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오랜만에 한국소설이 독서시장에서 시쳇말로 대박을 터트린 모양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판매량을 올리며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영화로 제작된다. 좋은 일이다. 우리 문학이 의외로 침체기에 들어서 일부 유명작가를 빼고는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한 시대를 살아가며 구성원들이 느끼는 삶의 애환을 문학만큼 잘 형상화할 매개는 없다. 문제작이나 화제작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에 대한 문학적 대응이 약하다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우리 삶에 대한 집단적 성찰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신인작가의, 그것도 문학상을 거푸 받은 작가의 장편이 화제가 되고 있어 꼼꼼히 읽었다. 정유정의 <7년의 밤>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칭찬 일색이었다. 솔직히 작품을 읽고 나서, 너무 많은 칭찬에 과장되지 않았나 싶었다.
흡인력 강한 문장, 현장에 대한 치밀한 조사,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놀라운 형상력,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드러내는 수작 등의 평가는 이 작품만이 아니라 웬만큼 잘 쓰인 장편소설에는 일상적으로 따라붙는 수사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잘된 점도 있지만 아쉬운 점도 많았다.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드러내 놓은 작품이라 지적 긴장을 불러일으킬 만한 반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잘 갖춰져 있지 않았다. 주목할 만한 신인이라는 평가는 걸맞지만, 주변의 평가가 너무 과하다는 인상을 씻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을 읽을 필요 없다는 막돼먹은 소리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칭찬이라는 거품을 걷어내고 읽으면 나름의 미덕과 생각할 거리를 전해 주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의 구도가 기존의 틀을 깬 것을 높이 평가한다.
우리의 정치적 무의식에는 사적 보수의식이 팽배해 있는 듯싶다.
공권력이 갈등을 정당하게 해소해 주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이 발표한 일련의 영화가 이런 생각을 주조로 하고 있다.
그런데 대체로 그런 작품은 사회적 약자가 강자를 대상으로 펼치는 개인적인 복수극이 대세를 이룬다.
<7년의 밤>은 상투적인 그런 모티브 자체를 뒤집는다. 남부러울 것 없는 토호가 별 볼 일 없는 한 사람에게 지독하고 끈질긴 복수를 하고 있다. 이 전복은 무엇을 뜻하는가. 한 평론가가 지적했듯 사회적이거나 정치적 함의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이 작품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지 않았다 해서 우리의 사고가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 배어 있는 우리 삶의 현주소를 곱씹어 보면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다.
작가가 굉장히 공들여 창조해 낸 인물이 전직 야구선수인 최현수다. 지지리도 궁상맞은 집안에서 태어나 무능력한 아버지 밑에서 힘겹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갔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는 삶을 희롱하는 운명의 변화구를 제대로 쳐내지 못했다. 그래서 예기치 못한 사고를 저지르고 처절한 복수극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이 인물에 주목한 것은, 변화한 아버지상을 예고하고 있다 싶어서다. 그는 자신의 불행을 자식 세대에게 물려주려 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이런 모습은 모성애에 해당했다.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가정에서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은 다시 그런 아버지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최현수는 불행의 유전자를 자신의 대에서 끝장내기 위해 몸부림친다. 거대한 몸으로 벌이는 이 연약한 몸짓이 관심을 끌고 이 인물에 몰입하게 했다. 의외로 많은 남성이 비슷한 경험으로 영혼이 병들어 있는 경우를 자주 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최현수처럼
처절하게 노력한다면, 정말 가정을 지켜낼 수 있겠지 싶었다.
세령호에 인물들이 모여들고, 그들 삶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해 잠수라는 독특한 장치가 나타나고, 절대악의 소유자가 벌이는 끔찍한 횡포 등이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드는 데 이바지한 듯하다. 그러나 영화가 되어야 좋은 소설은 아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바라보기를 회피하는, 적나라한 삶의 내면을 드러내는 작품이 좋은 소설이다. <7년의 밤>을 이런 시각에서 읽어보면 좋을 성싶다.
글·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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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