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아파트가 한국 주거의 표준이 되고, 현대적인 입식 생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면서 우리는 서양식 가구도 비판 없이 무조건 복제해 사용했다. 로코코 풍이든 수퍼 디자이너의 디자인을 베낀 가구든 가짜란 게 분명한 키치였다.
그러나 이정섭, 박종선, 류수현 세 목수가 만든 가구에는 북유럽이나 이탈리아 가구에서 발견할 수 없는 ‘한국성’이 있다. 게다가 좌식이 아닌 현대적인 생활양식도 충분히 고려한 디자인이다.
스티브 잡스 집에 조지 나카시마의 목제 가구만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일본식 가내 목공예 정신을 미국식 생활에 접목한 그의 가구를 두고 스티브 잡스는 ‘우아한 장인의 솜씨’라 극찬했다.
그의 의자는 1억원을 훨씬 웃돈다.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다는 것이다. 기술의 질은 장인에 대한 사회적 대우에 따라 좌우된다.
사회가 그들을 대접하면 제품의 질은 향상하고, 대접이 소홀하면 타락한다. 만 번의 손길을 타면 딱 그만큼의 윤이 나는 재료가 바로 나무다. 나무를 다루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성을 조금만 덜들여도 바로 티가 난다’며 웃는다.
모든 제품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간편하게 나오는 시대에 아직도 옹골지게 나무만 만지는 이들의 손끝은 분명 값어치가 있다.![]()
그리스 신전과 노트르담 사원이 돌로 쌓아올린 건축이라면, 한국의 병산서원과 무량수전은 나무로 만들었다. 가만 보면 한국의 전통건축은 서양과 달리 나무로 지은 게 대다수다. 왜 그럴까? 우리의 자연환경을 둘러보자. 고만고만한 야산 천지에 온통 나무뿐이다. 우리 조상들은 우리 주변에 가장 흔한 소재였던 소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가재도구를 마련했다. 아담한 규모의 집에 큰 가구는 어울리지 않았을 터.
당연히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소박하고 실용적인 가구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목가구가 생활화된 덕에 한국 사람은 아직도목제 가구를 선호한다. 외국의 사무 가구는 대량 생산이 용이하고 수명이 긴 철제로 만드는 추세인 데 반해 한국의 사무 가구는 여전히 나뭇결을 살린 무늬목을 고집한다. 그만큼 목가구는 한국인의 정서와 닿아 있는 것이다.
이 선두에 내촌목공소가 있다.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에 자리해 이름이 ‘내촌목공소’다.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나 나무로 가구를 만들고 집을 짓는 게 재미났던 이정섭 목수. 그를 중심으로 젊은 목수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생긴 조직이 바로 내촌목공소다.
이들의 가구는 청담동에서 명품 브랜드 못지않은 인기다.![]()
이들의 가구는 왜 이리 비쌀까. 목수라면 나무에 욕심이 많은 건 당연지사. 북미산 활엽수를 사용한다. 원목을 판재로 잘라 5년 이상 말린 다음 가구를 짠다. 나뭇결 그 자체가 아름다워 최소한의 디자인 외에 다른 치장을 전혀 하지 않는다.
내촌목공소의 가구는 자칫 밋밋하고 평범해 보인다. 투박하고 견고하며 무겁다. 목재 자체에서 풍기는 힘과 내력이 만만찮다. 이정섭 목수가 직접 밝혔듯 ‘바보온달’처럼 정직하면서 우직하다. 사골을 깊이 우려낸 것처럼 진하다. 좋은 재료로 좋은 가구를 만드는
것. 이것이 내촌목공소의 전략이라면 전략이란다.
섬진강가, 산골마을 야트막한 함석집, 박경리의 <토지>에서 한국성을 느낀다는 내촌목공소 목수들. 이들의 가구는 우리네 자연, 우리네 정서를 닮아 정이 느껴진다.
북미산 활엽수를 사용해 고가의 가구를 만드는 가구장이가 또 있다. 바로 원주에서 태어나 원주에 작업실을 두고 있는 박종선 목수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다. 2009년 디자인 마이애미/바젤 전시에 선보인 제품은 모두 팔렸을 정도. 대학도 나오지 않은 그가 나무를 만지게 된 건 20대 후반 액자 공장을 통해서다. 박종선은 문화재청 학교에서 전통공예를 배우며 조선시대 목가구의 기술을 완벽히 터득했다. ‘딱 10년만 해보자’는 결심은 그 사이 ‘평생 해보자’로 바뀌었다.
같은 나무를 사용해도 그의 가구는 선이 가늘고 날렵한 게 특징. 조선시대 선비들이 사용한 가구와 미국 셰이커교 가구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밋밋한 뼈대만으로 구성했음에도 균형 잡힌 구조미가 돋보인다. 간결한 선과 명확한 면으로 치밀하게 건축 된 그의 가구는 그 자체로 정연한 질서를 갖춘 오브제다.![]()
박종선은 가구라는 고정된 틀에 묶이지 않는 개척자다. ‘시대적 감성과 전통가구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 고민한다. 가구를 만드는 기술에 오디오, 조명등 같은 최첨단 문명을 접목시킨다.
있는 듯 없는 듯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최소의 가구’를 지향하는 박종선의 작업에는 다양한 시도가 응집되어 있다. 최근에는 김은성 카이스트 교수, 이강래 원광대 교수와 더불어 제2회 홍진기 창조인상을 받기도 했다.
최근 금산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류수현은 ‘감성 가구’의 대표주자다. 서울대 금속공예를 졸업한 뒤 미국 로체스터 공과대학에서 가구 디자인을 전공한 류씨는 재현에만 치우친 전통가구와 무조건 서양식을 따르는 현대가구 모두 불만이다. 그는 현재 한국의 생활 양식에 맞는 가구를 보여주려 한다.
기능보다 미적 가치에 무게를 더 둔 듯한 그의 가구는 기존 목가구가 보여주는 형식에서 다소 벗어난 느낌이다. 무엇보다 가구를 만드는 과정이 흥미롭다. ‘찌글거리는 선으로 그려진 드로잉’이 2차원 종잇장을 벗어나 그대로 현실로 툭 튀어나왔다.
손으로 그린 스케치에 디자이너의 감성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 류수현. 그는 이를 스캔해 디지털화했다. 그리고 기계는 컴퓨터 프로그래밍화된 스케치의 선을 정확하게 깎아냈다. 그에게 있어 최첨단 디지털 기계는 도구의 연장이자 손의 확장이다. 그렇게 나온 가구가 ‘분할된 단면’ 시리즈다.
이와 정반대의 방법으로 탄생한 조명등도 있다. 띠톱으로 자작나무 합판을 꽃 모양으로 자른 뒤 이를 하나하나 끈으로 엮고 매듭지어 만든 ‘꽃 조명’ 시리즈다. 수공예적인 ‘한 땀 한 땀’ 정신으로 만든 이 제품은 느림의 미학을 담고 있다.
지리멸렬한 시간 싸움을 견뎌낸 디자이너의 노고가 실제 제품이 된 것이다. 디지털 기계와 손, 두 가지의 도구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양손잡이 디자이너 류수현은 가구에 디자이너 개인의 감성을 투영한다.
글·임나리 (월간 디자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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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