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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해남 땅에서 겨우 2백93미터 떨어져 있는 진도. 진도대교로 뭍과 연결되어 있지만, 뭍과는 자연도 풍습도 사뭇 다르다. 바닷물이 갈라지는 신비의 땅, 순종 진돗개가 집집이 짖어대는 곳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더없이 깊고 깊은 섬이다.

독특한 풍속이 남아있는 민속의 보고이자 남종화의 본산지인 예향, 섬 전체가 숱한 전란의 역사를 간직한 사적지이기도 하다.

진도 여행의 첫걸음은 운림산방이다. 전통남화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운림산방은 소치 허련(1808~1892)이 말년에 기거하던 화실이다. 소치는 초의선사, 추사 김정희에게 서화수업을 받아 시서화(詩書畵)에 두루 능했던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다. 추사는 소치를 두고 “압록강 이남에는 따를 자가 없다”고 극찬했다.




시서화로 당대를 휘어잡은 소치였지만, 1856년 스승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운림산방을 짓고 8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고독을 마주보고 살았다.

소치의 화맥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아들 미산 허형과 손자 남농 허건, 증손자 임전 허문까지 4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이런 까닭인지 ‘진도의 양천 허씨들은 빗자루만 들어도 명필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



운림산방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커다란 수양버들 두 그루가 맞이한다. 그리고 저만치 연못 건너로 보이는 아담한 한옥. 백일홍과 맥문동으로 둘러싸여 그윽한 정취를 풍긴다. 운림산방 앞 연못 운림지에는 수련이 활짝 피었다. 팽나무, 검팽나무, 생달동백 등이 연못가에 심어져 있다. 모두 소치가 먼 곳에서 구해 와 기른 것이다.

운림지 한가운데에는 조그마한 섬이 있고 백일홍이 한그루 심어져 있는데 소치가 직접 심은 것이라고 하니 줄잡아 1백50년은 된 듯하다. 늦여름이면 빨간 꽃을 피워 운림산방을 장식한다. 운림산방을 이리저리 거닐다 보면 이런 풍경 속에서 보낸 소치의 말년이 더없이 행복했음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운림산방 옆에 쌍계사가 있다.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쌍계사는 단출한 절이다. 요사채라고 해 봐야 원통보전, 대웅전 범종각이 전부다. 휘휘 둘러보는 데 20분이 걸리지 않는다.



대웅전 앞에 서서 대숲을 넘어와 절 마당으로 내려앉는 바람 소리, 바람이 흔들고 가는 풍경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날 선 마음이 어느새 누그러지는 것 같다.

역사상 세상 모든 풍요로운 땅이 그러했듯 진도 역시 차지하려는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땅이다. 909년 고려의 국조 왕건이 견훤과 마지막 싸움을 벌였고, 1271년 고려 말에는 삼별초가 여몽연합군에 맞서 최후의 항전을 하기도 했다. 1894년 동학의 마지막 전쟁이 끝난 곳도 진도다.

진도에는 대몽항쟁의 흔적이 또렷이 남아있다. 임회면 남도리에 있는 남도석성과 용장산성, 등이 그것이다. 고려 조정이 몽고에 항복하자 배중손을 지도자로 한 삼별초는 왕족 승화 후 온을 새 왕으로 받들고 1천여 척의 배에 재물과 사람들을 싣고 남쪽으로 떠난다.

강화도를 떠난 지 두 달 보름의 긴 항해 끝에 진도 벽파진에 다다른 이들은 용장성에 터를 잡은 후 용장산성을 짓는다. 그리고 ‘오랑’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며 전주와 동래 등 경상, 전라도로 진격해 몽고군과 전투를 벌인다.




삼별초 진도정부는 친몽고적인 왕실에 비판적인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았다. 삼별초가 용장산성에 든 지 아홉 달째. 몽고군과 고려 정부군이 합동 공격을 해오고 결국 10여 일간의 격렬한 전투 끝에 임금 온과 배중손은 죽음을 당한다.

남도석성은 배중손이 여몽연합군에 쫓겨 최후를 마친 곳이다.

삼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알려진 남도석성은 둘레 6백10미터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성벽의 높이는 5~6미터다.

