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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민어, 모든 부위가 별미 중 별미




민어는 백성 민(民) 자를 이름에 쓰지만 기실은 양반의 생선이었다. 조선시대에 서민들은 더위를 물리치는 복달임 음식으로 개장국을 흔히 먹었지만 양반들은 민어탕을 즐겼다고 한다. 냉장운송 설비가 없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귀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1611년 허균이 경향 각지의 진미를 기록한 음식품평서 <도문대작(屠門大嚼)>에도 민어는 서해에서 많이 나는 생선으로 올라 있다. <국조보감(國朝寶鑑) 제48권>에는 1686년 봉조하(奉朝賀) 송시열(宋時烈)의 팔순을 축하하여 숙종이 내리는 하사품 목록에 민어가 들어 있다. 그때도 민어가 대접깨나 받던 생선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예전에 비하면 민어의 어획고는 엄청나게 줄어들어 지금은 ‘백성의 생선’이라는 이름이 민망할 정도로 가격이 비싸졌다. <해양수산 통계연보>에 의하면 요즘의 민어 어획량은 일제 강점기의 10분의 1수준에도 못 미친다. 1920년대에 명성을 떨쳤던 임자도의 민어파시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천 명의 어부들과 어선들이 몰려들었다는데 타리항에 수백 호의 초막이 급조되면서 선구점과 음식점, 색주가가 백성을 먹여 살린다고 민어라 했을까. 그 시절엔 민어 떼가 얼마나 몰려 왔던지 시끌벅적한 울음소리 때문에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는 사연도 고담으로 전해진다. 민어는 크기에 따라 전라도에서는 개우치·홍치·불등거리라 했고, 경기도에서는 어스래기·가리·보굴치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배를 갈라 소금에 절여 말린 민어의 수컷을 수치, 암컷은 암치라고도 한다.

지금은 그 옛날 지게에 지고 다니며 팔던 자연산 대물민어는 가뭄 때의 콩보다 만나기 어려워졌으며 전국의 어시장 진열대에는 중국산 홍민어가 판을 치고 있다. 귀해지긴 했어도 민어는 여전히 맛있다. 정약전이 일찍이 갈파한 것처럼 “맛이 담담하면서도 달아” 어떻게 해 먹어도 맛이 진하고 향기가 좋다. 회도 맛있고 찜이나 조림, 양념구이도 진진하며 기름이 동동 뜨는 고소한 탕은 일품이다. 민어저냐는 동태저냐나 먹어 본 입에는 상상도 안되는 맛이며 소등골 같은 부레는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것이 별미 중의 별미다. 게다가 밥 싸 먹다 논밭 다 판다는 껍질, 유명한 숭어어란도 울고 갈 어란은 덤으로 따라오는 색다른 맛이다. 알이나 아가미로 담근 젓갈도 어느 젓갈에 못지않은 맛을 낸다.


1795년에 화성에서 여드레 동안 벌였던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기록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는 자반으로 만든 염민어(鹽民魚)와 담염민어(淡鹽民魚)에다 민어포까지 나온다. 조선조 최고의 잔치로 불리는 연회의 식단에 그렇게 올라 있는 것을 보면 그 위상은 물론 궁에서도 민어를 다양하게 요리해 먹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좀 따지면서 먹는 사람들은 회는 수놈이 좋고 매운탕은 내장이 풍부한 암컷이 좋다고 하는데, 식당들이 그런 까다로운 주문을 받아 줄 리 없고 집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해 봐야 핀잔이나 얻어먹을 것이 뻔하다.

민어는 6월 하순부터 8월까지가 제철인데 올해는 유난히 일찍부터 민어가 잡히는 모양이다. 민어 집산지인 목포의 영란횟집은 오래 전부터 민어 전문점으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고 있는 식당이다. 목포가 멀다면 인천 신포시장에 있는 화선횟집도 2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민어요리에 자부심을 갖고 있고, 서울에서는 서초동의 유선식당에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글·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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