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는 말이 있다. <배트맨> 시리즈는 영웅과 시대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영웅은 본래 힘이 센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헤라클레스라든가 중국의 관우 같은 경우가 그렇다. 영화에서도 그런 힘센 영웅들이 등장하는데 수퍼맨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배트맨은 예외에 속한다. 배트맨은 선천적으로 힘이 세지 않은 대신 신형 무기들을 잘 활용한다. 배트맨에 와서 영웅은 서민의 이미지로 변화됐다. 속편인 <배트맨 비긴스>에서 배트맨은 탄생의 비밀까지 털어놓는다. 배트맨의 부모는 악당의 손에 의해 살해당하고 배트맨은 그 복수를 위해 전 재산을 털어 넣은 채 어둠 속에서 선행을 하게 된다. 그의 정체를 알면 안 되므로 그는 정상적인 사람처럼 사랑도 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고뇌까지 겪는다.
이러한 배트맨의 이미지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찰스 브론슨 주연의 <데스위시>에서 처음 나타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내와 화목한 생활을 하는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이다. 어느 날 그에게 불행이 찾아오는데 아내와 처제가 동네 건달들에게 처참하게 성폭행당해 아내가 결국 숨지고 만다.
처제는 그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회복불능상태에 놓이게 된다. 범인이 잡히지 않은 채 세월이 흘러가고 주인공의 마음도 황폐해져 간다. 주인공은 우연히 총 하나를 얻게 되면서 동네 건달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그 마을은 점차 범죄율이 없어지고 경찰서장도 좋아하게 된다. 마을 주민들은 언론을 통해 보이지 않는 영웅의 행동을 알게 되고 그를 예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경찰은 범죄율이 없어진 건 좋은 일이지만 건달들을 살해한 그 영웅을 구속해야 할지 고민에 휩싸인다. 결국 그 영웅이 평범한 시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경찰은 그를 구속한다. 하지만 시민은 영웅을 동정하고 처벌하지 말라고 외친다. 처음으로 영웅이란 것이 미디어에 의해 조작되거나 형성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다크 나이트>에 오면 가짜 배트맨이 등장한다. 그는 배트맨 복장을 한 채 나쁜 일을 함으로써 배트맨의 정체를 드러내려고 한다.
배트맨은 가짜 배트맨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면 나쁜 영웅으로 억울하게 몰리는 상황이 된다. 배트맨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이 영화는 현대 영웅의 실체를 잘 파악하고 있다.
영웅은 대중이 만든 것이고 악당은 그 대중여론을 조작해서 영웅을 사라지게 하는 실험을 한 셈이다.
현대의 영웅은 <데스 위시>와 <배트맨>의 뒤를 이어 평범한 서민이 대중의 여론을 통해 존재하는 영웅으로 나타난다. <아이언맨>도 그중 하나다. 아이언맨은 심지어 도덕적으로도 양심적이지 않다. 배트맨도 재산상태는 부유했으니까 부유한 것은 그렇다 쳐도 배트맨은 선악을 생각하고 정의로운 마음으로 인생을 고민하는 진지한 면을 갖고 있었다.
반면 아이언맨은 무기를 판매하는 미 제국주의의 첨병으로서 국제적으로도 부도덕하고 자신을 천재라고 생각하는 부유한 미국 플레이보이 같은 타입이다. 영화는 그런 주인공이 개과천선하여 진정한 영웅이 된다는 줄거리를 갖는다.
그 이면에는 언론에 의한 영웅 만들기가 한몫을 한다. 그의 내면은 결코 영웅이 아니지만, 그가 하는 행동은 미국의 정의로움을 대변하는 영웅의 모습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처럼 현대영웅의 이미지는 아이러니하다. 이제 초기의 정의롭고 초월적이기만 한 영웅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대중에 의해 움직이는 서민적이면서도 사회적 여론의 영웅이 된 것이다.
정재형 (동국대 교수ㆍ영화평론가)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