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섬진강변 19번 국도 쌍계사 가는 길, 화개마을 층층 비탈에는 수십명의 아낙들이 찻잎을 따고 있다. 곡우는 이미 지나 우전(雨前)은 다 땄고, 지금은 세작을 만들 가늘고 고운 찻잎을 따고 있다.
하동은 국내 최대의 야생차 재배지다. 가파른 계곡 기슭 곳곳에 밭이 만들어져 있다. 지리산 화개동 쌍계사 주변은 차 시배지(始培地)로 널리 알려졌는데, <삼국사기> 제10권 신라본기 흥덕왕 3년(827년)조에 보면 ‘당나라에 갔다가 귀국한 사신 대렴이 차 종자를 가지고 왔다. 왕은 그것을 지리산에 심게 했다’고 돼 있다. 이후 화개동은 임금님께 차를 바치는 곳, 즉 어차동천(御茶洞天)이 됐다.
쌍계사 일주문 못 미쳐 차시배 추원비가 세워져 있다.
하동차는 맛과 향이 각별하다. 지리산 화개 골짜기의 연평균 기온은 섭씨 13.8도, 강수량은 1천5백38밀리미터다. 지리산이 연일 운무를 쏟아내고 일조량도 풍부하다. 산기슭 돌밭은 물이 잘 빠지고 다습해 차나무가 자라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산이 워낙 가파르다 보니 비료나 농약을 쓰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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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선사는 <동다송>에서 “지리산 화개동에는 차나무가 40~50리에 걸쳐 자란다. 차는 골짜기의 난석에서 자란 것을 으뜸으로 치는데 화개동의 차밭은 모두 골짜기며 난석(爛石)”이라고 말했다.
또한 하동차는 증기로 쪄 내는 방식이 아닌 마른 솥단지에 높은 열을 가해 차를 ‘덖는’ 방식으로 만든 수제 녹차다. 맑은 날 잎을 따 무쇠 솥에 찻잎을 덖은 후 멍석에다 비비고 말리는데, 찻잎을 멍석에 비비는 이유는 일부러 상처를 내 찻물로 다릴 때 더 진한 향이 배어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동군청에 따르면 하동의 차밭은 4백95만8천6백77제곱미터(약1백50만 평)나 된다. 그 중 3백50만 제곱미터가 화개면과 쌍계사 주변에 몰려 있다. 하동군은 차 판매수입을 매년 약 2백50억 이상, 부가산업까지 합치면 8백억원 가까이 올린다고 한다.![]()
화개골에 자리한 차밭을 따라가다 보면 발걸음은 자연스레 쌍계사에 닿는다. 신라 성덕왕 21년(722) 의상대사의 제자 삼법스님이 지었는데, 고운 최치원의 친필이 새겨진 쌍계석문, 대웅전 옆에 한적하게 자리 잡은 진감선사 대공탑비(국보 제47호), 국사암 뜰의 천연 느릅나무 등이 볼 만하다. 일주문으로 향하는 울창한 숲길은 한여름에도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다.
쌍계사는 범패(梵唄)의 발상지로도 잘 알려졌다. 진감선사 혜소가 중국에서 불교 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쌍계사 팔영루에서 범패를 만들어 냈으며, 범패 명인들을 많이 배출했다.
5월 하동을 한층 더 아름답게 채색하는 곳은 악양들판이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잘 알려졌다. 들판은 넓기도 하거니와 지리산 골짜기까지 깊숙이 뻗어 있어 ‘거지가 밥 동냥을 하며 다 돌려면 1년이 걸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악양의 원래 이름은 악양(嶽陽). 하지만 나당연합군의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중국의 악양과 같다 해서 악양(岳陽)이라고 이름붙였다.
사실, 평사리는 <토지>의 주 무대였지만 박경리 선생은 평사리와 아무 연관이 없다. 박경리 선생은 1960년대 말 어느 날 섬진강을 지나다가 악양들을 보곤 <토지>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 무렵 선생은 경상도 땅에서 만석지기 사대부 집안이 4대에 걸쳐 펼쳐 나가는 대하소설의 무대를 찾는 중이었다. 하지만 선생은 <토지>를 집필할 때는 평사리에 한 번도 찾지 않았다고 한다.
악양들판은 5월이면 청보리밭과 보랏빛 자운영꽃밭이 만들어 내는 색의 조화로 황홀하다. 자운영은 겨울철 소먹이로 논에 심었던 한해살이 풀. 모내기를 앞두고 갈아엎으면 자연스레 퇴비가 돼 친환경농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들판 한가운데 나란히 서 있는 부부 소나무 두 그루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악양들판 가까이 최참판댁이 있다. 최참판댁은 많은 이들이 원래부터 있던 집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SBS 대하드라마 <토지>를 촬영하기 위해 만든 야외세트다. 한옥 14동으로 꽤 공들여 지은 듯 유서 깊은 영남의 여느 고택 못지않게 으리으리하다.
길상이 거주하던 행랑채, 최치수의 신경질적인 기침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사랑채, 별당 아씨가 머물던 연못 딸린 별당 등 넉넉하지만, 왠지 적막한 기운이 흐르던 소설의 분위기가 잘 표현돼 있다.
인근의 ‘평사리 문학관’도 좋은 구경거리다. <토지>를 비롯해 하동과 관련된 문학 작품 등을 살펴볼 수 있는 평사리 문학관도 만들어 놓았다.
최참판댁을 지나 고소산성으로 올라갈 수 있다. 600년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 때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원군인 위병의 섬진강 통로를 차단하기 위해 만든 성이다. 성은 복원이 잘 되어 있다. 가파른 언덕이 있어 숨이 차기도 하지만 길이가 길지 않고 일단 올랐을 때 경치가 좋아 힘듦을 잊게 한다. 솔바람 부는 산성에 앉아 드넓은 악양들판과 화개에서 하동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풍경은 가히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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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하동에는 찻잎 따기 뿐만 아니라 섬진강 재첩 잡기도 한창이다. 4월 중순부터 섬진강에는 재첩이 나기 시작한다. 재첩은 가막조개, 다슬기라고도 부르는 민물조개. 바다 가까운 금성면에서 고전면 신월리를 지나 하동송림까지 이어지는 섬진강변에서 재첩이 난다. 하동포구 일대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데다 물이 깨끗하고 고운 모래가 깔려 있어 재첩이 살기에는 최적지다.
맑은 물에서만 잡히는 재첩은 5월이 가장 맛있을 때. 정갈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내는 재첩국은 해장국으로 그만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술꾼들의 대표적인 속풀이 음식이기도 했다. 재첩국을 동이에 담아 머리에 인 아낙들이 골목을 누비며 “재첩국 사이소!” 하며
아침을 열었다. 하동 어디를 가나 재첩 음식을 맛볼 수 있고 재첩특화마을도 조성돼 있다.
참게는 재첩과 함께 섬진강을 대표하는 음식재료다. 특히 하동 섬진강 참게는 바닷물과 만나는 기수지역에서 서식해 비린 맛이 덜하다. 뿐만 아니라 참게 본연의 맛 또한 강해 명품 대접을 받는다.
글과 사진 최갑수 (시인ㆍ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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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