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거인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리영희 선생이 돌아가시더니, 새해에는 박완서 선생이 유명을 달리했다. 큰 나무 밑은 그늘이 넓은 법이다. 한 시절, 그들의 글을 읽으며 분노하고 기뻐하고 슬퍼했다. 오늘, 우리가 이만큼 이나마 성숙한 것은 다 그들 덕이다.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박완서 소설의 고갱이는 연작소설 <엄마의 말뚝>이 아닐까 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한참 후에 나온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도 기실 <엄마의 말뚝>의 청소년판이라 보아도 무리 없다.
물론 박완서의 소설세계가 상당히 넓고 깊은지라 이 작품만을 대표작으로 꼽는 것이 결례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문학이 한국전쟁이 한 가정과 개인에 미친 영향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것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엄마의 말뚝>의 가치는 남다른 면이 있다.
박완서 소설전집 가운데 <엄마의 말뚝>이 표제작으로 올라 있는 책을 읽었다. 다시 읽어보아도 역시 박완서답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런 작가를 과연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섭섭해지고 허망해지기도 했다. 요즘 작가들의 작품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잘 알다시피 <엄마의 말뚝1>은 박완서의 상경기다. 양의의 도움을 받았더라면 살렸을 남편을 무지와 몽매 때문에 잃었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먼저 서울로 올라갔더랬다. 이번에는 딸을 데려간다. 그것은 마치 탯줄을 끊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풍족하고 아름다웠던 고향을 등지고 대처로 떠난다는 것은 두렵기까지 한 일이다. 박완서는 이런 상황을 정말 맛깔 나게 형상화해 낸다. 읽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탄복할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현저동 산꼭대기에서 보내는 삶은 성장소설을 보는 듯싶다. 가난하지만 자존심 강한 어머니, 그 어머니의 기대가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아는 착한 오라버니. 그 틈에 끼어 이런저런 사고를 치는 소녀. 한 편의 명랑소설이다.
그러다 드디어 말뚝을 박게 된다. 돈을 이리저리 융통해 집을 한 채 장만한 것이다. 이사 간 첫날, 어머니는 말했다. “기어코 서울에도 말뚝을 박았구나. 비록 문밖이긴 하지만”이라고.
비극은 2편에서 확인된다. 어머니가 낙상해서 수술하게 되었는데, 그 후유증으로 헛것을 보게 되었다.
완력을 쓰며 헛소리를 하는데, 그게 오빠에 관한 내용이었다. 해방 공간에서 잠시 좌익운동을 했던 오빠는 회의감을 느껴 자진해서 전향했다. 성품이 곱고 성실하며 엄마의 소원대로 사대문 안에 집도 장만해 화목하게 살았다.
화근은 전쟁이었다. 갑작스러운 후퇴의 여파로 인민군에 끌려갔고, 탈출해 숨었다. 다시 후퇴하게 되었을 때 도민증이 없어 서울에 남아 있었다.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행세했는데, 나중에 보니 진짜 미쳤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잘 넘기나 싶었지만 수상히 여긴 보위부 군관이 총격을 가했다. 적절한 조치를 했더라면 살릴 수도 있었으련만 황망한 상황인지라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어머니의 무의식은 오빠의 죽음에 굳건히 말뚝을 박고 있던 셈이다. 세월이 약이 될 수 없는 것이 있는법이다. 그러기에 어머니는 계속해서 다음처럼 악다구니를 쳤던 것이리라.
‘안된다 이 노옴’이라는 호통과 ‘군관 나으리, 군관 선생님, 군관 동무’라는 아부를 번갈아 하며 몸부림치는 서슬에 마침내 링거 줄이 주삿바늘에서 빠져버렸다. 혈관에 꽂힌 채인 주삿바늘을 통해 피가 역류해 환자복과 시트를 점점 물들였다. 피를 보자 어머니의 광란은 극에 달했다.
가슴이 저려 온다. 어머니 보고 정신 차리라며 뺨을 때리는 장면에서 전율하게 된다. 생때 같은 아들을 잃은 어미의 심정을 이처럼 핍진하게 그린 작품을 보기는 쉽지 않다.
아, 그 고통을 증언하기 위해, 다시는 이 땅에서 그 고통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비원이 박완서로 하여금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게 한다. <엄마의 말뚝2>야말로 한국전쟁을 다룬 우리 소설미학의 백미에 해당한다. 이 작품에 이상문학상을 준 이유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3편은 어머니의 죽음과 장례를 담담하게 그렸다. 마음의 깊은 우물 속에 원한과 저주, 그리고 미움을 쟁여 놓았던 어머니가 비로소 편안하게 몸을 누인다. 그럼에도 작품을
읽다 보면, 어머니는 과연 홀가분하게 이승의 짐을 내려놓았을까에 대해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2편이 주는 여운이 강해서일 성싶다.
다시 읽으면서 박완서 문학의 깊이와 넓이를 확인했다.
나이 사십에 <나목>으로 등단해, 40년 동안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다. 그만큼 작품의 스펙트럼도 넓다. 전쟁의 잔혹상을 증언한 것은 물론이고 여성문제까지도 소설의 주제로 삼았다.
특별히 단편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비춘 거울 같다. 조금 살게 되었다고 거드름 피우는 세상을 조롱하고 비판했다. 기억할 만한 이들이 자꾸 가니까 대중매체에서 한 시대를 같이 할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했다는 말을 남발한다.
너무 자주 쓰니 물릴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박완서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것의 기쁨을 되뇌지 않을 수 없다. 고통으로 가득한 이승의 말뚝은 이제 뽑았지만, 그의 무덤 앞에서는 새로운 말뚝이 박혔다. 거기에는 아마 이렇게 쓰여 있을 듯싶다. 시대를 증언한 그의 문학은 계속 읽힐 것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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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