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이한우 기자의 역사 읽기 - 조선시대 ‘판서’는 어떻게 탄생했나
장관이라고 하면 그저 위계질서상의 최고(長) 자리(官)라는 뜻이다. 그 다음도 마찬가지다. 차관(次官)은 말 그대로 장관 다음(次) 자리라는 뜻이다. 이어 차관보(次官補)는 약간의 뜻이 가미되어 차관을 보좌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정확히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장관, 차관, 차관보에 각각 해당하는 조선시대의 관직명은 판서(判書), 참판(參判), 참의(參議)다. 이 자리는 모두 조선의 골격을 세운 제 3대왕 태종의 관제개혁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판서, 참판, 참의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조선 특유의 정치와 행정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된다.
누구보다 고려 관제의 문제점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던 태종은 권력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던 태종 5년(1405) 1월 15일 고려 때의 제도로 운영되던 관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한다. 천지개벽 수준이었다. 원래 6조는 별도의 책임자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의정부의 좌우 정승이 각각 3조씩 나눠 판사(判事)라는 이름으로 겸하고 있었다. 6조의 장은 전서(典書)라고 하여 정3품이었고 정승들의 강력한 통제하에 있었다. 정치(의정부)가 행정(6조)을 지배했던 것이다.
의정부가 강해지면 왕권은 약해진다. 태종이 문제로 보았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따라서 태종의 관제개혁의 핵심은 6조 기능 강화를 통한 왕권 강화였다. 그 개혁안을 보면 의정부에서 하던 대다수 업무를 6조로 귀속시켰고 6조에는 정2품 판서(判書)를 두도록 했다. 의정부의 참찬(參贊), 한성부의 판윤(判尹), 홍문관의 대제학(大提學)과 더불어 정경(正卿)으로 불린 6조 판서는 국왕과 더불어 국정(國政)을 논의할 수 있는 지위였다.
정3품 전서를 정2품 판서로 높인 태종의 깊은 뜻도 바로 실무행정을 책임지는 판서의 정치참여 기회를 넓히려는 데 있었던 것이다. 판서(判書)라는 관직명에도 그와 같은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직접 판단(判)하고 결재하여 집행(書)하는 자리라는 뜻이다.
6조의 등장으로 고려 때부터 태종 초까지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던 의정부(議政府), 사평부(司平府), 승추부(承樞府)는 크게 위축됐다. 의정부가 관할하던 1백여 개의 각 사(司)들은 업무 성격에 따라 6조로 분속됐다. 여기에 전곡(錢穀) 회계권을 갖고 있던 사평부는 혁파되고 그 권한은 호조에 귀속됐다. 병권을 갖고 있던 승추부도 혁파되어 그 권한은 병조로 넘어갔다. 문무관 인사권을 갖고 있던 상서사(尙瑞司)도 혁파되어 문관 인사권은 이조로, 무관인사권은 병조로 이관됐다. 이로써 국왕-의정부-6조로 일원적인 관제가 탄생함으로써 강력한 중앙집권 통치체제가 출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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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5년 관제개혁 당시에는 판서 아래에 전서(典書)를 없애는 대신 종3품에 해당하는 좌우 참의(參議) 두 자리를 두어 판서를 보좌토록 했다. 그 뜻은 현안에 관한 토의(議)에 참여(參)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아래 정랑(정5품)과 좌랑(정6품)도 설치했다. 그중 이조정랑과 좌랑은 신진 관리들의 인사에 대한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됨으로써 먼 훗날 당쟁의 진원지로 주목받기도 했다.
판서, 참판, 참의 중에서 가장 늦게 만들어진 것은 참판이다. 태종 16년, 이조에서 두 명씩 있는 6조 참의를 한 명씩 줄이는 대신 종2품 참판을 한 명씩 둘 것을 건의하자 태종은 받아들인다. 하지만 실상은 태종이 먼저 지시를 내린 것을 이조가 실무적으로 검토해 올렸다고 봐야 한다. 관제개혁은 처음부터 끝까지 태종 자신의 구상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조선 사람들은 임금은 상감(上監), 정2품 이상은 대감(大監), 정3품 당상관 이상은 영감(令監)이라고 했고 나머지는 모두 나리라고 불렀다. 판서는 대감, 참판과 참의는 영감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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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