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겨울이다. 수은주가 빙점 아래로 뚝 떨어졌다. 겨울바람이 옷깃 사이로 사정없이 파고든다. 이맘때면 겨울바다가 떠오른다.
시끌벅적한 포구가 괜스레 그립고 세찬 파도가 보고 싶다. 겨울바다에 가면 뭔가 새로운 활력이 몸속 가득 차 오를 것만 같다.
삼척의 바다를 추천한다. 광활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역동적이면서도 아늑하다. 약 60킬로미터에 달하는 긴 해안선 전체가 아름다운 해수욕장과 아늑한 포구, 파도 부서지는 기암괴석의 갯바위들로 이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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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여행을 즐기기 전 잠시 들를 데가 있다. 시내에 위치한 죽서루다. 예부터 대관령 동쪽의 아름다운 여덟 곳을 가리켜 ‘관동팔경’이라 불렀는데 오십천의 절벽 위에 지은 누각 죽서루는 관동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누각에 서면 S자 형으로 흐르는 오십천이 내려다보인다. 누각 입구에 대나무 숲길이 있어 기분좋은 산책을 즐길수 있다. 술과 우정을 나누며 인생을 담론했던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강 건너에서 바라보는 죽서루와 절벽이 어우러진 풍경도 아름답다.
죽서루를 둘러본 뒤 동해안의 풍경을 감상하며 싱싱한 활력을 가슴 한가득 품어 보자. 시내를 빠져나와 7번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쉴 새 없이 바다의 비경과 만난다. 특히 삼척해수욕장에서 삼척항까지 약 4.2킬로미터 구간의 새천년도로는 동해안의 아름다운
일출과 해안 절경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코스. 깎아지른 듯한 절경을 따라 소망의 탑, 비치조각공원 등이 모여 있다. 비치조각공원은 연인들의 데이트코스이자 새해의 태양을 가슴에 품기에도 좋은 해맞이 장소이기도 하다.
맹방해수욕장은 삼척에서 가장 큰 백사장을 지닌 해수욕장이다. 수심이 얕아 여름철이면 가족 피서객들로 붐빈다. 맹방해수욕장은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지로 유명한데, 주인공 상우(유지태 분)와 은수(이영애 분)가 백사장에 나란히 앉아 서로의 어깨를 기대고 파도 소리를 녹음하는 장소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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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하면 임원항 돌아보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임원항에 도착하면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어시장과 어선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포구 풍경이 먼저 반긴다. 바쁜 손놀림으로 싱싱한 활어를 양동이에 담아 경매장으로 옮기는 시장 사람들, 펄펄 뛰는 생선은 활기찬 포구의 일상을 보여준다. 암호 같은 경매사의 구령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고 포말을 일으키며 수평선을 향해 나아가는 고깃배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도 즐겁다.
임원항은 싸고 푸짐한 횟집 천국이다. 길게 늘어선 임원활어회어시장이나 해수욕장 끝에 있는 횟집 중 어느 곳을 가도 싼 가격에 푸짐한 회를 맛볼 수 있다.
삼척 맨 아래 매달린 고포항도 재미있다. 큰 마당만한 포구는 강원도와 경상북도로 갈린다. 고포는 자연산 돌미역으로도 유명한데 부산 기장미역과 함께 고려시대부터 왕실로 진상됐던 명품이다.
기암괴석 갯바위와 모래 해변, 포구와 등대가 아늑하게 어우러져 드라마의 배경이 된 장호항도 가 볼 만하다.
삼척해양레일바이크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즐기기에 딱 좋은 곳이다. 바다와 산을 동시에 맛볼 수 있어 더욱 좋다.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서 출발할 수도 있고, 용화리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운행구간이 5.4킬로미터로 제법 길다. 하지만 오르막길에서는 페달을 밟지 않아도 전동으로 움직이고 내리막길도 몇 곳 있으니 큰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 페달을 밟아 가다 보면 아름다운 해변이 연이어 나타난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환선굴이다. 천연기념물 제178호인 환선굴은 동양에서 가장 큰 석회암 동굴이다. 총 연장이 6.2킬로미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공개되는 부분은 1.6킬로미터 정도이다. 5억3천만년 전부터 형성됐지만 여전히 노화와 회춘이 반복되는 살아 있는 굴이다. 성장기부터 쇄락기까지 동굴의 모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환선굴 내부는 말 그대로 별천지다. 말이 굴이지 땅 속에 만들어진 또 다른 세상이다. 오련폭포, 흑백유석, 꿈의 궁전, 도깨비방망이, 대머리형 석순, 악마의 발톱 등 석회암과 물과 세월이 빚어 놓은 세상이 계속 모습을 나타낸다.
통로를 따라가다 보면 종유석, 석순, 석주, 석화, 커튼 등 수억년 긴긴 세월에 걸쳐 자연이 빚어낸 신비롭고 경이로운 지하세계가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느끼게 한다. 대충 보면 1시간, 메모라도 하려면 2시간은 족히 걸린다.
남쪽 신남항은 해신당 때문에 유명세를 탔다. 이곳에서는 물에 빠져 죽은 여인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나무로 남근을 깎아 사당에 걸고 제사를 지낸다. 사당 안에는 나무로 빚은 남근이 걸려 있고 난간도 남근으로 장식돼 있다. 장승공원에는 붉은 악마 남근 등 희귀한 것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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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개장한 ‘이사부(異斯夫) 사자공원’도 삼척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 역사에 편입시킨 이사부장군의 얼을 기리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성했다. 이사부장군이 울릉도 정벌 당시 나무사자를 함선에 싣고 가서 위협함으로써 항복을 받아낸 점에 착안했는데, 2008~2010년 이사부 역사문화 축전 중 나무사자 깎기 대회와 나무사자 공모전에서 입상한 작품 7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또 전망타워에서 삼척 해안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포구에서 맛보는, 찬 바닷바람을 후끈하게 달래 주는 삼척의 겨울별미가 곰치국이다. 20여년 전만 해도 그물에 곰치가 걸리면 그냥 버렸다. 뱀처럼 징그럽게 생겼다는 이유 때문. 이때 물속에 빠지면서 ‘텀벙텀벙’ 소리를 낸다고 해서 ‘물텀벙’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이제는 삼척의 별미로 자리 잡았다. 비린 맛이 없고 육질이 연한 데다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아 요즘엔 귀하신 몸으로 톡톡히 대접받고 있다. 곰치 몇 토막에 묵은 김치 숭숭 썰어 푹 끓여낸 곰치국은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맛과 입안에서 살살 녹는 살점 때문에 술을 좋아하는 뱃사람들에게 해장국 중 으뜸으로 꼽힌다. 정라항 일대 ‘곰치국 골목’에 맛집이 즐비하다.
요즘은 도루묵도 제철이다. 옛날 피란길의 한 임금이 ‘묵’이라는 고기를 맛보고 맛에 감탄해 ‘은어’라 부르도록 했는데, 대궐로 돌아와 다시 맛보니 그 맛이 아니어서 ‘도로 묵으로 고치라’고 했다는 그 바닷고기다. ‘말짱 도루묵’이란 속어도 여기서 비롯했다. 무와 파, 마늘 등을 넣고 찌개로 끓이거나 물을 자작하게 맞춰 조려먹는데, 살집이 부드러우면서도 다소 미끈거리는 게 특징이다. 소주안주로 그만이다.
글과 사진·최갑수 (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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