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G20세대의 핵심은 ‘글로벌’이라고 생각합니다. 넓은 세상에 나가봐야 꿈의 크기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우고 세계무대에 진출해서 꿈의 크기를 키웠습니다.”
지난 2010년 12월 7일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연소로 UN이 수여하는 ‘평화메달’을 받아 화제가 된 팝페라 테너 임형주(25)씨는 대표적인 G20세대다.
UN 평화메달은 세계평화와 인권신장에 공헌한 인물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자메이카 출신의 세계적 레게 뮤지션 밥 말리, ‘아프리카의 어머니’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포크 싱어 미리암 마케바 등이 받은 바 있다.
“감개무량하고, 가문의 영광입니다. UN에서 상을 받는 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제게 ‘아름다운 족쇄’가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평화메달 수상자로 소개될 텐데, 행동거지 하나에도 조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임씨는 지난해 12월 5일 카네기홀 잔켈홀에서 연 ‘6·25한국전쟁 60주년 기념공연’ 수익금 2만 달러(약 2천3백만원)를 17개국의 6·25한국전쟁 참전용사 후손들 장학사업을 위해 UN본부에 기부한 것도
평화메달 수상에 밑바탕이 됐다고 했다.
“6·25를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UN참전군인들의 헌신으로 제가 지금처럼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고마움과 원조를 받던 나라 중 세계에서 유일하게 다른 나라를 돕는 원조국이 된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제 공연에 참석한 참전군인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시는 걸 보고 정말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어 그는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G20 정상회의 경축음악회: 2010 임형주 송년콘서트-미러클 히스토리’를 개최했으며, 세계 데뷔 7주년 기념앨범 ‘미러클 히스토리’도 냈다.
“대한민국의 작은 소년이 세계무대에 선 후에 세계 곳곳에서 특별한 공연을 가졌고 국경을 초월해 많은 사랑을 받은 게 바로 기적입니다. 그래서 공연 제목과 앨범 제목을 ‘미러클’이라고 지었습니다.”
앨범의 타이틀 곡은 배트 미들러의 명곡 ‘윈드 비니스 마이 윙스’로 영화 <두 여인>에
OST로 삽입돼 인기를 누렸다.
“이 노래는 ‘새가 나는 건 바람이 받쳐주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제가 잘되는게 제 힘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날 수 있는 건 절 바람처럼 받쳐주는 팬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팬들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꼈고 이를 노래로 표현했습니다.”
1998년 국내에서 데뷔한 임씨는 2003년 카네기홀 독창회를 시작으로 세계무대에 나섰다.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팝페라 테너로 성장했다.
“가슴에 태극기는 달지 않았지만 항상 문화예술계 국가대표라는 생각으로 해외무대에 섭니다. 음악을 포함한 문화는 정치, 경제, 사회의 근간 중 하나입니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한다면 갈등과 충돌이 없어지고 세계평화에 한걸음 다가갈 테니, 저는 음악으로 일조하고 싶습니다.”
그는 2009년 급성 맹장염으로 수술대에 오르면서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2010년 6월에는 급성후두염으로 갑자기 ‘아’ 소리도 못 낼 지경이 돼서 급작스럽게 공연을 취소했습니다. 그때 중요한 경험을 했죠.
어릴 때 저의 재능이 신이 내린 선물이고 그게 영원할 거라 생각했지만 이젠 ‘간이역’처럼 저한테 잠시 왔다가 가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씨는 올해 더욱 바빠질 전망이다. 오는 3월 미국 유명 음반사 아이에이엠지(IAMG)의 클래식 레이블인 아이에이엠지 클래식스와 앨범을 낸다.
“제 미국 첫 정규앨범을 냅니다. 미국에 가보니 제 음반이 한국에서 수입돼 팔리는 거라 가격이 너무 비싸더라고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미국에서 만들어 발매를 하면 단가가 더 낮아질 수 있으니까요. 더 많은 팬과 음악을 나눌 수 있는 기회죠. 한국 국적 최초로 빌보드 클래식 차트와 크로스오버 차트 1위를 목표로 세웠습니다.”
임씨는 10월에는 한국 프랑스 수교 125주년 기념 음악회(파리), 11월에는 빈모차르트오케스트라와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 협연(빈) 등 전 세계를 누빌 굵직한 공연 일정도 세웠다.
“아직 저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이미자 선생님과도 공연해 보고 싶습니다.
장르는 다르지만 항상 이미자 선생님을 국보급 가수라 생각해 왔어요. 같은 무대에 설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면서 ‘임형주’라는 한글 이름을 고집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제안했지만 임씨는 그냥 ‘임형주’가 좋다고 한다.
“‘형주 임’이라고도 하지 않아요. 데뷔 초기에는 외국 매니저들이 제 이름을 발음하는 게 어렵다고 ‘필립 림’이라는 영어 이름을 사용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임형주’라는 이름 자체를 브랜드화시키고 싶습니다. ‘돌체 앤 가바나’ 이런 건 어려워도 사람들이 그냥 외우잖아요. 브랜드니까요.”
임씨는 동갑내기에 비해 어릴 적에 진로를 명확하게 정한 도전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일반 중학교가 아닌 예술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성악을 공부했습니다. 같은 전공의 음악가와 비교하더라도 10년 정도 빨리 사회에 진출했습니다. 12세에 성악가로 국내무대에 데뷔했고 17세에는 세계무대에 데뷔했습니다. 요즘에는 젊은 음악가의
진출이 활발하지만 제가 데뷔할 당시 음악계 풍토에서는 빠른 편이었습니다.”
그는 음악인으로서의 꿈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지만, 언젠가 은퇴할 즈음에는 문화예술 사업가라는 공식 직함으로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아트원 문화재단 설립, 코리안 내셔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 감독, 칼럼니스트 등은 모두 또 다른 인생에 대한 꿈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오드리 햅번처럼 평생 봉사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문화예술인으로서 단순히 돈으로 하는 기부가 아니라 교육, 공연 등으로
재능을 기부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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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