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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여강(麗江)은 경기도 여주 땅을 가로지르는 남한강의 다른 이름이다. 그 이름처럼 풍광 수려한 이 강의 양쪽에 여강길이 개설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문화생태 탐방로 중 하나인 여강길은 완벽한 순환형 코스. 시종 남한강의 물길을 따라가는 이 길은 겹치거나 되돌아오는 구간이 거의 없다. 그 덕택에 발길 닿는 곳마다 새로운 풍경과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세 코스로 이루어진 여강길의 총길이는 55킬로미터에 이른다. 보통사람의 걸음걸이로 18시간 이상 소요되는 먼 길이다. 그러므로 전체 구간을 도보로 섭렵하려면 적어도 1박2일의 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전거를 이용할 경우에는 당일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쉬엄쉬엄 달려도 예닐곱 시간이면 전체 구간을 둘러볼 수 있다. 두어 군데의 산길 구간 말고는 대부분 평탄한 강변길이다.

여강길의 제1코스인 ‘옛 나루터길’은 남한강의 물길을 거슬러 오른다. 남한강변의 바위절벽 위에 올라앉은 영월루가 이 코스의 첫 경유지다. 조선시대 여주 관아의 정문이던 기좌제일루(畿左第一樓)를 1925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영월루로 개칭했다고 한다. 누각에 올라서면 여주대교 일대의 남한강과 여주 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영월루 아래의 남한강에는 관광용 황포돛배가 한가로이 떠간다. 황포돛배 선착장 옆의 넓은 백사장에서는 4대강살리기 공사가 한창이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길을 찾아 우만리나루터에 당도했다. 이 나루터는 강 건너의 강천면 사람들이 땔감을 구하러 여주읍 우만리를 오가거나, 원주 소장수들이 여주장이나 장호장에 드나들 때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늙은 느티나무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는 나루터의 풍경이 스산하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적막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근처 영동고속도로의 남한강교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소음이 요란한 탓이다.

작은 나루터와 선사시대 유적지가 남아 있는 점동면 흔암리 마을을 지나면 이내 아홉사리과거길에 들어선다. 여강길 전체에서 가장 험준하면서도 운치 좋고 아름다운 오솔길이다. 이 길은 흔암리의 리치빌리지(청소년수련원)와 여흥 민씨 집성촌인 도리마을 사이의 남한강변에 우뚝한 산자락을 굽이굽이 돌아간다. 경상도와 충청도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갈 때에도 지나다니던 길이라고 한다.





 

이곳 길가에 핀 구절초를 중양절(음력 9월 9일) 때 캐서 달여 먹으면 모든 병이 낫는다는 속설도 전해온다. 이처럼 옛길 특유의 사연과 운치,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아홉사리과거길은 두 발로 걷는 하이커(Hiker)들에게는 꿈길처럼 황홀하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온 라이더(Rider)들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땀 나고,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 졸이는 준령이나 다름없다.

아홉사리과거길의 종점인 도리마을에서는 여강길의 제1코스도 끝나고 제2코스인 세물머리길이 시작된다. 도리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점동면 삼합리에서는 남한강 본류와 섬강, 청미천의 세 물길이 하나로 합쳐진다. 그래서 지명도 세물머리이고, 삼합(三合)이다.

물줄기만 셋이 아니다. 여강길도 경기, 충북, 강원 등 3도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든다. 삼합리에서 닭이목이고개를 슬그머니 넘어서면 충북 충주시 앙성면 단암리이고, 거기서 다시 남한강대교만 건너면 강원 원주시 부론면 소재지인 법천리에 당도한다. 남한강대교의 개통으로 제 기능을 상실한 개치나루터에는 일엽편주가 사공도 없이 홀로 떠 있다.

