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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봄은 풍경을 바꿔놓는다. 봄바람이 간질거리기 시작하면 섬진강은 껴안고 싶을 만큼 포근하게 변한다. 새싹이 가녀린 나뭇가지를 뚫고 나오기 시작할 즈음 버선목처럼 희게 피어나는 매화와 노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지리산 자락을 물들이는 산수유야말로 남도의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봄소식이다.

곧이어 개나리, 진달래에 이어 하늘거리는 벚꽃과 진분홍빛 철쭉이 산자락과 강변을 따라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그것들의 자태는 오롯이 상춘객을 즐겁게 하는 것이니 이 모두 봄날의 섬진강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지금 섬진강은 봄꽃이 피기 시작했다. 눈만 돌리면 강변을 따라 만개한 봄꽃을 눈에 넣을 수 있다. 야트막한 돌담 너머로 계곡 사이사이에 산수유가 봉우리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산수유보다 일주일가량 먼저 봄소식을 알리는 매화가 지천으로 하늘거리고 제법 키가 자란 보리가 남도의 봄을 장식한다.

남원에서 고속도로 같은 19번 국도를 타고 밤재터널을 지나면 곧장 구례 땅이다. 밤재터널을 나서자마자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샛노란 산수유꽃이다.




길가와 마을 주변은 말할 것도 없고 산기슭과 골짜기, 돌담과 논길 등 눈길 닿는 곳마다 노란 꽃구름이 내려앉은 듯하다. 지리산 노고단과 만복대의 산머리에는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지만 산자락에 등을 기댄 상위마을은 눈부시게 화사해진다.

산수유는 이른 봄에 노란색의 예쁜 꽃망울을 터뜨리는 다년생 나무다. 얼음이 채 녹기도 전인 3월초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4월초까지 노란꽃이 핀다. 꽃은 그 모양이 아름다워서 관상수로 많이 재배되고 노랗게 피어난 꽃은 11월에 루비보석 같은 열매를 맺는다.

바로 이 산수유 열매는 빨간 육질과 씨앗을 분리해 차, 술, 한약재의 재료로 사용한다.



사실 산수유꽃은 꽃잎이 2밀리미터가량으로 아주 작기 때문에 낱낱의 꽃송이는 화려하지 않다. 산수유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그만 꽃송이가 눈꽃처럼 송글송글 맺힌 모양새다. 하지만 수십 수백 그루씩 무리를 지은 산수유나무가 한꺼번에 노란 꽃부리를 활짝 펼치면 벚꽃에 뒤지지 않을 만큼 화사하고 아름답다.

상위마을은 3월 중순경이면 산수유나무에 파묻힌다. 몇백 년씩 묵은 산수유나무들이 만개하면 마을은 온통 노란 꽃 세상으로 바뀐다. 마을 뒤편에는 눈 덮인 지리산 연봉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마을 오른편에는 작은 골짜기가 펼쳐져 자연경관 또한 매우 아름답다.

지리산과 섬진강에 봄이 온다는 것, 그것은 남도의 봄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봄의 선물로 이어진다. 진안 팔공산에서 발원해 임실, 순창, 남원, 곡성, 구례, 광양, 하동으로 약 5백30리(2백8킬로미터)를 유장하게 흐르는 섬진강. 섬진강의 사계를 따지는 일이 부질없는 일이지만 봄 섬진강이 좋은 이유는 따뜻함과 포근함이 어려 있기 때문이다.

보성강과 만나 합수머리를 이루는 곡성군 압록부터 강폭을 넓혀 구례, 광양을 거쳐 하동에 이르기까지 펼쳐지는 봄 풍경은 남도의 제1경으로 추켜도 손색이 없다.

그중 구례는 자연과 하나 되는 여행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예로부터 구례군 산동면은 산수유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산수유 열매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만큼 산수유나무가 많은 곳이다. 이곳에 산수유가 많은 이유는 지리산 자락의 지형적인 특성 때문이다.




산수유나무는 해발 2백~5백미터의 분지나 산비탈이 가파르고 일교차가 심한 곳에서 더 잘 자란다. 산동면 일대는 땅에 물기가 많고 볕이 잘 들며 바람막이가 잘되는 곳으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산동면의 계천리, 대평리, 위안리 등지에는 산수유 고목이 숲처럼 우거져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지리산 만복대의 서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위안리 상위마을은 가장 대표적인 산수유마을이다. 신기하게도 상위마을 일대는 새벽에도 안개가 끼지 않는다. 안개가 없어 일조량이 많고 꽃도 다른 곳보다 훨씬 화사하게 피어난다.

산수유는 두 얼굴의 꽃으로도 유명하다. 봄날에는 온통 노란빛이지만 가을이 오면 루비보석처럼 아름다운 열매로 다시 태어난다.



또한 산수유나무는 ‘자식들 공부시키는’ 나무로도 유명하다. 열매는 중요한 한약 재료로 사용되기 때문에 산수유 서너 그루만 있으면 자식 대학을 보낼 정도로 고수익이 보장되던 때도 있었다.

올해는 산동마을 지리산 온천지역 일대에서 3월 22일부터 25일까지 산수유 축제가 열린다. 산수유꽃 개화시기를 확인하고 싶다면 상위마을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3월부터 실시간 확인할 수 있고, 산수유꽃축제 정보도 알 수 있다.



구례까지 갔다면 섬진강 드라이브를 빼놓을 수 없는 일. 구례읍 맞은편에 숨어 있는 사성암을 찾아가자. 사성암은 섬진강과 지리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광경이 일품이다. 바위를 쪼아 그 돌로 축대를 쌓고 법당을 만들었는데 암자 자체가 거대한 탑처럼 생겼다.

법당 뒤로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넓이로 길이 나 있다. 이 길은 동굴로 이어진다. 도선스님이 수도했다는 도선굴이다. 특히 원효대사가 좌선했다는 좌선대가 사성암의 전망 포인트. 이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면 득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절경이다. 이곳에서 암자를 둘러보고 또 둘러봐도 새롭게 펼쳐지는 지리산과 섬진강의 절경에 눈이 즐거워진다.




구례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면 바로 화엄사와 운조루다. 화엄사는 구례읍에서 동쪽으로 약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지리산에 안겨 있고 544년(백제 성왕 22)에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울창한 숲과 계곡을 따라 화엄사 경내에 이르면 화엄사 천왕문이 나온다. 화엄사의 가람배치를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고, 화엄사의 상징 각황전 법당도 둘러볼 만하다. 각황전은 국보 제67호로 지정된 매우 유명한 건물로 현존하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각황전 앞마당에 서 있는 국보 제12호 석등은 높이 6.3미터, 직경 2.8미터로 통일신라시대 불교 중흥기의 찬란한 조각예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구례 토지면에 있는 운조루는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양반 가옥이다. 건축 당시엔 99칸이었으나 지금은 60여 칸만 전해진다. 일부가 소실되었지만 거대한 기와집의 기품이나 풍치는 여전하다.

운조루에서 관심 있게 볼 건물은 가옥의 사랑채. 대청과 누마루가 공존하는 궁궐 건축양식을 따랐지만 공포와 같은 장식 요소를 최대한 생략해 소박하고 단아한 건축미를 보여준다. 대문에 걸린 호랑이 뼈와 안채 마당에 있는 돌거북도 찾아보면 재미있다. 풍수지리를 언급할 때 남한 3대 길지로 유명하고, 현재는 후손들이 살고 있다.

글과 사진·유철상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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