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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김석윤 감독이 올해 초 퓨전사극을 표방하고 만든 영화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은 관객수 5백만명을 돌파하며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 영화는 코미디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장르가 마구 뒤섞인 그야말로 퓨전(fusion)영화답게 역사적 사실 또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끌어다 재미있게 재구성됐다.

영화는 18세기 말 정조 때 실학의 부흥, 무역을 바탕으로 한 상업의 발달, 천주교의 도래, 노론들이 주축이 된 신권·정조의 왕권 강화책과의 갈등 등 역사적 상황을 바탕에 깔고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 주인공인 탐정(김명민 분)은 그 이름을 정확히 밝히고 있지 않은데, 아마도 정약용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한다.

영화에서는 마치 조선후기에 탐정이라는 관직이 있었던 것처럼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탐정이란 단어는 일본에서 영어 단어 ‘Detective’를 한자로 번역한 것이다. 조선후기에 탐정과 비슷한 일을 한 관직이 있다면 그것은 암행어사일 것이다. 암행어사는 지방관의 비리를 알아내 벌을 주는 역할도 했지만 민간을 사찰하여 백성들의 은원(恩怨)을 해결해 주는 일도 했다.


조선 후기 뛰어난 실학자이자 정조의 총애를 받고 있던 정약용은 1794년 은밀히 왕명을 받고 적성, 마전, 연천 등 경기도 일대에 암행어사로 나간 적이 있다.

영화의 배경이 된 적성지역이 바로 정약용이 암행어사로 나간 곳이다. 이때 정약용의 나이 33세였다. 영화 속 명탐정이 임오생이라고 나이를 밝히고 있는데 임오년은 1762년 정약용이 태어난 해이다. 영화에서 탐정은 홍문관 수찬(정육품)의 자리에 있다가 임금의 명으로 명목상 열녀정표를 하기 위해 적성으로 간다. 정약용이 암행어사로 가기 전 직위도 홍문관 수찬이었다.

정약용이 적성방면에 암행어사로 간 이유는 물론 연쇄살인범을 잡는 일은 아니었다. 정약용은 경기 서북부 일대의 농촌상황을 살피고 지방수령을 감찰했다. 적성을 지나면서 정약용은 농촌의 비참한 현실을 보고 충격받는다. 그리고 암행어사의 일을 충실히 해내겠다는 다짐으로 시를 한 편 지었다.

‘(전략)구리 수저 이정(里正)에게 빼앗긴 지 오래인데 엊그젠 옆집 부자 무쇠솥 앗아 갔네. 닳아 해진 무명 이불 오직 한 채뿐이라서 부부유별 이 집엔 가당치 않네. 어린 것 해진 옷은 어깨 팔뚝 다 나왔고 날 때부터 바지, 버선 걸쳐 보지 못하였네.(중략)
지난 봄에 꾸어 온 환자미가 닷 말인데 금년도 이 꼴이니 무슨 수로 산단 말가.
나졸놈들 오는 것만 겁날 뿐이지 관가 곤장 맞을 일 두려워 않네.(중략)
폐단과 어지러움 근원이 혼란하니 공수, 황패 다시 온들 바로잡기 어려우리.
정협의 유민도를 넌지시 본받아서 시 한 편에 그려 내어 임금님께 바치리다.’

정약용의 시 ‘적성촌에서’ 中 시에서 그려진 당시 농촌의 모습은 영화 속 적성의 백성들 그 모습과 흡사하다. 정약용은 적성을 비롯한 경기 서북부 일대의 고을을 돌면서 연천현감 김양직과 삭녕군수 강명길의 뇌물 수수, 세금 착복, 고리대 등의 비리를 낱낱이 밝혀 이들을 벌주게 했다.

김양직은 사도세자의 현릉원 자리를 봐 준 지관이고 강명길은 혜경궁 홍씨의 주치의관 출신이라 모두 그 위세에 눌려 꼼짝을 못했지만, 정약용에게 그들의 인맥과 특권은 의미가 없었다. 당시 30대 초반의, 정조의 총신이었던 정약용은 임금에게 직언을 올릴 수 있는 패기만만한 젊은이였다.

흔히 정약용은 그의 엄청난 저작물과 깊이 있는 사상으로 인해 철학자나 개혁가 등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그의 18년간 유배 생활의 업적이고 30대의 정약용은 새로운 배움에 목마른 재기발랄하고 천재적인 기술관료였다. 젊은 나이의 정약용은 중국을 통해 들어오는 새로운 문물과 과학기술에 열광하고 이를 더 배우기 위해 종교도 쉽게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천주교와 함께 들어온 서양문물을 좀 더 알고 싶어 쉽사리 세례를 받았지만 천주교의 교리가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여기고 곧이어 배교했다. 다소 과장되고 코믹한 설정이지만, 영화 속에서 탐정이 큐빅 퍼즐 하나 얻기 위해 섣불리 세례를 받고 이것이 내내 약점이 되는 것은 정약용의 인생과 거의 흡사하다.

정약용은 홍문관 수찬 시절 정조의 현릉원 행차를 위해 한강에 배를 이어 붙여 배다리를 만들기도 했고, 화성을 설계했으며 거중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오늘날로 생각하면 그는 건축가나 기계설계사였던 셈이다. 영화 속 탐정도 자연과학에 매우 달통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수사에 적용한다. 영화 말미에 나오는 거중기 설계도도 정약용의 설계도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뛰어난 과학자였던 30대 정약용의 성격은 어땠을까? 영화 속 명탐정처럼 코믹하고 경박하진 않을지라도 꽤나 유쾌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젊은 시절 도박을 해 보기도 했고,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밤새워 술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꽃을 좋아해 옷깃에 꽃이 다칠까봐 직접 대나무 울타리까지 만들었다고 하니 매우 다정하기도 했던 것 같다.

정조의 전폭적 후원과 총명한 머리, 올곧은 가치관과 정치적 포부를 두루 갖추었던 젊은 나이의 정약용. 어쩌면 그도 영화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속 주인공 탐정처럼 기록되지 않은 삶의 어느 한순간에 이것저곳을 기웃거리고, 여기저기서 사고를 치며 조선 거리를 종횡무진 질주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글·김정미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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