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인연이라는 말은 묘한 기대를 갖게 한다. 세상을 살아가며 다양한 인연을 맺고 그 인연으로 해서 여러 갈래 인생길이 펼쳐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천안~논산 고속도로를 타고 정안나들목으로 빠져나오면 마곡사를 알리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고속도로에서 마곡사까지 자동차로 15분 남짓 거리지만 이정표를 따라가도 ‘도대체 이런 시골에 큰 절이 있을까’ 싶은 생각만 꼬리에 꼬리를 문다. 구불구불 포장도로를 따라 절집을 향하다 보면 어김없이 사하촌이 먼저 마중을 나온다. 사하촌(寺下村)에 이르면 ‘다 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게 된다.




사하촌은 절에 들어서는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매표소를 통과하면 의문이 한꺼번에 풀린다. 키가 제법 높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숲터널을 이루며 청정지역의 속내를 조금씩 열어 보인다.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는 숲길이 다소 긴장감을 갖게 하지만 드문드문 이정표를 따라가면 넓은 마당과 함께 기와지붕을 맞대고 있는 절집이 나타난다.

마곡사는 태화천을 끼고 자리 잡은 아담한 고찰이다. 전혀 화려하거나 거대함이 없어 편안한 사찰이다. 주차장에서 산길을 따라 절까지 오르는 길이 아름답고, 절 자체의 느낌도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마곡사까지 오르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고 또 계곡을 따라 길이 이어져 아주 운치 있다. 촘촘히 늘어선 소나무숲을 곁에 두고 태화천이 흐른다.



마곡사는 산중에 있다기보다는 계곡 속에 있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계곡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마곡사를 끼고 도는 계곡을 태화천이라 부르는데, 이 계곡은 마곡사 앞에서 태극모양으로 휘돌아 나가는 물길 양쪽으로 절집이 있다. 한쪽은 기도와 수행의 공간으로 소담하고 한쪽은 기도의 도량으로 웅장하다. 다른 절과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옆에 절을 두고서도 한참이나 계곡을 올라가야 해탈문과 천왕문에 닿게 된다. 이곳의 해탈문은 계곡 옆 주차장에 홀로 서 있다. 멀리로 대웅전이 보이고 그 앞으로 작은 부도밭과 주변에 단풍나무가 서 있을 뿐이다. 꾸밈없이 소박하다.

해탈교 왼쪽 소담스런 담장 너머로 여러 채의 건물이 있는데 영산전과 홍성루, 매회당, 수선사 등의 선방이 있다.

그중에서 꼭 보아야 할 것은 영산전. 마곡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배흘림의 주심포 건물로 고색창연한 나뭇결과 낡은 단청이 인상적인 단아한 전각이다.

영산전을 둘러보고 천왕문을 통과하면 계곡 위에 극락교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면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보전이 나온다. 마곡사 대광보전의 외관은 단순하면서도 웅장한 것이 특징이다. 대광보전 위에 대웅보전이 있다. 대웅보전 툇마루에서 바라보는 절집풍경이 은은하면서도 편안하게 느껴진다. 언제 찾아도 늘 여백을 품고 있는 절집 여행이지만 연둣빛 손사래를 흔드는 신록은 푸른 꿈을 품게 한다. 숲터널이 펼쳐진 길을 걸으면 머리카락이 설 정도로 신선한 기운이 상쾌한 긴장감을 선물한다.




신록으로 물든 숲을 걷는 시간은 화려한 꽃구경에 느낄 수 없는 봄의 설렘이 있다. 눈이 부시도록 청명한 날에 숲길을 걸어 보라. 초록세상을 가슴에 가득 담는다면 이보다 기분 좋은 일이 있을까.

마곡사는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이래 충청도의 가장 대표적인 사찰로 이름을 떨쳤다.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는 그의 저서 <동국이상국집>에서 마곡사를 당시 가장 부유한 사찰이었다고 기록했다.

조선시대에도 세조가 직접 행차해 ‘영산전’의 친필 편액을 내렸을 정도로 충청도 전체 사찰을 관장하는 중심 사찰이었던 것이다.



마곡사는 무수한 절집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그보다 먼저 명당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택리지>나 <정감록>에 언급된 십승지 가운데 한 곳이 바로 마곡사다. 전쟁의 참화가 비켜 간다는 십승지 중 한 곳으로 마곡사가 거론되는 것은 마곡사가 품고 있는 계곡과 산이 절집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정감록>에서 말한 십승지는 인적이 드문 오지로 피난지를 가리킨다. 십승지는 경북 풍기의 금계촌, 봉화군, 충북 보은의 속리산, 전북 운봉의 두류산, 경북 예천의 금당동, 충남 공주의 유구와 마곡, 강원도 영월의 정동, 전북 무주의 무풍, 부안의 변산, 경북 합천의 만수동 등이라고 한다.

<정감록>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마곡사는 예나 지금이나 ‘오지’임에는 틀림없다. 마곡사는 한때 김구 선생이 은신했던 곳이다. 김구 선생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 후 일본군 특무장교를 처단하고 마곡사 백련암에서 실제로 3년 동안 스님생활을 했다.

백련암은 마곡사에서 2킬로미터 남짓 소나무 숲길을 따라가면 태화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마곡사를 품고 있는 산세가 한눈에 들어오고 요사(寮舍) 옆에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땅속에서 나오는 약수가 유명하다. 절집은 거대하거나 웅장하지 않지만 마음을 다독이고 큰 생각을 품게 하는 편안한 공간이다.




지금도 백련암에 가면 김구 선생의 흔적을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다. 해방이 되자 김구 선생은 마곡사를 다시 찾아가 은신했던 때를 생각하며 마곡사 마당 탑 앞에 향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는데, 지금도 윤기를 품은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물찾기를 하듯 향나무를 찾아보는 것도 좋고 계곡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신록 산책도 즐겨 보자.

마곡사 산책을 즐긴 후 마곡사 입구의 볼거리에도 눈도장을 찍어 보자. 1999년부터 조성된 마곡사 장승마을(☎041-841-5221)은 전국의 장승조각가 3백여 명이 조각한 장승 2천3백여 점이 전시돼있다.

이곳 장승마을은 전통 장승 형태와 다른 현대화한 장승이 많은 게 특징이다. 이곳을 대표하는 장승으로는 안동 하회탈 장승, 남원 이도령 장승, 논개 여장군, 남북통일 대장군, 역대 대통령 장승, 12지신 장승 등이 꼽힌다.



다양한 형태의 남근장승도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넓은 공원처럼 휴식공간이 조성돼 있고 주변에 토속 음식점이 많아 식사 시간을 이용해 둘러보기에 안성맞춤이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공주시내 여행도 추천한다. 공산성 안에는 웅진도읍기로 추정되는 왕궁지를 비롯해 백제시대 연못 2개소, 고려시대 때 창건한 영은사, 조선시대 인조대왕이 이괄의 난을 피해 머물렀던 쌍수정과 사적비, 남문인 진남루, 북문인 공북루 등이 남아 있다.

동문과 서문은 최근에 복원하였으며 주변에는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 공산성은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고 수려한 자연이 더해져 더욱 가치있는 곳으로 꼽힌다.

가족, 부부, 연인들이 금강을 바라보며 한가롭게 산책할 성벽길이 있고 우거진 숲과 숲 사이의 산책로가 있다. 계룡산과 차령산맥이 한눈에 들어오고 비단결 같은 금강이 발아래에서 찰랑거린다.

글과 사진·유철상 (여행작가)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