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임진왜란 전후의 난세를 배경으로 주인공 한견주(견자)가 스승 황정학과 그가 뒤쫓는 이몽학을 통해 검객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만화의 제목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조선시대에는 한글 맞춤법 없이 그냥 발음대로 표기했다는 것에 착안, 작가가 고의로 맞춤법에 연연하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영화는 원작 만화와는 다소 다르게 주인공 한견주(백성현 분)보다는 황정학과 이몽학의 서로 다른 꿈과 그 대결에 방점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정여립은 선조시대의 문신 겸 사상가로 붕당이 나뉠 때 처음에는 서인이었다가 훗날 동인 측에 선 인물이다. 통솔력 있고 명석했으며 학문이 높았는데, 마음에 담은 말을 가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내뱉어 선조로부터 미움을 사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인망이 높아 낙향한 뒤에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
그는 진안군 죽도에 서실(書室)을 세워 활쏘기 모임을 여는 등 사람들을 규합하여 대동계를 조직하였다. 이 대동계는 1587년에는 손죽도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치는 등 공을 세우기도 하였는데 이후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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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천하는 일정한 주인이 따로 없다’는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과 ‘누구라도 임금으로 섬길 수 있다’는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 등 왕권 체제하에서 용납될 수 없는 혁신적인 사상을 공공연히 설파하던 정여립은 결국 반란을 기도한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비참하게 자살하고 만다.
이 정여립사건을 주로 처리한 것은 당시 서인의 영수였던 정철이었다. 정여립이 동인계였던 관계로 정여립과 관련된 동인들이 대거 처형되었는데 이를 기축옥사라고 한다.
영화 속의 이몽학과 황정학은 이 정여립이 만든 대동계에 관련한 인물로 나온다. 맹인검객으로 나오는 황정학은 기축옥사 때 친구 정여립이 자살한 것이 아니라 권력욕에 취한 이몽학에 의해 살해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몽학을 뒤쫓는다. 한편 이몽학은 정여립이 남긴 대동계를 이끌어 자기가 왕이 될 꿈을 꾸는 인물로 나온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실제 황정학과 이몽학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만화의 주인공이고 영화 속에서도 중요한 인물로 나오는 견주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황정학과 이몽학은 실존인물이다.
황정학은 <사암도인침구요결>이라는 한의학 침구술에 관한 책을 남긴 인물로 생각되고 있다. 사암이 황정학의 호이고 황정학은 승려로 사명당의 수제자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영화 속에서도 맹인검객 황정학은 검을 잘 쓸 뿐만 아니라 침술에도 능해 이몽학의 칼에 맞아 거의 죽음에까지 이른 견주를 침과 뜸으로 살려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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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몽학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영화 속에는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킨 때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실제로 이몽학의 난이 일어난 것은 임진왜란 중인 1596년의 일이다.
이몽학은 전주이씨로 종실의 서얼이라고도 전한다. 거친 성격으로 집안에서 쫓겨난 이몽학은 임진왜란때 장교가 되었다. 그는 흉년이나 전란 때에 국가에 곡식을 바치는 납속자를 모집하는 모속관 한현의 선봉장으로 있으면서 동갑계를 조직하였는데, 이것이 영화에서처럼 정여립의 대동계와 관련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몽학은 회원 7백명을 사주하여 임진왜란 후의 대기근으로 굶주린 농민을 선동해서 홍산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농민은 ‘왜적의 재침을 막고 나라를 바로잡겠다’는 반란 명분에 크게 호응하여 삽시간에 수천의 무리를 이루어 충청도 일대를 휩쓸고 서울로 향하기 직전 홍주(지금의 홍성)를 공격하였다.
당시 홍주목사 홍가신은 민병을 동원하여 이를 반격하는 한편 현상금을 걸어 반란군의 분열을 꾀하였다. 결국 전세의 불리함을 느낀 이몽학의 부하들이 이몽학의 목을 베어 투항하면서 반란은 한 달 만에 진압되었다.
영화에서는 이몽학이 반란군을 이끌고 서울까지 들어와 선조가 피란을 간 후 텅 빈 경복궁에서 견주와 대결을 펼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몽학의 난이 일어난 1596년에는 이미 선조는 서울로 돌아와 있었고,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직후 화재로 전소된 상태였다. 반란은 한 달 만에 끝났지만 이몽학의 난이 남긴 여파는 컸다.
바깥의 외적을 막아내기도 급급한 지경에 내부의 반란은 그 반란의 크기를 떠나 심리적으로 큰 부담을 갖게 만들었고, 그 여파는 왜적을 막아내는 데 큰 공을 세웠던 의병장들에게 미쳤다. 이몽학의 난 관련자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김덕령, 곽재우 등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의병장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온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 부분을 다루지 않았는데 실제 이몽학의 난은 난 그 자체보다 난의 수습과정에서 관련자로 의병장들이 무고를 당하면서 선조가 이후 의병장들을 의심하고 의병장들도 전의를 상실해 버렸다는 데서 더 큰 문제를 남겼다. 이몽학의 난 처리과정에서 당시 의병장 중 큰 공을 세웠던 김덕령은 누명을 쓰고 고문 끝에 죽음을 맞기도 하였다.
외부에서 적이 나라를 침범해 오는 긴박한 때에도 중앙 정부에서는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당색 대결을 펼치는 데 급급했다. 왜적의 침입으로 나라의 운명이 오늘내일 하는 시점에서도 왕이 되고 싶은 헛된 욕망에 그 칼끝을 적에게 돌리지 않고 왕에게 향하다 자멸하는 이몽학을 통해 영화는 허무한 역사와 권력을 구름과 달에 빗대어 풍자하고 있다.
글·김정미 (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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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