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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091102호

23년 만에 한국기록 경신 여자 200m 김하나 선수




10월 20일 제90회 전국체전 여자일반 1백 미터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하나(24·안동시청) 선수는 다음 날 2백 미터에서도 23초69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23년 만에 한국기록을 갈아치웠다. 종전 기록은 86서울아시안게임에서 박미선이 세운 23초80.
 

이어 22일 4백 미터 계주에서도 정순옥, 김태경, 김초롱(이상 안동시청)과 함께 23년 만에 한국기록(45초33)을 다시 쓴 뒤, 23일 1천6백 미터 계주 금메달로 화려한 질주의 종지부를 찍었다. 단 1주일 만에 한국 육상 여자 단거리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4관왕을 차지한 김하나는 제90회 전국체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는 영예도 누렸다. 여자 선수가 MVP로 뽑힌 것은 2004년 양궁 박성현 이후 5년 만이다. 육상 단거리 종목에서 MVP가 나온 것은 사상 최초다. 1980년 제61회 대회부터 MVP를 선정한 이후 육상에서 총 10차례 MVP가 배출됐지만 모두 마라톤 등 장거리나 창던지기, 세단뛰기 등 필드 종목 선수였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는 표현이 딱 맞다. 뛰어난 운동실력에 ‘트랙의 김태희’라고 불릴 정도의 수려한 외모까지 그는 스타의 요건을 모두 갖췄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육상 영웅을 찾던 언론은 그에게 매료됐다.
 

대한육상경기연맹 등으로부터 포상금만 2천만원 이상 챙겼고, 광고 출연 제의도 들어온 상태다. 올해를 끝으로 안동시청과의 계약이 만료되는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한 실업팀들의 전쟁도 이미 시작했다. 계약금만 억대 수준이 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하지만 김하나는 “큰 차이가 아니라면 나를 키워준 안동시청에 남고 싶다”며 ‘의리’를 최우선시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멀리뛰기 선수였던 김하나는 고질적인 아킬레스건 부상 때문에 실업에 오면서 단거리로 전향했다. 키 1백70센티미터, 몸무게 56킬로그램에서 나오는 파워와 유연성이 장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안동시청 오성택 감독은 “김하나의 장점은 무엇보다 어떤 훈련을 시켜도 소화해내는 성실함”이라고 말한다.
 

남자육상 2백 미터 한국기록(20초41) 보유자인 장재근 대한육상경기연맹 트랙 부문 기술위원장은 “한국 단거리 선수들은 2백 미터를 기피하는 경우가 있는데 김하나는 다르다”며 “기록만 봐도 엄청난 훈련량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2백 미터는 1백 미터보다 훈련 거리가 길고, 훈련의 강도도 더 세다. 하지만 힘든 2백 미터 훈련을 충실히 해두면, 1백 미터에서도 막판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우사인 볼트(23·자메이카)를 비롯해 세계적인 스프린터들은 1백 미터와 2백 미터를 겸업한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쉬운 훈련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단거리 선수가 희소하기 때문에 1백 미터만 출전해도 충분한 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로서의 도전정신은 사라지고 돈벌이의 수단만 남았다. 이것이 한국 육상이 정체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김하나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꿈을 좇았다. 오성택 감독은 “내년 시즌에는 2백 미터에서 20초 초반대 기록까지 도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하나가 항상 성실한 훈련 태도를 유지하는 데는 멀리뛰기와 단거리 선수 출신인 어머니 이미자 씨의 영향이 컸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운동신경이 전혀 없는 줄 알았다”고 말할 정도로 딸은 얌전하기만 했다.
 

김하나의 질주 본능이 발휘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우연히 출전한 교내 체육대회 때다. 멀리뛰기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그는 정식 육상부가 없는 상황에서도 파주시 대회와 경기도 대회까지 석권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중도에 운동을 포기한 어머니는 “그때 못다 이룬 내 꿈을 딸이 이뤄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시작한 대부분의 선수들과는 달리 김하나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육상부의 문을 두드렸다. 초등학교 시절 반장을 도맡을 정도로 성적도 우수했던 김하나였기에 도리어 선생님이 “공부를 시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문산여중 1학년. 정식 육상부 생활이 시작됐다. 고된 훈련과 외로운 숙소생활이었지만 김하나는 “어머니에게는 운동이 힘들다는 투정 한번 못 부렸다”고 털어놓았다. 트랙을 떠나 집에 돌아와도 “더 힘들게 운동해야 한다”는 채찍질이 돌아왔다. 매서운 코치가 버티고 있었던 셈이다.
 

김하나의 성실함은 어머니로부터 단련된 유산이었다. 딸이 한국기록을 경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도 모르게 울컥해져서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말했다.
 

이제 김하나는 1994년 이영숙이 세운 1백 미터 한국기록(11초49)을 향해 뛴다. 본인 최고기록(11초59)과는 0.1초 차다. 김하나는 “올겨울,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스피드를 더 보완해 2010년 상반기에는 1백 미터 한국기록을 깨고 싶다”고 밝혔다.

 


 

김하나가 1백 미터 한국기록마저 넘어선다면 남자육상 1백 미터, 2백 미터, 4백 미터 계주에서 모두 세계기록을 갖고 있는 우사인 볼트(23·자메이카)처럼 한국 여자 단거리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볼트와 마찬가지로 4백 미터 계주 순번도 3번이다. 4백 미터 계주의 1, 3번 주자는 곡선주로 1백 미터를, 2, 4번 주자는 직선주로를 뛴다. 볼트와 마찬가지로 김하나 역시 곡선주로에 강점이 있다.
 

안동시청 오성택 감독은 “보통 멀리뛰기 선수 출신들이 곡선주로에 강해 2백 미터를 잘 뛴다”고 했다. 2백 미터 트랙은 곡선주로 1백 미터, 직선주로 1백 미터로 이루어져 있다. 곡선주로에서의 기록단축 관건은 원심력과의 싸움. 김하나는 “고등학교 때 멀리뛰기를 하면서 쌓아둔 리듬감, 구름판 도약훈련을 하면서 키운 근력이 곡선주로에서 원심력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스타 반열에 올라선 김하나. 이제 미디어와 팬, 육상 관계자들의 지대한 관심도 또 하나의 원심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과연 김하나는 기록에 대한 모든 부담감을 뚫고, ‘하나’의 별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큰 욕심보다 매 경기 내 기록을 깬다는 자세로 임했다”는 김하나의 당찬 목소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듯하다.
 

글·전영희(스포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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