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4월 중순 무렵부터 부산 기장 앞바다에는 멸치가 떼로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그야말로 ‘물 반 멸치 반’이다. 기장은 전국 유자망 멸치 어획고의 70퍼센트를 생산한다.
기장수협에 따르면, 멸치잡이 배 한 척이 1년에 20킬로그램들이 2만5천 상자분을 건진다. 기장 대변포구에서 나는 멸치는 연간 약6천 톤에 달한다.
멸치는 크기에 따라 새끼멸치와 왕멸치로, 잡는 시기에 따라 봄멸치와 가을멸치로 나뉜다. 왕멸치는 기름기가 많아 육질이 다른 멸치보다 조금 더 쫄깃하다는 점에서 좋고, 봄멸치는 알을 배어 영양가가 높아서 더욱 좋다. 기장 앞바다에서 자망어업으로 잡히는 멸치는 왕멸치며 봄멸치다.
“메루치회 함 묵어보이소.” “오늘 막 털어온 거라이.” “봄멸치 하면 기장멸치 아인교. 두말하면 잔소리니 함 묵어보소.” 대변포구를 걷고 있노라면 경상도 아지매 특유의 거친 억양이 발길을 잡아 이끈다.
한해살이인 멸치는 기장 앞바다로 번식을 위해 찾아들었다가 조류가 순해지는 조금물 때를 기다려 암초 위에 알을 쏟고는 짧은 생을 마친다. 기장 대변항의 어부들은 이 멸치들을 쓸어담으며 생을 산다.
멸치배가 들어오면 포구는 비로소 부산해진다. 배가 포구에 닿는 순간, 아낙들이 그물 양쪽 가장자리를 잡아당겨 주면 선원들이 탈망에 들어간다.
탈망은 그물을 털어 멸치를 모으는 과정이다. 비옷을 입고 두건을 쓴 7~8명의 선원이 ‘칫! 치-’ ‘으샤- 으샤-’하는 구령에 맞춰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당기며 털어낸다.
그물이 한 번 펼쳐질 때마다 멸치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가 후두둑 떨어진다. 아낙들은 배 주위로 몰려와 부둣가 밖으로 떨어지는 멸치를 플라스틱 대야에 잽싸게 주워담는다.
갈매기 떼도 멸치를 먹기 위해 하얗게 날아든다. 아낙들의 대야에 담기는 멸치는 대가리가 떨어져 나가고 몸통 일부도 여기저기 마구 잘려나간 것들. 이것들은 소금을 뿌려 바로 젓갈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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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망은 대략 오후 1~4시 사이, 밤 10~12시 사이에 벌어진다. 낮에는 햇빛을 받은 멸치가 비늘을 번쩍이며 튀어 오르는 장면이 장관이다. 밤에는 백열등 불빛에 반사되는 멸치의 몸통이 눈부시다. 그물에 매달린 멸치가 우수수 산처럼 쌓인다.
해마다 이 즈음이면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이 장면을 찍기 위해 몰려든다. 선원들은 지금까지 카메라 세례를 많이 받아서인지 무덤덤하다.
일정한 리듬을 타며 선원들이 멸치를 털어내는 광경은 보는 이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할 정도로 장관이다. 선원들의 덩실대는 어깻짓에 맞춰 ‘툭! 툭!’하며 포구를 울려대는 그물 터는 소리, 헉헉거리는 선원들의 밭은 숨소리가 어우러져 마치 한바탕 신명나는 굿판을 벌이는 듯하다.
탈망을 시작하자마자 선원들의 옷과 얼굴이 금세 멸치의 살과 내장으로 뒤범벅이 되는데 무아지경에 빠진 선원들의 얼굴은 마치 무당의 그것과 비슷하다.
선원들에게 4시간 가까이 계속되는 탈망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작업이다. 그물을 한 번 터는 데 그물이 줄어드는 길이라고 해봤자 고작 1미터 정도. 1.4킬로미터의 그물을 다 털어내려면 그야말로 팔다리에 피가 몰린다.
이런 까닭에 일종의 최면상태에 다다르지 않으면 작업을 끝낼 수 없다. 멸치를 잡는 일은 탈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토록 고된 작업이다 보니 멸치잡이배를 타려고 하는 선원도 없다. 그래서 요즘은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이 가끔 탈망 대열에 끼기도 한다.
멸치 중에서 머리와 몸통이 제대로 붙어 있는 잘 생긴 놈은 횟감으로 쓰인다. 대변항 앞에는 멸치횟집이 몰려 있다. 주말이면 멸치회를 먹으러 온 사람들로 포구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요즘 나는 봄멸치는 육질이 부드럽다. 입에 들어가면 살살 녹는 감칠맛이 느껴진다. 일반 회처럼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되고 10여가지 채소에 버무려 먹어도 맛있다.![]()
기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멸치로 만든 특별한 음식이 또 있는데 바로 멸치찌개다. 멸치를 통째로 넣고 된장과 우거지, 미나리, 방앗잎 등으로 국물을 진하게 낸 것이다. 전혀 비리지 않고 맛이 구수하다.
볏짚에 불을 댕겨 구워먹는 전통 방식의 ‘짚불구이 곰장어(갯장어)’도 기장의 별미다.
아궁이에 볏짚을 쌓고 불을 붙이면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는데, 석쇠에 곰장어를 얹은 뒤 이 열로 세 번 구워낸다.
짚불에서 적당히 구워진 곰장어의 새까맣게 탄 껍질을 벗기면 노릇노릇하게 익은 하얀 속살이 드러나는데, 이것을 먹기 좋게 잘라 소금이나 기름장에 찍어 먹는다.
원조는 ‘기장곰장어’. 4대째 곰장어 요리만 한자리(기장읍 시랑리)에서 해오고 있다.
솔잎의 향긋함이 더해지는 생솔잎 곰장어와 구수한 맛의 곰장어 된장국 등의 메뉴도 있다.
인근 월전마을은 장어로 유명하다. 남해지역에서는 장어라고 하면 붕장어를 가리킨다. 월전마을에는 포장을 둘러친 대형 포장집이 많다. 장어 1킬로그램 고작 2만4천원. 대충 산 장어를 토막쳐 내주면 손님이 즉석에서 막숯에 구워 먹는다.![]()
기장을 찾았다면 해동 용궁사에 들러보자. 수산과학원 가는 길을 따라 5분 정도를 가면 된다. 1376년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화상이 창건했다. 정동진역이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철도역이라면, 아마도 해동 용궁사는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사찰일 것이다.
국내 대부분의 절이 산에 있지만 용궁사는 특이하게도 바닷가 기암괴석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그 까닭에 ‘수당법당’이라고도 한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108 계단’을 딛고 내려가 반원형의 불이문을 지나면 절 마당으로 진입하는 돌다리가 나오는데 이 돌다리 밑으로 동해의 거센 파도가 몰아친다. 바다 위에 걸쳐진 다리를 지나 절 속으로 걸어가다 보면 마치 용궁 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용궁사는 특히 ‘기도’가 잘 먹히는 절로 알려져 있는데 기도한 사람의 소원 한 가지씩은 꼭 들어준다고 한다.
글과 사진·최갑수(시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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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