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부서진 플라스틱 욕조를 타고 자메이카의 푸른 풀밭 위를 질주하던 엉뚱한 사나이들의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도전담으로 웃음과 감동을 주었던 영화 <쿨 러닝>. 실화를 소재로 해 더욱 인상적이었던 이 영화가 재연됐다. 바로 ‘한국판 쿨 러닝’ 봅슬레이 국가대표팀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동계스포츠 종목인 봅슬레이 국가대표팀은 지난해 1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파크시티 경기장에서 열린 2008 아메리카컵 2차 대회에서 덜컥 큰일을 냈다. 2인승 경기에서 사상 처음 월드컵 시리즈 및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따내더니 다음 날 4인승 경기에서는 1, 2차 시기 합계 1분39초23으로 캐나다(1분37초22)와 미국(1분38초43)에 이어 3위를 차지, 주최 측은 물론 소식을 접한 우리 국민들까지 놀라게 했다.
언론들은 앞다퉈 영화 <쿨 러닝>의 한국판이 아니겠느냐며 흥분했다. 어느 방송국은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쾌거를 거둔 것에 감격한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거두기도 했다.
이러한 관심 속에 봅슬레이 국가대표팀은 지난 5월 공개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해 4명의 선수를 새로 발탁했다. 대회 출전 때마다 남의 봅슬레이를 빌려 탔던 아픈 기억을 뒤로한 채 선명하게 ‘KOREA’라는 글자가 새겨진 신형 봅슬레이를 갖게 됐다. 좀처럼 알려지지 않은 비인기 종목임에도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소개되어 큰 반응을 불러모으기도 했다.
한국 봅슬레이의 기적의 중심엔 감독이자 선수로 나섰던 강광배(35·강원도청) 선수가 있다. 원래 알파인 스키 선수였던 그는 대학 시절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으로 스키를 그만둔 뒤 썰매종목에 눈을 떴다. 썰매종목 입문 3년 만인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루지 국가대표로 출전했고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나 스켈리턴 선수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스켈리턴으로 2002년과 2006년 두 차례 연속 동계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봅슬레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3년이다.
루지, 스켈리턴에 이어 봅슬레이로까지 매번 ‘전향’을 선택한 것은 후배 양성과 썰매종목 부흥이란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그는 루지나 스켈리턴을 하겠다는 후배가 있으면 미련 없이 대표선수 자리를 물려주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야망은 있다. 바로 봅슬레이로 올림픽 무대를 밟아보는 것. 소박하지만 원대한 꿈을 위해 그는 올해 감독직을 스스로 사임했다. 선수생활에만 전념하겠다는 의지다. 대신 최근까지 현역으로 뛰었던 우크라이나 출신의 알렉산드르 스트렐트소프(34)와 안드레이 티카추크(28)를 코치로 영입해 기술적인 면을 보강했다.
그 결과는 곧 나타났다. 지난 4월 아메리카컵 7차 대회 4인승에서 1, 2차 시기 합계 1분56초26으로 라이벌 일본을 0.35초 차로 제치고 또다시 동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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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즌 연속 메달권에 진입했다는 건 운도 아니고 우연도 아니라는 게 증명된 거죠. 충분히 우리도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올림픽도 가능하다는 얘기죠.”
본선 무대를 밟기 위해선 오는 10월부터 열리는 국제대회 7개의 성적을 합산해 세계 17위 안에 들거나 아시아권에 배정된 한 장의 출전 티켓을 확보해야 한다. 결국 일본이 넘어야 하는 산인 셈. 봅슬레이 경력 3년차 이진희(25) 선수는 해볼 만하다는 입장이다.
“일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합니다. 0.01초 차로 순위가 바뀌고 메달 색깔이 달라지거든요. 우리에겐 한국인 특유의 강한 정신력이라는 무기가 있잖아요.”
그는 동계올림픽을 두 번이나 개최해 전용경기장을 갖추고 있고 실업팀도 30여 개가 넘는 일본을 부러워하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썰매가 생겼고 강원 평창군에 위치한 알펜시아 스타트 연습장이 9월이면 완공될 것이라면서.
봅슬레이는 개인경기인 루지나 스켈리턴 등과 달리 단체경기이다 보니 팀원 간의 호흡이 중요하다. 그동안 출발 상황에서 가장 먼저 탑승해 썰매를 조정하는 파일럿을 제외한 브레이크맨(제동자)과 푸셔(4인승에서 2, 3번째 탑승하는 선수)의 양성은 시급했고 또 절실했다.
그래서 연맹은 4명의 선수를 지난 5월 선발전을 통해 충원했다. 30미터와 60미터 달리기, 던지기 등 테스트를 통과한 이들은 거의 비슷한 체격조건을 갖고 있다. 원반, 창, 투포환 같은 육상 투척종목 선수들로 건장한 체격에 날렵함까지 갖췄다. 봅슬레이는 빠른 몸놀림으로 짧은 시간 최대 근력을 낼 수 있는 힘을 바탕으로 한다.
이번에 봅슬레이 국가대표로 선발된 박범수(20·원반던지기 출신) 선수는 국가대표가 되는 길이 육상보다 빠를 것 같아 지원했다고 털어놓았다.
“선수라면 누구나 국가대표와 올림픽 출전이 꿈이잖아요. 원반던지기를 그만두면서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저의 꿈을 봅슬레이가 이뤄줄 것으로 믿습니다.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제 목표는 출전이 아닌 우승이기 때문입니다.”
6월 초 신인 선수들은 기존 선수 6명과 상견례를 가진 다음 6월 말까지 태릉선수촌 합동훈련을 하고 7월 초 강원도 전지훈련을 마쳤다. 이어 7월 10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와 캐나다 캘거리로 해외 전지훈련을 떠났다.
원래 대표팀 전원이 해외 전지훈련을 떠날 계획이었지만 출국을 앞두고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의 예산 부족 때문에 스폰서가 없는 일부 선수들은 국내에 남아 체력훈련을 하는 것으로 스케줄이 변경됐다.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환경과 부족함이 한국 봅슬레이의 앞길을 막고 있다.
그래도 강광배 선수는 넉넉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한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아진 거예요. 스텝 바이 스텝이죠.”
글·홍희정(조이뉴스24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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