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그렉? 그렉이 누구더라?”
옛 친구들로부터 걸려오는 반가운 전화, 너나 할 것 없이 그렉 스티븐슨을 찾는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 이름이 낯설다. “그렉이 누구지? 내 이름은 문태영인데”라며 혼란스러워 한다.
그럴만도 하다. 문태영이라는 한국 이름을 달고 산 지 3년째, 이제는 새 이름에 더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문태영(33), 남자프로농구 창원 LG 세이커스에서 뛰고 있는 포워드다. 어머니 문성애씨는 주한 미군이던 토미 스티븐슨과 결혼해 세 아들을 낳았고 둘을 농구선수로 키웠다.
또 한 명은 문태영의 친형인 문태종(36)으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유니폼을 입고 있다. 재로드 스티븐슨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유럽 최정상급 슈터였다.
드래프트가 아닌 자유계약을 통해 용병을 영입했던 4~5년 전 다수의 국내 구단이 영입을 추진하다 비싼 몸값 때문에 포기했을 정도로 실력과 명성이 대단했다.![]()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찾은 어머니의 나라, 혼혈보다는 미국인에 더 가까운 외모에 여전히 우리 말이 서툴지만 형제는 새로운 정체성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또 적응해 가고 있다.
둘은 한국농구연맹(KBL)이 귀화 혼혈선수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한국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KBL은 해외에서 뛰는 혼혈선수에게 귀화를 전제로 용병이 아닌 국내선수 자격을 부여하기로 했다.
동생 문태영이 먼저 한국을 찾았다. 2009년 처음 열린 귀화 혼혈 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LG에 지명됐다. 형은 1년 후 같은 드래프트에 나서 전자랜드로부터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았다.
형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 땅을 밟았다. 주저함이 없었다. 30년이 넘도록 미국인으로 살았던 그들에게 어머니의 나라 한국은 낯선 나라였다. 동시에 호기심과 동경의 나라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는 한식을 자주 접했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거주지였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한인 교회에 다녔다.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지만 가슴 한구석에 한국은 제2의 모국이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문태영은 데뷔하자마자 KBL을 대표하는 스타가 됐다. 2009~2010 시즌 평균 21.9점을 기록해 데뷔 첫 시즌에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승승장구하는 동생의 소식은 형에게 좋은 자극이 됐다. 동생과 함께 나란히 ‘코리안 드림’을 이루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스페인, 프랑스, 터키 등 유럽 주요 리그에서 에이스로 활약했던 문태종은 더 많은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현재 대신 미래를 택했다. 연봉은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고 세계 굴지의 리그에서 명성을 쌓아나갈 기회도 줄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기량은 명불허전(名不虛傳). ‘4쿼터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작년 하위권이었던 전자랜드의 해결사로 새로운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특히 유럽 리그에서도 정상급으로 평가받았던 3점슛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팀 동료인 서장훈은 “외곽슛 실력은 방성윤이나 이규섭 등 국내 정상급 슈터와 비교해도 더 나으면 나았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동생에 이어 형까지 KBL 무대에 뛰어들면서 자연스럽게 형제 맞대결이 프로농구의 이슈로 떠올랐다. 둘은 이전까지 단 한번도 공식 경기에서 맞대결한 적이 없다. 어린 시절 뒷마당 코트에서 펼쳤던 1대1 대결이 전부다. 워낙 승부욕이 강해 주먹다짐 직전까지 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대부분 형이 이겼다. 동생은 늘 언젠가 형을 넘어서겠다는 꿈을 꿔왔다.
작년 10월 31일 창원에서 형제의 첫 맞대결이 펼쳐졌다. 형보다 나은 아우 없다고 했던가. 문태종이 37점을 폭발시켜 팀 승리를 이끈 반면, 문태영은 19점에 그쳤다. 동생은 마음속으로 칼을 갈았다. 두번째 승부가 예정된 지난해 12월 12일 반드시 설욕하겠다고 다짐했다. 형도 물러설 수 없는 경기였다. 미국에서 일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어머니 문성애씨가 가게 문을 닫고 형제 대결을 보기 위해 직접 한국을 찾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형제가 자웅을 겨룬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당시 문성애씨는 “지난번에는 태종이가 이겼으니까 오늘은 태영이가 이기면 좋겠는데, 그러면 또 태종이에게 미안하고, 어쩌죠”라며 형제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지만 표정만큼은 밝았고 또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 어머니의 뜻이 전해진 것일까. 이번에는 동생이 웃었다. 문태영은 36점을 퍼부어 13점에 머문 형에게 완승을 거뒀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는 늘 희비가 엇갈리는 법이지만 어머니에게는 승패가 중요하지 않았다. 경기가 끝나고 두 아들을 감싸며 축하와 격려를 나누어 보냈다. 형제가 한국에서 농구선수가 되겠다고 할 때 누구보다 반겼고 또 감격했던 그녀다. ‘코리안 드림’을 이뤄가는 두 아들의 모습이 마냥 대견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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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