법천리 서원마을의 나지막한 산기슭에는 법천사지가 있다.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창건됐다는 법천사는 오랫동안 대찰의 면모를 유지하다가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버렸다. 현재 발굴작업이 한창인 이 절터에도 사람들의 발길은 간간이 이어진다. 고려 선종 2년(1085)에 조성된 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제59호)를 보기 위함이다. 높이 4.55미터의 이 탑비(부도비)는 고려시대 탑비를 대표하는 걸작품으로 손꼽힌다. 귀부와 비신, 이수 등의 각 부분마다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게 조각된 문양과 형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연발하게 만든다.

부론면 소재지에서 남한강 둑길을 따라 하류 쪽으로 2.5킬로미터쯤 가면 흥원창지에 다다른다. 남한강과 섬강의 물길이 합류되는 지점에 위치한 흥원창은 고려 초에 처음 설치됐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충주의 가흥창과 함께 남한강 수운(水運)의 중심지였다. 원주, 평창, 정선, 영월, 횡성 등지에서 거둬들인 세곡(稅穀)은 이곳에 보관됐다가 남한강 뱃길을 타고 한양으로 운송됐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서 뱃길의 수심이 점차 얕아진 데다가 곡식 대신 포(布)나 돈으로 세금을 내게 되자 조창의 역할은 크게 위축됐다. 결국 조선 후기에는 흥원창도 문을 닫았다.





 

흥원창지에서 여강길의 제3코스인 바위늪구비길이 시작된다. 옛 영동고속도로의 섬강교에서 바라보는 섬강의 풍경이 한가롭고 여유 있다. 다급했던 마음이 저절로 눅진해진다. 섬강교를 건너면 다시 여주 땅이다.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점동면 도리와 마주보는 강천면 강천리에는 약 1.5킬로미터 길이의 ‘해돋이산길’이 있다. 강 건너의 아홉사리과거길에 비견될 만큼 아름다운 강변 산길이다. 초반부에는 노폭이 비좁고 급경사 구간이 많아서 긴장감을 늦출 수 없지만, 중반부와 후반부는 길의 경사가 완만하고 노면상태도 좋아서 상쾌한 자전거 하이킹을 즐길 수도 있다.
 

강천리 마을 앞부터 영동고속도로 남한강교 사이의 강변에는 제3코스의 하이라이트 구간인 바위늪구비가 펼쳐진다. 바위늪구비는 남한강 물길이 만들어놓은 자연 늪이다. 강물이 늘면 물길이 되고, 강물이 줄면 늪이 된다. 주민들은 그곳에 이무기가 산다는 전설을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늪 주변에는 광활한 모래밭과 갈대밭이 형성돼 있어서 인기척에 놀란 고라니와 꿩이 이따금씩 뛰쳐나오거나 날아오르기도 한다.

남한강교부터 코스의 종점인 신륵사까지는 줄곧 찻길을 따라간다. 길은 유난히 더디고 지루하다. 도중에 만나는 목아불교박물관(031-885-9952)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반갑다. 여주군 강천면 이호리에 자리한 이 박물관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인 박찬수 씨가 지난 1993년에 설립한 불교 전문 박물관이다. 박물관 안에는 그가 직접 조각했거나 수집한 불상, 불교 장식품 등이 전시돼 있다. 그 가운데는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아 보물로 지정한 것만도 3점이나 된다.

목아불교박물관에서 신륵사(031-885-2505)까지의 거리는 십리쯤 된다. 자전거로는 단숨에 내달릴 수 있겠지만, 도보로는 1시간쯤 걸릴 만한 거리다. 풍광 좋은 남한강 강변에 위치한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고찰이다. 고려 말에는 유명한 고승인 나옹선사가 머무르다 입적했다.

신륵사의 여러 가지 보물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남한강변에 우뚝한 다층전탑(보물 제226호)이다.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서 쌓은 모전석탑이 아니라, 탑 전체를 벽돌로 쌓아 만든 진짜 전탑이다. 탑 아래쪽의 바위에는 아담한 삼층석탑과 ‘강월헌’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정자에 올라앉아 서쪽 하늘을 바라보니 어느덧 노을빛이 섬뜩하리만치 화려하다. 호수처럼 잔잔한 강물 위로 붉은 노을이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글과 사진·양영훈(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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