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아무리 여자아이라지만 이렇게 작고 약해서 어떻게 험한 세상을 살아갈까.”
낮잠 자는 아기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표정엔 근심이 가득했다. 그때 대문 밖에서 스님이 목탁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온 어머니에게 스님이 이야기했다. “여기에 별이 하나 떠 있네요.” 어머니가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스님은 돌을 갓 지난 아기가 잠들어 있는 방 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미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나기 전까지는.
아이는 초등학생 무렵 동네 골목대장이었다. 덩치는 학급에서 가장 작았지만 학교 친구들은 그를 ‘여장군’이라고 불렀다. 머리는 사내처럼 짧게 깎고 다녔다. 자신이 직접 빡빡 밀었다. 긴 머리는 뛰어다니며 놀기가 힘들고, 관리하기도 귀찮다는 게 이유였다.

체구는 작고 말랐지만 강단은 남달랐다. 하루는 아파트 앞에 불법 복제 책을 파는 잡상인이 등장했다. 아이는 집요하게 그를 따라다니며 주변 사람들에게 “이건 가짜다. 절대 사지 말라”고 말하고 다녔다. 결국 아이는 발길질을 당했고, 그 장면을 본 동네 주민들이 잡상인을 끌고 경찰서로 갔다. 경찰서에서도 어른스럽게 자기 생각을 조목조목 밝히는 아이를 본 동네 주민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 애는 나중에 뭔가 큰일을 할 거야.”
아이는 운동신경도 좋았다. 머리도 영리해 어떤 운동이든 배우면 금세 몸에 익혔다. 특히 공을 잘 찼다. 공을 차면서 달려도 사내아이들조차 따라잡지 못했다. 동네 축구장에서 붙은 아이의 별명은 ‘꼬마 기관차’. 축구를 하면 친구들 모두 아이와 같은 편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 아이는 우연히 학교 축구부 모집 전단을 봤다. 결과적으로 이 한 장의 전단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축구선수가 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가 다닌 초등학교 축구부 감독도 아이가 공을 차는 모습에 반해 선수로 뛰어볼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하지만 부모는 반대했다.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며 거친 운동을 하는 모습을 지켜볼 자신이 없었던 부모는 축구장 근처에도 못 가게 했다. 아이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태권도, 피아노, 바이올린 등 다른 걸 아무리 시켜도 몰래 공만 찼다. 부모가 아이의 고집에 마음이 흔들리던 순간 이웃집에 살던 친한 아저씨가 부모에게 얘기했다. “여자가 축구를 하면 얼마나 멋있어요. 또 키가 클지도 몰라요.” 부모는 그 설득에 넘어가 결국 축구 유니폼을 허락했다.
아이가 처음 축구부에 들어간 날. 또래 남학생들은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었다. “저런 조그만 여자애가 무슨 축구냐.” 하지만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런 비웃음은 감탄으로 변했다. 녹색 그라운드는 아이의 뒷마당이나 진배없었다.
축구 지능과 스피드, 체력까지 동시에 갖춘 여장부를 또래 사내아이들은 막지 못했다. 근성도 누구보다 뛰어났다. 웬만큼 아파도 내색하지 않았다. 한번은 어머니가 축구부 감독에게 인사하러 찾아가겠다고 하자 아이가 말렸다. 축구부에서 유일한 여자라고 특별대우를 받는다는 인상을 주기 싫어서였다.
중학생이 된 뒤엔 여자 축구부에 들어가 전국을 휩쓸었다. 중학교 3년 동안 12번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60연승이란 대기록도 세웠다. 고등학생 땐 대회마다 최우수선수(MVP)를 휩쓸며 ‘괴물’이라 불렸다.
남녀 축구 대표팀을 통틀어 최연소 A매치 데뷔(15세 8개월), 최연소 A매치 골(15세 2백93일)의 주인공도 그였다. 대학에 와선 더 진화했다. 지난해 베오그라드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여자축구 일본과의 결승전에선 두 골을 몰아치며 대회 MVP로 선정됐다.
“아이 얼굴만 봐도 항상 눈물이 나오죠.”
어머니 김애리(43) 씨는 “우리 딸이 너무 대견하고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해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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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자궁경부암 수술을 받은 뒤 큰 수술을 3번이나 더 받았다. 거동조차 불편할 만큼 몸이 안 좋았지만 남편과의 이혼으로 가정 형편이 나빠져 2개월 전까지 공장 일을 했다. 김 씨 가족은 현재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다.
김 씨는 “우리 딸이 축구를 처음 시작하면서부터 가장 많이 한 말이 있다. 바로 ‘내가 아빠 몫까지 다 할게. 조금만 참아’라는 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집안 형편은 좋지 않아도 변하지 않은 건 딸의 효심이다. 합숙 생활을 하는 등 아무리 바빠도 어머니와 남동생만큼은 꼭 챙겼다. 외국에 경기하러 나갈 땐 전화비 비싸다고 가족에게 전화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해 안부를 물었다.
남동생 숭연(17) 군은 “누나가 간식을 좋아한다. 그런데 자기는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는 것도 아까워 벌벌 떨면서도 나에겐 아낌없이 사주는 사람이 바로 우리 누나”라고 말했다. 또 “내가 어렸을 때부터 누나는 사실상 누나이자 아빠였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누나가 곁에 있다는 이유 하나로 헤쳐나갈 힘을 얻는다”고 덧붙였다.
18년 전 스님은 아이를 가리켜 별이라고 얘기했다. 지금 그 아이는 밤하늘의 별보다 더 반짝반짝 빛을 내며 한국 축구사를 다시 쓰고 있다.
8월 1일까지 열리고 있는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축구 여제’ 지소연 얘기다.
글·신진우(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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