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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그랜 토리노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미국인들에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세상의 악과 맞서 용감하게 자신을 내던지는 터프한 영웅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그러한 그의 이미지는 1960년대 부터 1990년대까지 5편이나 만들어졌던 <더티 해리> 시리즈의 형사 해리 갤러헌에서 온 것이다. 그는 법망을 피해 교묘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흉악범들에 대해 법을 떠나 인간적인 분노를 드러낸다. 그 이미지는 형사라기 보다는 큰형이 동생의 잘못을 꾸짖듯 하고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는듯 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한편으로 보수적이고 고집불통이고 낡은 이미지로 통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점차 물질화되고 혼란해져가고 부도덕한 미국사회를 살아가며 클린트 이스트우드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영화 <그랜 토리노>(Gran Torino, 2008)는 잊혀져 가는 영웅의 이미지를 재조명하며 진정한 용기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재고하게 하는 영화다. 주인공 코왈스키는 폴란드 이주민의 후손인 소수민족 미국인으로서 3년간 한국전에 참전했었고 13명의 중공군 소년병들을 죽이고 무공훈장을 받은 뼈아픈 체험을 갖고 있다. 50년간 포드 자동차에서 노동자로 일했고 사랑했던 아내와 방금 사별했다.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아들들과 불화하며 버르장머리 없는 손자, 손녀들에겐 정을 주기도 싫다. 그에겐 72년산 올드 그랜 토리노 자동차와 죽을 때가 다된 개 한 마리가 전부다. 그는 중국인들, 멕시코계 이주민들이 많이 사는 허름한 동네에서 외롭게 살아간다.

그 옆집에 사는 월남인들은 청소년 갱들로 인해 항상 시끄럽다. 특히 타오라는 소년을 갱단에 가입시키려고 치근덕거리는 월남갱들 때문에 코왈스키는 타오와 그의 누이 수를 보호하면서 점차 친해진다.

자신들의 일이 방해받자 월남갱들은 코왈스키 대신에 타오와 수를 린치하여 겁을 준다. 분노한 타오가 복수하려 하자 코왈스키는 그를 자제시키고 혼자 월남 갱들에 맞서 싸운다. 하지만 코왈스키는 오히려 총도 없이 가서 그들에게 벌집이 되어 죽게 되고 이를 알게 된 그 마을의 신부는 코왈스키가 스스로 희생된 것이라고 알게 된다. 그는 마치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처럼 잔악한 범죄자들에게 자신을 내어준 것이다.

이 영화는 참회와 용서라는 새로운 주제를 던져줌으로써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주인공 코왈스키는 한국전에 참전하여 무고한 생명을 살육했던 아픈 전력 때문에 평생을 괴로워했다. 정의를 위해서 싸웠던 전투였지만 그 명분을 떠나서 생명을 살상했다는 경험이 옳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마지막에 그 빚을 갚는 방법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악당을 죽여서 정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던짐으로써 정의를 구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대항해왔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정의관은 노년에 들어와 약간 변형된다. 그에게 여전히 사회정의감은 살아있다.

하지만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대신 진정한 복수란 누군가 희생함으로써 더 이상 복수를 발생시키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진정한 영웅이란 멋진 복수가 아니라 깊은 사랑과 공동체의식 속에서 나타나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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