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인천역에서 내려 출구를 빠져나오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패루’(牌樓)다. 패루는 중국에서 큰 거리를 가로질러 세워진 시설물이나 공원 어귀에 세우던 문이다. 패루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차이나타운에 접어든다. 온통 붉은색 일색이다. 수십 개의 중국 음식점과 상점, 관운장을 모시는 의선당, 중국풍으로 꾸며진 주민센터 등 거리 곳곳이 중국을 옮겨놓은 듯하다.
커다란 용장식물이 있는 북성동 주민센터를 지나면 ‘공화춘’ 건물이 나온다. 한국식 짜장면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1905년 지어진 2층짜리 목(目)자형 구조물로 전형적인 청나라 양식을 따랐다. 화교 출신 우희광이 1911년 이곳에서 중국 음식점을 개업해 유명해졌다. 중화민국 수립을 기념해 ‘공화국의 봄’이라는 뜻의 공화춘(共和春)이라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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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이 처음 태어난 것은 인천 개항 후 산둥지방의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와 청요리집들이 생겨나면서부터라고 한다. 청요리가 인기를 끌자 누군가가 부두 노동자들을 위한 싸고 손쉬운 음식을 생각하게 됐는데, 산둥지방에서 즐겨먹던 춘장으로 짜장소스를 만들어 국수를 비벼먹게 만든 것이 짜장면의 탄생이라는 설이 있다.
공화춘에서 ‘삼국지 벽화거리’가 가깝다. 삼국지의 명장면 1백60개를 벽화로 그려 만들었다. 벽화는 삼국지의 역사적 사실을 고사성어와 그림으로 잘 표현하고 있어 길을 걷다 보면 삼국지 이야기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벽화거리를 지나 언덕을 오르면 자유공원이다. 개항 당시만 해도 ‘각국공원’으로 불리며 ‘존스턴 별장’을 비롯한 외국인 사택과 공장 등이 들어서 있었지만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초토화되면서 대부분 소실됐다. 현재는 인천상륙작전의 시발이 된 월미도를 바라보는 맥아더 장군의 동상과 한미 수교 1백주년 기념탑 등이 남아 있다. 뱃머리 모양의 전망대에 오르면 가깝게는 인천항, 멀게는 인천대교까지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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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는 개항장으로서의 인천의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제물포는 1883년 개항했는데 서구 열강과 일본, 중국 등 외세는 인천에서 그들에게 익숙한 건물을 지으며 조선을 넘봤다. 외세는 오래전 떠났지만 건물은 남았다. 1백여 년 전 국내 초기 서양식으로 지어진
일본은행, 답동성당, 인천우체국, 제물포구락부 등이 지금은 색다른 건축미를 자랑한다. 신포동 거리를 비롯해 차이나타운, 자유공원 일대에는 근대 개항기의 인천을 느낄 수 있는 근대건축물이 곳곳에 있다.
인천시는 이들을 돌아볼 수 있도록 ‘인천개항누리길’ 코스를 만들었는데, 짧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3시간 코스로 짜여 있다. 출발지는 인천역 앞에 자리한 인천관광안내소다.
1시간 코스는 차이나타운~자유공원~조계지계단~중구청~일본은행~한중문화관이며, 2시간 코스는 홍예문~인천우체국~중구청, 3시간 코스는 여기에 답동성당~신포쇼핑타운이 추가된다. 인천관광안내소에서 관광 지도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차이나타운 가까이 배다리골이라는 곳이 있다. 꼭 한 번 들러볼만한 곳이다. 현대식 고층 아파트 한 편에는 헌책방 골목과 여인숙골목 등 옛 인천의 모습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골목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배다리골 여행의 시작은 동인천역 앞 중앙시장이다. 중앙시장은 한복 골목으로 유명했다. 1·4후퇴 당시 황해도에서 내려온 실향민 가운데 바느질 솜씨가 좋은 아낙네들이 옷가지를 만들어 내다파는 가마니 좌판을 벌인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지금도 크고 작은 한복 매장 70여 곳과 침구와 커튼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다.
중앙시장 한 편에는 ‘양키시장’이 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과 인천항으로 드나드는 외국인들이 몰래 들여온 물건을 팔았다. 군화와 수통, 벨트, 반합 등 군용품과 로션, 커피, 양주, 땅콩, 캐러멜 등을 살 수 있었다. 갑자기 단속이 나오면 순식간에 사라지다 보니 ‘도깨비 시장’이라 불리기도 했단다. ‘양키시장’은 1980년대 후반 이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현재는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구입해 온 외제 화장품과 커피, 양주 등을 팔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중앙시장을 나오면 배다리 삼거리가 나온다. 몇 걸음 모퉁이를 돌아 들어가면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길조여인숙, 성진여인숙, 진도여인숙 등 요즘 보기 드문 여인숙들이 좁은 골목에 가득하다.
여인숙 골목을 빠져나오면 우각로다. 아스팔트가 깔린 왕복 2차선의 큰 길이다. 이곳에 배다리의 최대 명소인 헌책방 골목이 있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배다리에 리어카 책방이 모이면서 만들어졌는데 그 수만 40여 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작은 청계천’이라
불리던 골목에는 새 학기가 되면 교과서와 참고서를 구입하기 위해 찾아온 학생들로 붐볐다. 헌책방 골목 역시 지금은 한산하다. 대여섯 곳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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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초입의 ‘아벨서점’은 37년 내력을 지닌 헌책방 골목의 터줏대감이다. 헌책 마니아들에게는 ‘성지’로 꼽힌다. 요즘은 시 낭독회 같은 문화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책방 안은 소설, 시집, 사회과학 서점, 예술서적, 아동서적, 참고서 등을 꽂아놓은 책장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우각로는 개항장으로 들어온 서구 문물을 서울로 전하던 곳답게 최초의 공립 보통학교인 창영초등학교와 미국 감리교회 여선교사를 위한 기숙사 등이 남아 있다. 모두 1백년도 더 된 건물이다.
1920년대 문을 열어 인천의 막걸리 ‘소성주’를 제조했던 옛 양조장건물도 있는데 현재 ‘갤러리 스페이스 빔’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 미술, 건축 등 다양한 전시를 열고 지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미술교실 등을 운영한다.
배다리골에서 수도국산이 가깝다. 수도국산은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로 쫓겨난 조선인들의 보금자리였고 한국전쟁 때에는 피란민들이, 1960~70년대에는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와 공원으로 바뀌어 옛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산비탈 사이로 꼭대기까지 3천 여 가구가 모여 살던 인천의 대표적 달동네였다. 이곳에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 있다. 전시되어 있는 물건 대부분은 달동네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이 기증한 것이다.
글과 사진·최갑수 (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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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