한 줄로 세우고 입 앞에다 횃불을 들이대며 ‘쥐부리 글려 쥐부리 지져’ 를 외치며 위협하는 것이다.

이는 왕비가 모든 내명부(왕비 아래 후궁과 상궁, 나인을 포함한 궁궐 내 모든 여인들)를 거느리고 나와 ‘참관’함으로써 궁궐 내의 기강을 세우고자 하는 취지였다.

궁녀는 어린 나이에 궁궐에 들어가 15년 정도가 지나면 관례를 올리고 나인이 되어 정식 궁녀가 되는데, 이 관례라는 것이 신랑 없는 결혼식인 셈이었다. 관례를 올린 궁녀는 왕이 취하든 취하지 않든 왕의 여인으로 평생을 살아야 할 의무가 생긴다. 그러기에 다른 남성과의 관계는 왕에 대한 배신행위로 간주되어 극히 엄하게 처벌 받았다.

그러나 피 끓는 청춘의 궁녀들 중에는 내시나 궁을 드나드는 별감 등과 남몰래 연애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중에는 왕족인 종친과 사랑을 나누는 궁녀도 있었다. 영화의 배경이라 짐작되는 숙종 대에도 실제 궁녀와 종친 간의 연애스캔들이 터져 큰 정치적 사건이된 적이 있었다.

숙종의 5촌 당숙인 복창군과 복평군 형제가 궁녀 김상협과 내수사 여종(궁녀들을 보필하는 각심이나 방아이로 추정됨) 귀례와 관계를 가지고 아이까지 낳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홍수의 변(궁녀의 옷소매가 붉다 하여 홍수라고 함)이라고 하여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의 주도로 밝혀졌는데, 서인들이 남인을 몰아내는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법전 <속대전>에도 ‘궁녀가 외부 사람과 간통하였을 경우 남녀 모두를 부대시참한다(宮女通姦外人者 男女皆不待時斬)’는 조항이 있고 정조대에도 왕이 직접 궁녀들의 행실을 질책하며 엄히 단속할 것을 명하는 것을 보면 궁녀의 연애 스캔들은 제법 자주 일어났던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천령을 임신시킨 뒤 버리고 다시 벙어리 수방 궁녀 옥진(임정은 분)을 유혹하는 대비의 외조카 정랑 이형익(김남진 분) 같은 관리도 아주 없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궁녀들은 부서의 고하에 따라 위계질서가 엄격하게 정해지고 각 부서끼리의 알력도 만만치 않은 등 남성들의 관료조직 못지않은, 어쩌면 그보다 더한 조직체계를 구축하고 자신들의 삶을 통제하고, 나아가 음지에서 국가권력을 좌지우지하기도 하였다.

영화에서 세자가 되는 희빈의 아이에 대한 비밀을 궁녀들이 피로써 묵계함으로써 지켜 나가는 장면은 이를 잘 보여준다.

글·김정미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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