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솔직해질 때가 있다. 자주는 아니고 간혹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럴 때 대체로 교양인인 척하던 사람들이 드러내는 모습은 세상이 말하는 속물과 그리 다르지 않다.
자신을 속물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자신을 속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기실 속물은 겉으로 드러내는 가치와 속으로 원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가리킨다. 또한, 겉으로는 고상하고 여럿을 위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내심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을 속물이라 말한다.
독일의 두 언론인 악셀 하케 & 조반니 디 로렌초가 좌담한 내용을 정리한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는 그래서 흥미롭다. 남들이 부러워할 명예와 권위가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속물이라 말하다니 참 대단하다. 그렇다고 늘 속물인 것은 아니고 가끔 그렇단다. 얼추 짐작이 가지 않는가. 가능하면 공동체적 가치에 동의하지만 때로는 개인적 욕망에 충실하기도 하다는 말로 들린다.
정치문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젊은 날에는 정치와 혁명에 관심이 많았지만 나이 들면서 자꾸 거리를 두게 되었다. 저녁에 노동조합 간부와 만나 이야기하면 그 입장에 깊이 공감했다가도 다음날 아침 신자유주의자를 만나면 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러면 속물이 아닐까? 아니다. 로렌초는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형편없는 속물로 변해간다는 기분을 떨쳐버리기 어렵다”고.
이유를 덧붙였다. “우리는 불의를 보고 분노하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고.
누구나 환경문제를 고민한다. 작은 실천이 절실하다. 분리수거를 하는 이유다. 하케는 말한다. “쓰레기 분리수거가 때때로 내게 안정감을 준다. 불안감을 달래고자, 내면의 공포를 누그러뜨리고자, 위험에 빠진 지구를 위해 내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는 기분을 느끼고자, 어떤 재앙이든 언제나 막을 수 있다는 기분을 느끼고자 나는 분리수거를 한다”고.
근데 잘하다가도 요구르트병을 씻을 적마다 갈등한다고 한다.
병 씻는 데 물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아느냐, 그냥 버리는 편이 환경에 더 나을 거야, 많이 먹지도 않는데 라며. 분명히 속물인데, 어찌 비난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숨은 모습이라 그러할 터다.
두 사람이 자신의 속물근성을 드러내놓고 말할 때마다 멋쩍어진다. 이렇게 까발리면 속물이라 비난할 수 없다. 오히려 성찰적인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칭찬하게 된다.
정의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 대목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케는 성공했다. 하룻밤 강연으로 간호사 한달치 월급보다 많이 벌기도 한다. “이렇게 성공한 내가 대견하고 기쁘다”고 말한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속물이다. 이어지는 말이 울림이 크다.
“이것이 과연 정의인가? 지금껏 고생스럽게 육체노동을 했고 내 나이에 벌써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는 또래의 건설 노동자보다 내가 더 많이 버는 것이 과연 정의인가”라고 묻고 있어서다.![]()
읽으며 기분 좋아진다. 우리하고 역사나 문화배경이 다른데도 상당히 공감하며 읽게 된다. 이들도 부모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그들의 부모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세대다. 부모세대한테 영향을 받으면서 여기서 벗어나려 용을 썼다.
이만하면 비속어로 말하자면, 꼰대에 꼴통에 속물이 되고도 남을 만하다. 하지만 스스로 속물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결코 속물이 아니다. 여전히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는다. 하케가 아래처럼 말했다.
“만약 정의가 실현된 어떤 상태가 아니라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이라면, 내 생각에 우리가 정말 신경써야 하는 것은 이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모두가 그 에너지로 뭔가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모든 이들에게 발전의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과연 우리 사회는 그러한가?”
글·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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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