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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조선 선조(宣祖) 때 진천 현감을 지낸 어몽룡(魚夢龍· 1566~1617)은 ‘조선 제일의 묵매화가(墨梅畵家)’다. 그는 매화 가지는 담묵(淡墨)으로 정갈하게, 꽃잎은 윤곽선 없이 몰골법으로 단순하게 그려낸 후, 그 위에 농묵(濃墨)으로 꽃술을 점 찍어 표현했다. 당대 사람들은 <묵매도>를 “눈 속에서도 꽃을 피워 맑은 향기를 세상에 퍼뜨리는 매화의 절개를 강인하고 청신(淸新)하게 표현했다”고 했다.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1707~1769)은 사군자(四君子)에 모두 능했다. 그의 작품 <오상고절>(傲霜孤節·서리를 이겨내는 외로운 절개)에는 바위 곁에 피어난 국화가 표현됐다. 습윤한 필치의 담묵으로 표현된 국화는 함께 그려진 농묵의 바랭이풀과 대비돼 고아한 정취를 자아낸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5월 15일부터 29일까지 ‘사군자대전’(四君子大展)을 연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정신이 담긴 매란국죽(梅蘭菊竹) 1백여 점이 나온다.

이번 전시는 1971년 가을부터 매년 봄·가을 각 2주씩 정기전을 열어온 간송미술관의 80번째 전시다. 간송미술관은 1976년 가을 ‘사군자전’(四君子展)을 연 적이 있지만 소규모였고, 2005년 가을에도 ‘난죽대전’(蘭竹大展)을 열었지만 당시엔 매화와 국화 그림은 빠져 있었다.


한국 회화 사상 최고의 묵죽화가로 꼽히는 탄은(灘隱) 이정(李霆·1554~1626)의 <풍죽>(風竹)은 바람에 맞선 대나무 네 그루를 화폭에 옮겨놓았다. 뒷편의 세 그루는 담묵으로 은은하게 그려 그림자처럼 보이게 하고, 앞쪽 대나무는 농묵으로 또렷하고 굳세게 그렸다. 그림을 보는 사람은 바람의 세기를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이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어몽룡의 <월매>(月梅)와 함께 5만원권 뒷면에 등장한다.

전시에는 척박한 땅에서도 푸른 잎사귀를 피워올리는 난초의 본질을 꿰뚫어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난초 그림, 명성황후의 친정조카로서 세도를 과시했지만 명성황후 시해 후 홍콩, 상해 등으로 망명했던 민영익(閔泳翊·1860~1914)이 상해 망명기에 그린 <묵란>도 나왔다. 추사의 영향을 많이 받은 민영익은 상해로 가 추사의 난법(蘭法)을 국제화한 셈이다.

원래 사군자는 문인의 절개와 지조를 담는 그림이지만, 도화서(圖畵署) 화원이었던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의 <백매>(白梅)는 문인화 못지않게 기품이 흘러 넘치면서 직업화가다운 회화성도 겸비하고 있다. “정조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단원은 자신도 문사(文士) 못지않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의 설명이다.

최완수 실장은 “각종 위난(危難) 속에서도 절개를 지키는 사람을 ‘군자’(君子)라 이르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곧은 생명력을 보여주는 식물을 이들에 빗대 ‘사군자’라 한다”면서 “전시를 개최한 지 40년이 되었으니만큼 우리 미술관의 정신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글·곽아람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문의·간송미술관 ☎02-762-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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