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방송이 시작된 것은 언제일까? 우리나라에서 전파를 타고 최초로 방송이 시작된 날은 1927년 2월 16일이다. 1896년 마르코니가 무선통신기술을 발명한 후 소리를 전기 신호로 바꾸는 마이크로폰이 개발되고 1906년 신호를 증폭하고 전송하는 진공관이 발명되면서 라디오는 인류에게 최초로 다가왔다.
세계 최초로 라디오 방송이 시작된 것은 1920년 1월 미국에서였다. 이후 라디오 방송은 기술 개발을 통해 급격히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세계 최초 라디오 방송 이후 우리나라에 라디오 방송국이 생기기까지 7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것을 보면 당시 라디오 열풍이 얼마나 거셌는지 짐작게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국은 경성방송국이다. 호출부호는 JODK.
식민지였던 관계로 일본의 호출부호 JO에 도쿄, 오사카, 나고야에 이어 4번째 개국된 방송국이었기에 D를 부호에 넣어 JODK를 썼다. 건물은 정동 1번지에 있었다.![]()
2008년에 개봉된 영화 <라듸오데이즈>(감독 하기호)는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국인 경성방송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여러 가지 근대적 풍경들을 코믹하게 그려낸 영화이다.
영화는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적 배경에 짓눌리지 않고 21세기적 재기발랄한 시선으로 당시를 재현하고 그러면서도 독립운동과 민중의 고단한 삶 등을 담고 있다.
영화는 1927년 일본어 위주 방송으로 시작한 경성방송국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요구와 열망 끝에 1933년 4월 20일 제1방송은 일본어, 제2방송은 한국어로 분리한 이후 한국어 방송을 담당한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한국어 방송 개시는 한반도의 라디오 보급률을 엄청나게 신장시켰다.
1927년 경성방송국 개국 당시 전국에 등록된 라디오 수가 1천4백40대에 불과하던 것이 한국어 방송을 시작한 1933년에는 2만9천3백20대로 늘어났고 1937년에는 10만 대로 증가하였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제적 곤핍함과 당시 물가로 라디오가 오늘날 3D TV보다 더 비쌌던 것을 감안한다면 라디오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던 것이다.초창기 라디오의 편성은 단순했다. 뉴스, 만담, 강연, 소설낭독, 외국어 강좌, 국악, 기악연주, 라디오 연극 등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뉴스는 따로 기자가 없고 총독부가 전하는 것을 그대로 읽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내용의 대부분이 일제 선전이거나 여차하면 아무것도 없을 때도 있었다.
정기 뉴스시각인 오후 3시30분과 저녁 7시에 뉴스가 시작되어도 내용이 없어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뉴스가 없습니다’라고 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종종 벌어지곤 했다.
영화에서도 방송 전반을 맡고 있던 로이드 박(류승범 분)이 이와 비슷한 보도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 영화의 첫 장면에서 수탉을 데려와 아침을 알리려고 애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1928년 새해에 꾀꼬리 울음소리를 내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으로 실제 꾀꼬리를 가져오지만 꾀꼬리가 울지 않아 무음방송을 30분간 하기도 하였고 1929년 새해에는 실제로 수탉을 데려와 오전 7시에 울게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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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의 출연진은, 영화에서는 명월이란 기생이 고정출연하는데, 실제로 기생들이 많이 출연했다. 생방송이다 보니 출연하는 기생이 너무 긴장하여 NG를 내고는 연출자를 향해 ‘선생님 죄송해요’라고 사과하는 소리가 그대로 방송을 타 청취자를 웃게 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영화의 주인공 격인 로이드 박은 어떤 사람을 표현한 것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PD는 최승일이다. 최승일은 세계적인 무용가인 최승희의 오빠로 배재고보를 나와 니혼대학 미학과에서 수학하고 한국에 돌아와 신극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초창기 라디오 드라마는 지금과 같은 형태는 아니고 기존의 연극대본을 읽어주는 식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점차 발전하여 1933년 무렵부터는 나름 효과음향도 넣고 배우도 역할을 분리해 진지하게 연기에 몰입하는 형태로 발전하였다. 영화에서 독립운동가 K(이종혁 분)가 라디오에서 ‘의문’을 담당하는 걸로 나오는데 이 의문이 바로 효과음향이다.
영화에 나오는 라디오 드라마 ‘사랑의 불꽃’과 비슷한 형태의 라디오 드라마는 작가 김희창이 만든 ‘라디오플레이미팅’의 회원들이 주축이 된 드라마 <노차부>였다. 이 드라마 출연진은 복혜숙, 김용규, 이운방 등 당시 연극 무대에서 이름 있는 배우들이었다.
당시 라디오 드라마는 요즘 시청률 높은 TV 드라마 이상으로 인기가 대단해서 라디오를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라디오를 틀어주는 상점 앞에 인산인해로 모여 경찰이 이를 단속하러 나오기까지 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사람들이 거리에 모여 드라마를 함께 청취하던 장면은 실제로 벌어졌던 모습인 것이다.
드라마란 것이 대중에 어필하는 것이 필수이다 보니 1933년 10월 1일자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라디오 드라마 작가 이석훈은 대중에게 아부하기 위해 ‘에로와 그로’(에로틱과 그로테스크)를 섞어 넣어야만 한다는 한탄을 한다.![]()
1930년대 라디오 드라마도 요즘처럼 대중의 입맛에 맞게 점점 막장드라마로 가는 일이 많았던 듯하다. 영화 속에서처럼 1930년대 대중은 라디오 드라마에 울고 웃으며, 드라마에 나온 배우의 팬이 되기도 하는 등 새로운 대중문화를 만들어갔다.
이러한 라디오의 인기로 또 다른 방송국이 생기기도 하였다. 영화 속에서 독립운동을 도운 죄로 감방에 호송되던 로이드 박이 노 작가(김뢰하 분)에게 부산에도 방송국이 생겼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경성방송국의 인기에 힘입어 1935년 부산에도 방송국이 개국하였다.
1930년대 라디오 방송은 태생적으로 일제의 압박을 받아야 하는 굴레가 있긴 했지만, 우리나라 민중의 애환을 얼마만큼은 위로하고 또 새로운 대중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라디오 방송은 1930년대 후반 일제가 중일전쟁에 나서면서 점차로 문화적 기운은 사라지고 철저히 군국주의를 선전하는 방송으로 전락해 갔다.
글·김정미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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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