남도석성은 성내에는 20여 가구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남도 석성에서 만난 한 노인의 말에 따르면 일본 강점기 때만 해도 1백20여 가구가 살았지만, 지금은 대처로 나가고 없단다.



석성을 둘러싼 개울에 놓여 있는 2기의 예쁜 다리도 놓치지 말고 볼 것. 동쪽에 있는 것이 단홍교, 서쪽에 있는 것이 쌍홍교다. 우리의 옛 ‘무지개 다리’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용장산성은 군내면 용장리에 있다. 몽고에 항복한 고려조정을 ‘괴뢰정부’로 취급한 삼별초가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은 곳이다.

삼별초는 당시 둘레 13킬로미터, 높이 5척의 대형 산성을 축조했으나 지금은 산성의 일부와 왕궁터에 남은 주춧돌만이 남아 쓸쓸히 여행객을 맞고 있다. 운림산방 가까이에 있는 왕온의 묘 역시 석상 2기만이 쓸쓸히 무덤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의신면 모도리는 ‘신비의 바닷길’로 유명하다.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의 약 2.8킬로미터가 조수간만의 차이로 1년에 3~4차례 갈라진다. 진도 사람들은 이것을 ‘영등살’이라고 부른다.

물길이 완전히 갈라지는 때는 봄(4, 5월)과 가을(10, 11월)에 각 3일 정도씩. 가을에는 새벽에 갈라지기 때문에 제대로 보기 어렵고 봄에 열리는 물길이 가장 좋다.

진도 여행의 클라이맥스는 세방 낙조다. 지산면 세방리는 중앙 기상대가 꼽은 한반도 제일의 낙조 명소다. 한반도에서 가장 늦은 해넘이를 볼 수 있는 데다 떠나기 못내 아쉬운 석양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다. 도로변에 낙조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저녁 7시 무렵이면 먼바다부터 슬금슬금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그러다 일순간 캄캄해지며 순식간에 붉게 물든다. 양덕도, 주지도, 장도, 소장도 등 세방리 앞바다에 솟은 크고 작은 섬을 온통 삼킬 듯 붉게 물들며 덮쳐 오는 노을. 뚝 하고 떨어지는 햇덩이를 보면 일순간 눈과 가슴이 먹먹해진다.

진도는 차를 타고 휙 둘러보고 나오는 섬이 아니다. 깊숙이 몸을 들이밀고 마음으로 느껴야 비로소 진도를 알게 된다. 길을 가다 만나는 농부, 농부가 흥얼대는 자진모리 소리 한 자락, 그 소리에 장단을 맞춰 흔들리는 보리밭, 산 아래 무심히 서 있는 석탑, 마을 앞 그늘 짙은 비자나무 등 진도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소하지만 그윽한 풍경들. 그 섬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가는 길 서해안고속국도 목포 나들목으로 나와 영산호 하굿둑과 영암 방조제를 지나면 77번 국도. 우수영에서 18번 국도를 타고 진도대교를 넘으면 진도다. 남도석성은 18번 국도를 타고 팽목까지 가야 한다. 팽목에서 임회면으로 나와 지산면으로 가는 16번 군도를 타면 세방낙조 전망대. 운림산방은 진도읍에서 쌍계사 방면 표지판을 보고 가면 된다.

먹을 곳 검정쌀과 진도홍주, 돌미역 등이 진도 특산품이다. 진도읍 철마광장에 있는 옥천횟집(061-543-5664)이 이름난 한정식집. 세방리 낙조전망대 아래에 있는 다도해관광회센터(061-543-7227)는 전망이 좋다. 해산물과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다. 우래식당(061-544-2120)의 해물탕이 유명하다. 싱싱한 해물 20여 가지와 콩나물, 미나리 등을 넣고 끓여낸다.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잠잘 곳 골드마운틴하우스(061-543-8991), 노을이머무는집(011-9404-3234), 진도한옥펜션(010-4150-9935) 등의 펜션이 있다. 남도민박(www.namdominbak.go.kr)에서 전라남도의 민박과 펜션, 한옥민박을 검색할 수 있다.

기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진도향토문화회관(진도군립민속예술단 061-544-8978) 대공연장에서는 강강술래, 남도들노래, 진도씻김굿 등을 공연한다. 관람료는 무료. 운림산방(061-543-0088)에서는 매주 토요일 11~정오 한국화와 서예품 경매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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