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난해 초 성남 일화가 일본서 겨울 전지훈련할 때 일이다.
성남은 미야자키현에서 일본 J리그 강호 세레소 오사카와 연습경기를 치를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당시 세레소 오사카에는 한국에서 홍익대를 다니다 K리그를 거치지 않고 J리그로 건너간 김보경과 축구대표팀 제3의 골키퍼 김진현이 포진해 있었다.
연습경기였지만 두 팀은 한 치 양보 없는 접전을 벌였는데, 중앙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은 김보경이 워낙 빠르고 종횡무진으로 성남 진영을 헤집고 다니며 괴롭히자 성남 선수들은 뿔이 날대로 났다.
2010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으쓱대던 때라 더욱 그랬다.
성남 선수들은 승부에 집착한 나머지 김보경에게 사정없이 거친 태클을 해댔다. 김보경은 수없이 걷어채이고 맞고 하면서 그라운드에 나뒹굴었다.
막이 오른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1·2차전에서 2골 2도움의 맹활약을 펼치며 한국 축구대표팀의 새 아이콘으로 떠오른 김보경. 그의 화려한 등장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지만, 너무나 극적이다. 박지성은 지난해 초 아시안컵 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전념하기 위해 국가대표에서 스스로 은퇴하면서 김보경을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다. 그리고 김보경은 박지성의 백넘버인 7번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일본 J리그에서 뛰는 데다 지난해 조광래 감독 체제의 축구대표팀에서 유럽파인 지동원(선덜랜드)이나 손흥민(함부르크SV) 등에 가려 김보경은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 올해 초 최강희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애초 최 감독은 부상 회복 중인 이청용(볼턴 원더러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전북 현대 사령탑 시절 이동국과 팀의 전성기를 주도한 브라질 출신 에닝요를 귀화시키려 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의반대로 무산됐다.
최강희 감독은 지난 6월 9일 카타르와의 아시아 최종예선 원정 1차전에서 이동국(전북 현대)을 원톱, 김보경을 왼쪽 윙포워드, 이근호(울산 현대)를 오른쪽 윙포워드로 선발 출장시키는 카드를 들고 나왔고 대성공을 거뒀다. 골잡이 이동국이 침묵했지만, 0대1로 뒤지고 있던 전반 26분 김보경의 절묘한 ‘칩샷’ 센터링을 이근호가 헤딩 동점골로 연결시키며 이를 발판으로 한국대표팀은 4대1 대역전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었다.
12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레바논과의 2차전 영웅도 김보경이었다. 원톱 이동국과 처진 스트라이커 이근호를 지원사격하는 오른쪽 미드필더로 출격해 선제골과 두번째 골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대표팀의 3대0 완승을 이끌었다. 그동안 13차례 A매치 동안 골맛을 보지 못했으나 이날 천금보다 귀중한 골을 2개나 성공시키며 골잡이로서의 가능성도 한껏 발휘했다.![]()
김보경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박지성 후계자라는 꼬리표가 부담되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동기 부여를 많이 해줬고, 박지성이 은퇴하고 난 뒤 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과도 좋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맨체스터시티를 좋아하는데, FC바르셀로나에서 뛰는 게 꿈”이라고 유럽 진출의 꿈을 밝히기도 했다.
일선 축구지도자나 전문가들은 김보경에 대해 ‘박지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재목감’이라고 평가한다. 박지성이 갖추지 못한 기술까지 겸비했다는 이유에서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움직임이 많고 정말 많이 뛴다. 그러면서도 상당히 지능적인 축구를 한다. 축구 지능이 뛰어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킥도 잘하고, 드리블 능력과 스피드가 좋다. 박지성처럼 많이 뛰지만 스타일은 사뭇 다르다. 테크니션이어서 앞으로 박지성을 뛰어 넘을 수도 있다.” 하재훈 전 프로축구 감독의 평가다. 최강희 감독도 “23세 시절 박지성보다 현재의 김보경이 낫다”고 평가한다.
김보경은 1백78센티미터, 73킬로그램으로 크고 다부진 몸집은 아니다. 하지만 왼발잡이로 매우 빠르고 활동량이 많아 박지성을 연상시킨다. 신갈고 출신으로 이미 19세 이하 등 연령대별 국가대표로 발탁돼 발군의 실력으로 축구인들로부터 주목을 끌었다.
J리그 첫해인 지난해 28경기 8골을 기록했고, 올 시즌에도 세레소 오사카의 주 득점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김보경의 화려한 등장에 대해 “J리그가 키워냈다”고 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과거 박지성처럼 ‘섀도 스트라이거’나 중앙 미드필더, 좌우 윙포워드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멀티플레이어라고 그를 평가한다.
이청용의 공백 때문에 좌우 윙포워드에 누굴 쓸지 고민하던 최강희 감독. 김보경의 등장으로 그런 고민이 싹 없어지게 됐다. “양날개는 그동안 고민했던 포지션인데, 김보경·이근호가 카타르전에서 잘해 줬다. 특히 김보경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 선수다.” 최 감독이 카타르와의 1차전 뒤 한 말이다.
김보경이 박지성의 후계자로 우뚝 섬으로써 축구 대표팀 공격옵션도 상대에 따라 더욱 다양해질 수 있게 됐다. 병역기피 논란에 휩싸였던 박주영(27·아스널)도 지난 13일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병역의무 수행을 재차 다짐하면서 앞으로 최강희호에 발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주영과 함께 이청용까지 복귀하면 공격자원은 그야말로 넘쳐난다. 최감독으로선 행복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현재 대표팀은 해외파와 국내파, 신구 조화가 잘 이뤄져 있고, 능력있는 선수들이 많다. 게다가 우려했던 아시아 최종예선 1, 2차전에서 모두 통쾌한 완승을 거둠으로써 앞으로 남은 6경기도 큰 부담없이 치르게 됐다. 월드컵 본선 8회 연속 진출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다.
최강희호는 9월 11일 우즈베키스탄과 아시아 최종예선 원정 3차전을 치른다. 이어 10월 16일엔 이란과의 원정 4차전을 벌인다. 아직 두 차례 어려운 원정경기 고비를 넘겨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후에도 4경기가 더 남아 있다. 그러나 1·2차전에서 7골을 터뜨리는 폭발적 공격력을 선보이며 완전하게 자신감을 충전시킨 태극전사들의 상승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글·김경무 (한겨레신문 스포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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