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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더위가 점점 일찍 찾아온다. 쉬 무기력해지고 피로해지는 여름철에는 각별히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여름이면 보양식으로 입맛을 되찾고 체력을 보강하여 폭서를 이겨냈다.

우리네 여름보양식의 기본적인 철학은 ‘복달임’이라는 풍습이 상징하듯 뜨거운 음식으로 열을 다스리는 이열치열이다.

이열치열의 오묘한 이치와 당위성을 많은 문헌이 설명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좀 발칙한 해석도 가능하다. 냉장고가 없던 옛날에는 여름에 차가운 음식을 해먹을 여건이 되지 않았고 위생문제 때문에라도 음식을 끓여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현실을 이열치열이라고 둘러댄 것은 아닐까.

그 증거로 석빙고를 운영하여 여름에 얼음을 공급받을 수 있었던 궁에서는 차가운 보양식을 해먹은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초계탕(醋鷄湯)이 바로 궁에서 해먹던 냉보양식이다. 초계탕은 닭고기로 끓인 육수를 차게 식혀 식초와 겨자로 간을 한 다음 살코기를 잘게 찢어서 넣어 먹는 전통음식이다. 옛날에는 여기에 버섯, 해삼, 전복까지 들어갔던 모양이니 상당히 호사스러운 음식이었던 셈이다.


초계탕이라는 이름의 내력을 식초의 ‘초(醋)’와 겨자의 평안도 사투리인 ‘계’를 합친 것이라고들 하는데, 닭 계(鷄)자를 쓰므로 초와 닭을 합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틀린 해석은 아닐 것 같다.

조선시대의 일반요리책에는 어디에도 초계탕의 자취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1795년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비였던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는 초계탕이 찬품의 하나로 버젓이 올라 있다. 효자로 유명했던 정조가 불행한 과거를 가진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베푼 조선조 최대 잔치의 수라상에 올라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초계탕의 위상을 알 수 있다.

그 뒤인 1827년, 효명세자가 경복궁의 자경전에서 순조와 순원왕후를 위해 차린 연회를 기술한 <자경전진작정례의궤(慈慶殿進爵整禮儀軌)>와 그 이후의 진연의궤나 진찬의궤에는 대부분 그 이름이 등장하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초계탕이 궁중의 잔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기록에는 명월관 등을 통해 궁의 음식이 민간에 흘러나오던 1930년대의 <간편조선요리제법(簡便朝鮮料理製法)>에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그 무렵에야 보통사람들도 초계탕을 접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옛날에야 초계탕이 귀한 음식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 냉장고가 집집마다 보급되어 있고 닭의 공급도 원활해져서 우리 국민의 연간소비가 6억마리를 넘을 정도로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다. 식초는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고 겨자 또한 식욕증진 등에 도움이 되며, 음식의 맛과 향을 더해주는 향신료로 널리 알려져 있는 데다 구하기도 쉬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그 시원함이 더위를 잊게 하며,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초계탕을 여름에 즐겨 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계탕은 여전히 만나기 힘든 음식이다. 궁중음식으로 전해 내려와 일반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자칫하면 비린내가 나는 요리법의 까다로움으로 인해 식당에서도 잘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구나 먹을 수 있게 된 궁중요리를 사람들이 몰라서 놓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6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구 저동의 평래옥에 가면 서울에서는 드물게 메밀면을 넣은 서민풍의 초계탕을 맛볼 수 있다.

글·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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