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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국보 258호 ‘청화백자죽문각병’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청화백자죽문각병(靑華白磁竹文角甁·국보 제258호·높이40.6cm)은 백자로는 국내 제일의 명품이다. 크기도 클 뿐 아니라 8각으로 모깎이 한 점이 특이하다. 모깎이는 병 입구에서 밑창까지 칼로 단숨에 훑어 내리며 깎는 방법을 말한다. 청화백자죽문각병은 그 방법이 완벽하고 정교하다.

1935년 무렵은 백자보다는 고려청자에 대한 관심이 훨씬 컸던 시절이다. 일본인들은 고려청자를 독식하며 1만원대에 거래했지만 백자는 2천원 이상으로는 거래하지 않았다.

젊어서부터 금속 유물에 밝았던 차명호는 어느 날 시청 앞에 있던 ‘우고당(友古堂)’에 들렀고 그곳에서 주둥이 부분이 수리된 도자기를 발견했다. 주인은 좋은 청자가 많던 그 시절에 수리까지 된 백자라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차명호의 눈에는 대나무 그림도 멋있고 모양이 특이할 뿐 아니라 색도 손색이 없어 귀하게 보였다. 병을 잡은 채 이리저리 돌려보던 차명호가 소리를 질렀다.

“굽 언저리에 글자가 있어요. ‘천(川)’자와 ‘정(井)’자 같은데요.”

차명호는 백자에 명문이 있는 것을 매우 희귀하게 여기고 백자를 사기로 했다. 그러나 주인이 천원이라는 거금을 부르자 젊은 차명호는 “일주일의 여유를 주면 꼭 구입할 테니 절대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말라”는 다짐을 건네고 가게를 나왔다. 차명호는 즉시 평양으로 달려가 이인영의 사랑방을 방문했다. 일송(一松) 이인영(李仁永)은 평양 숭실전문학교 사학과 교수로 박봉의 생활고를 견디면서까지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소장했던 사람이다.

“일송 선생님, 대단한 백자가 나타났어요. 천원을 달라고 합니다. 팔각으로 모깎이 한 병인데 크기도 한 자가 넘고 색이며 대나무가 기가 막합니다.”

차명호는 연필로 그림을 그리며 흥분해 외쳤다. 이인영도 덩달아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말만 듣고도 소장하고 싶은 마음에 심장이 뛰었다. 그러나 교수 신분인 이인영에게 그만한 돈이 있을 리 없었다.

“지금은 돈이 없소. 며칠만 기다리세요. 어디 가서 급전이라도 빌려보겠소.”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그날로 이인영은 돈을 구하기 위해 사방으로 돌아다녔다. 결국 여러 날이 흐른 뒤에 급전을 빌려 차명호에게 건네주었다. 그만큼 이인영은 이 백자병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돈을 받은 차명호는 즉시 서울로 달려와 이 병을 입수했다. 이 병은 유약이 투명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18세기 전반에 경기도 광주 금사리(金沙里)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당당하고 위엄 있는 형태가 그 무렵 백자 중에서 가장 으뜸인 거물이다.

그 후 이인영은 해방을 맞았고 소련 군정이 북한에 들어서자 신변의 위협을 느껴 서울로 월남했다. 그동안 수집했던 귀한 서적들은 모두 싸 가지고 내려왔다. 그 중에는 삼국유사, 고려사, 공신록원 등 이 나라의 뿌리를 알 수 있는 귀중본이 많았다. 서울에서 생활고를 겪은 그는 1948년 소장했던 고미술품과 고서적 대부분을 남산 고미술품 대전시를 통해 처분했다. 이인영은 6·25 전쟁 중 납북되어 지금까지 생사를 알 수 없다. 이 병은 호암미술관을 거쳐 현재는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다. 1991년 9월 20일 국보 제258호로 지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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