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바다잔치를 세계의 축제로 꽃피우자




바다와 가장 가까이 철로가 달리는 곳이 정동진이라고들 하지만, 모르는 얘기다. 전북 익산에서 호남선과 갈라진 전라선 열차가 헐떡이듯 덜커덩거리며 지리산 자락을 굽이돌아 내려온 남쪽 끝.

종착역을 앞두고 숨을 고르던 열차가 산모롱이를 돌자 갑자기 빠져들 듯 바다를 만난다. 그러곤 바다와 맞닿은 언덕을 따라 축대를 쌓아올린 철로로 달린다. 열차도 사람도 그야말로 바다 위를 붕 떠 가는 기분이다.

‘밤에, 전라선을 타보지 않은 자하고는 / 인생을 논하지 말라’(안도현 ‘인생’)는 전라선의 종착역이 여수다. 여수역은 항구 복판에 들어앉았다. 동백과 해장죽(竹)의 섬 오동도가 코앞이다.

‘봄날에 서울에서 / 여수행 기차를 타면 / 여수역에 도착했는데도 기차가 멈추지 않고 / 그대로 바다를 향해 달린다 / 객실마다 승객들이 환하게 / 동백꽃으로 피어나 / 여수항을 지나 / 오동도를 지나 / 수평선 위로 신나게 달린다’ (정호승 ‘봄기차’)

아침 햇살이 비쳐드는 여수역 플랫폼에 내리면 구름다리를 건너 개찰구로 나가곤 했다. 밤 기차 여행의 노곤함과 집에 왔다는 나른함이 겹치면서 묘한 안도가 밀려왔다. 그렇게 꿈결 같은 종착역을 안고 있는 항구가 여수 신항(新港)이다.




여수반도 서쪽, 비린내 물씬한 선창 ‘구항(舊港)’과 달리 화물항 신항에 서면 여수가 왜 아름다울 ‘麗(려)’에 물 ‘水(수)’ 자를 쓰는지 실감난다. 방파제 겸해 오동도를 잇는 연륙교에 갇혀 잔잔한 바다가 쪽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곱다.

오동도 서쪽으론 1천7백 개 섬이 이루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 동쪽으론 한려 해상국립공원이 시작하는 천혜의 관광지다. 이미항(美港)에 여수 사람들이 오래 기다리고 준비해온 꿈을 부려놓았다. 2012 세계해양박람회다.

여수역은 박람회장에 자리를 내주고 북쪽으로 옮겨 ‘여수엑스포역’이라는 새 간판을 달았다. 이제 KTX를 타면 서울에서 박람회장 바로 곁 엑스포역까지 딱 세 시간이 걸린다. 어릴 적 여수에서 광주만 가려 해도 경전선 증기열차를 예닐곱 시간씩 타야 했던 시절이 까마득하다.

서울서 여수까지 5백킬로미터 가깝던 찻길도 이제 3백50킬로미터로 줄었다. 순천~완주고속도로가 뚫리고 그 남쪽 끝 순천에서 곧바로 여수 박람회장까지 자동차고속도로가 연결됐다. 목포에서 순천까지는 남해안고속도로가 거침없이 내달린다.

광양과 여수산업단지를 바다 위로 곧장 연결하는 이순신대교도 놓이면서 두 도시가 80분에서 10분 거리로 좁혀지는 축지법이 벌어졌다. 이제 여수는 영호남을 잇는 남해안 관광벨트의 중심 도시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5월의 여수엑스포는 때 이른 여름 날씨처럼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5월 12일 문을 열어 4만명을 맴돌던 입장객이 두번째 주말엔 6만명을, 석탄절 연휴엔 10만명을 넘어섰다. 사람들은 80개 전시관 사이를 강물처럼 흘러다녔다. 길게 줄을 선 사람들도 곳곳에 펼쳐지는 거리 공연을 보며 지루함을 덜었다.




디지털갤러리의 운동장만한 높이 27미터 천장엔 ‘살아 있는 바다’의 영상이 물결쳤다. 대우조선해양로봇관에선 크고 작은 로봇들이 깜찍하게 펼치는 갖가지 쇼에 어린이들이 넋을 빼앗겼다. 시멘트 저장고를 고쳐 만든 높이 67미터 파이프오르간이 은은한 연주를 사방 6킬로미터까지 들려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수족관 아쿠아리움은 3백 종 3만 마리의 해양생물을 갖춰 엑스포가 끝난 뒤에도 여수의 랜드마크로 남게 된다.

토요일 밤 8시30분 여수엑스포 해상무대에서 가수 김장훈의 공연이 끝났지만 3만 관객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한 시간 뒤에 시작하는 ‘빅오(Big O)쇼’를 보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의 기다림이 조바심으로 바뀔 무렵 해상 분수가 1백미터까지 바닷물을 쏘아 올리며 춤추기 시작했다. 그 뒤에 서 있는 지름 43미터 원형 타워 ‘디 오(The O)’가 물을 흘려 초대형 ‘물 스크린’을 만들었다. 거기에 레이저빔이 소녀와 바다의 신, 악령의 영상을 현란하게 그려댔다.

밤 10시 ‘물 쇼’가 끝나자 젊은이 수백 명이 해상무대로 모여들었다. 젊은이들은 DJ가 틀어주는 빠른 음악에 몸을 흔들며 아쉬움을 털어냈다. 박람회장 남쪽 오동도 다리엔 사람들이 앉아 축제의 여운을 담았다. 박람회장 오색 불빛을 바라보며 휴대전화로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 ‘여수 밤바다’를 들었다.

여수엑스포는 1993년 대전 이후 처음 열린 국제 공인 박람회다.

여수엑스포의 주제는 바다다. 인류가 살아갈 터전이자 생명줄, 바다의 오늘과 내일을 우리 곁 관심사로 끌어왔다. 보는 재미, 듣는 재미를 넘어 아는 재미를 더했다.


온 가족, 특히 아이들에게 바다의 의미를 일깨우는 자리로 이만한 곳이 없을 것 같다. 갇힌 교실에서 배우는 바다가 아니라 손으로 만지고 적시는 바다를 가르칠 기회다.

여수엑스포의 영광은 온전히 여수 사람들 몫이다. 개막 전날까지 다들 인구 30만 소도시의 교통난과 숙박난을 걱정했지만 여수 시가지는 오히려 한산했다. 자동차전용도로가 시내를 거치지 않고 곧장 박람회장으로 들어오고, 차를 외곽에 두고 셔틀버스로 오가게 했기 때문이다. 엑스포 관람객이 여수의 그림 같은 풍광, 맛깔진 향토음식을 즐길 기회를 더 넓혀줘야 할 것 같다.

아쿠아리움, 한국관, 디지털갤러리, ‘빅오’ 무대는 계속 남아 남해안 관광레저단지의 중심 기지 역할을 맡게 된다. 이 시설들이 애물단지가 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따라야 한다. 여수엑스포엔 생명의 큰 꿈, 아기자기한 재미, 신나는 축제가 어우러진다. 이 바다잔치가 세계의 축제로 꽃피우려면 무엇보다 국민이 함께하는 마음이 절실하다.

글·오태진 (조선일보 수석논설위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