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시골의사’ 박경철 씨가 추천하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시골의사’란 필명으로 알려진 외과의사 겸 경제평론가 박경철(45) 씨는 하루에 책 한 권은 꼭 읽는 책 마니아다. <시골의사의 부자 경제학><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등 경제 관련 책을 펴낸 그는 TV, 라디오 등에서 방송 진행자로 바쁘게 활동하면서도 틈틈이 책을 읽는다.
신경숙의 단편집에서부터 논어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섭렵한다는 박 씨가 요즘 곱씹으면서 읽기를 반복하는 책이 바로 한나 아렌트가 지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란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제목과 부제만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정치철학가 한나 아렌트가 르포 형식으로 쓴 책이에요. 수많은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나치 전범 아이히만이 전후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돼 재판받는 과정을 그리죠.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사람을 죽였다는 참회나 반성이 아닌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냈다는 당당함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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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가 본 아이히만은 피에 굶주린 살인마가 아닌 권력자의 명령과 실정법에 충실했던 소시민에 불과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권력과 체제의 요구에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았던 양심과 사고능력의 결여였다. 박 씨는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보면서 지적했던 세 가지 무능성, 즉 말하기, 판단, 생각의 무능성을 들어 현재 우리 사회의 병증을 꼬집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분열과 갈등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인터넷 댓글만 예를 들어도 알 수 있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주장만 옳다며 막말을 일삼아 상대를 자살에까지 이르게 하는 키보드 워리어(Keyboard Warrior)의 모습이 잘못된 신념에 따라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낸 아이히만의 모습과 무엇이 다릅니까. 내가 믿고 있는 것들이 합리적이고 옳은 것인지에 대한 비판적 수용이 필요합니다.”
비판적 분석 능력을 잃어버린 대중은 누구나 거대한 악의 전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신념을 따른 사람이 보여주는 행위는 아이히만이 보였던 ‘악의 평범성’으로 되풀이된다. 박 씨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 광우병 사건 등 어느 한쪽도 굽히지 않는 팽팽한 신념 속에서 한쪽에 매몰돼 따르기만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백성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지만, 시민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보고 비판적인 분석을 합니다. 지성인은 그 분석을 통해 잘못된 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요. 내가 생각하는 것들과 다른 것들은 분명 존재합니다. 내가 보고 믿는 것만이 진리는 아닙니다. 귀를 열고 눈을 떠 상대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것만이 수없이 되풀이되는 아이히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입니다.”
글·김민지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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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