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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책 읽어주는 남자 <퇴계, 인간의 도리를 말하다>




동양의 공부방법은 서양의 것과 달랐다. 배우는 자가 질문하지 않으면 선생은 좀처럼 진리의 곳간을 열어주지 않았다.

서양은 가르치는 자가 배우는 이를 도덕적, 철학적 딜레마에 빠뜨리는 방법을 택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 강의를 떠올리면 된다.

방법은 달랐지만, 목표한 바는 비슷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깊은 것을 깨닫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도록 이끌어 준 것이다. 동양의 공부법에 따르면, 제자들이 스승의 어록을 남기게 마련이다. 기실, <논어>도 제자들이 기억해 낸 공자의 어록이지 않던가.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없을까? 왜 없겠는가. 이황의 어록이 기록된 <퇴계어록>이 있다.

퇴계 이황이야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주자 이래 최고의 학자라는 평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퇴계어록>을 쓴 이가 학봉 김성일이라는 사실이다. 기억하겠지만, 일본에 갔다 돌아와서 ‘도발의 기미가 없다’ 보고해 임진왜란에 대비하지 못하게 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던이다.

잘 안 알려졌지만 학봉은 퇴계의 뛰어난 제자로 이른바 영남학파의 큰 줄기를 이룬 대학자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학봉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자신의 과오를 씻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그는 의병들과 함께 왜병에 맞서다 병을 얻어 생을 마감했다.

그 <퇴계어록>이 <퇴계, 인간의 도리를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퇴계사상은 상당히 깊이 있고 그만큼 난해한 면도 있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은 제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식인데다, 퇴계의 일상을 기록해 놓은 것이어서 그리 어렵지 않다. 소략하나마 퇴계의 삶과 사상을 엿보는 데 맞춘 책인 셈이다.

옛사람들이 공부하는 방법은 성현이 남긴 글을 읽고 그 뜻을 새기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퇴계도 공부와 독서에 관한 말을 많이 남겼다.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이 갖춰야 할 자세로 가장 중요한 것은 끝까지 하는 데 있다고 여겼던 모양이니, 다음처럼 말했다.

“학문을 하는 도리는 반드시 정성을 하나로 모아 오래한 다음에야 이룩할 수 있다. 들락날락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하다 말다 한다면, 무엇으로 말미암아 학문을 이루겠는가. 그러므로 주자가 등공에게 이르기를, ‘정성을 하나로 모아 오래해야 이룬다. 두세번만 중단해도 실패한다’ 하셨다.”

따지고 보면, 이것이 어찌 학문하는 자세이기만 하겠는가. 무엇을 하든 퇴계가 이른 대로 한다면 되거늘, 게으름과 요행을 바라는 사특한 마음이 우리의 성취를 방해하는 듯싶다.

퇴계는 나아감과 물러남의 정치적 미학을 잘 알고 있었다.
퇴계어록에도 그에 해당하는 말이 두루 나온다. 경쟁에서 이겨 성취하는 것만이 미덕인 양 여기는 오늘의 세태와는 사뭇 다른 삶을 살았던 것이다.

“내가 벼슬길에 나아가고 물러남이 앞뒤로 달라 보일 것이다. 앞에는 명령을 들으면 바로 나아갔지만, 뒤에는 임금이 불러도 꼭 사양했고 비록 나아가더라도 구태여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무릇 자리가 낮으면 책임이 가벼우니 오히려 바로 떠날 수 있지만, 벼슬이 높아지면 맡은 일도 커지니 어찌 가벼이 나아가겠는가?”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뜻을 이루기 위해 나아갔다면, 더 큰 뜻을 위해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 퇴계가 혼돈의 시기에 큰 학자로 우뚝 설 수 있었던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출세’에만 뜻있는 이들이 반드시 새겨들을 말이다.

글ㆍ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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