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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091124호

경기 구리시 동구릉 숲길





우리나라의 왕릉은 역사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특히 도시 한복판이나 근교에 자리 잡은 왕릉을 볼 때마다 새삼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그 능이 없었다면 그만큼의 숲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자연과 사람의 거리도 훨씬 더 멀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6월에 조선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을 비롯한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것도 자연과 공존하는 역사유적이라는 점이 크게 고려됐다고 한다.

오늘날 왕릉을 찾는 사람들은 왕과 왕비들의 자취뿐 아니라 아름다운 숲과 살아 있는 자연을 만나기 위해 그곳을 찾는다. 수백 년 동안 왕실과 국가의 엄격한 보호를 받아온 왕릉은 울창한 숲과 천혜의 자연이 잘 보존돼 있어서 가벼운 산책코스로도 제격이다. 또한 이맘때쯤의 가을날에는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만추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아주 좋다.      

조선왕조의 오백년 도읍지였던 서울과 서울 근교에는 여러 곳의 왕릉이 산재한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은 경기 구리시 인창동에 자리 잡은 동구릉(관리소 031-563-2909)이다. 면적이 1백96만5백11제곱미터(약 59만3천 평)인 동구릉은 어지간한 대학 캠퍼스보다도 넓다. 단순히 넓은 것만이 아니라, 숲의 보존 상태와 자연풍광도 우리나라 왕릉들 가운데 최고로 꼽힐 만하다. 그러므로 답사기행을 겸한 생태여행지로 안성맞춤이다.



도성 동쪽에 있는 9개의 능묘란 의미의 동구릉에는 모두 17명의 왕과 왕비가 묻혀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조선 최대의 전란인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 조선의 문예부흥기를 연 개혁군주이자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비정의 아버지 영조 등의 능이 모두 여기에 있다. 능과 능을 잇는 숲길은 매우 아름답고 운치 있다. 그 길의 운치에 매료되어 하나하나씩 섭렵하다 보면, 동선이 거의 겹치지 않는 순환산책로를 한 바퀴 돌아온 셈이 된다. 또한 참나무, 소나무, 백당나무, 오리나무, 국수나무 등이 크고 작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각 능의 주변마다 풍광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고, 어느 숲길에 들어서도 새로운 멋이 느껴진다.

관리소 앞에서 건원릉 가는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울창한 참나무 숲길을 빠져나오자마자 수릉이 보인다. 24대 헌종의 아버지 문조(효명세자)와 신정왕후의 능인 수릉 옆에는 5대 임금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인 현릉이 있다. 다시 그곳을 지나서 키 큰 소나무들이 열병하듯 늘어선 숲길을 빠져나오면 건원릉 앞에 당도한다.

건원릉은 잔디 대신 억새가 봉분을 뒤덮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훗날 태종이 된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고향인 함흥을 몹시 그리워하던 아버지를 위해 고향의 흙과 억새를 가져오게 해서 봉분을 단장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만 들어봐서는 효심이 매우 깊은 아들이라 생각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생전의 태조는 죽은 뒤에 계비 신덕왕후와 함께 묻히기를 원했고, 먼저 세상을 떠난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에 자신의 묏자리까지 마련해두었다. 하지만 태종은 아버지의 유언까지 거스르며 지금의 동구릉에 모셨고, 신덕왕후의 능은 도성 밖으로 옮겨버렸다.







건원릉 북쪽의 동구릉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는 14대 선조와 의인왕후, 계비인 인목왕후 등 세 사람이 잠든 목릉이 있다. 3개의 능이 뚝뚝 떨어져 있어서 능과 능 사이에는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진다. 그래서 동구릉의 여러 능역 가운데 가장 시야가 시원스럽다. 하지만 일반인의 출입은 11월 말까지만 한시적으로 허용되고, 화재 발생의 위험이 높은 겨울철에는 출입금지구역이 된다.  

건원릉과 휘릉(조선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의 능) 사이에는 참나무숲과 덩굴식물, 키 작은 관목 등이 뒤섞인 숲이 펼쳐진다. 휘릉은 현재 정자각과 비각이 보수공사 중이어서 제대로 둘러보기 어렵다. 휘릉을 지나 원릉으로 가는 길에는 우람한 참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군데군데 소나무와 단풍나무도 서 있어서 늦가을의 정취가 특히 아름답다. 또한 참나무 잎이 수북한 숲 바닥에는 파릇한 이끼가 융단처럼 깔려 있어 잠시 누워서 뒹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기도 한다.


원릉은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의 능이다. 조선의 임금 가운데 가장 재위 기간이 길고 장수했던 영조는 원래 정비인 정성왕후가 묻힌 서오릉의 홍릉을 자신의 능으로 삼고자 했다. 하지만 자기 아버지를 죽게 만든 할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았던 손자 정조는 할아버지의 능을 이곳에 조성했다.

원릉에서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 조금 가면 삼거리를 만난다. 왼쪽은 혜릉(조선 20대 경종의 정비 단의왕후 심씨의 능), 순릉(조선 9대 성종의 정비 공혜왕후의 능)이나 다시 정문으로 나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경릉(조선 24대 헌종과 정비 효현왕후 김씨, 계비 효정왕후 홍씨의 능)과 자연학습장으로 가는 길이다. 경릉을 지나 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자연학습장 길은 산불 방지와 야생조수 보호를 위해 10월 31일까지만 한시적으로 개방된다. 총 2킬로미터쯤 되는 이 길의 중간에 양묘장과 자생식물포가 있어 우리 땅에 자생하는 여러 풀꽃들을 한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다. 올가을에는 아차산에서 넘어온 야생 멧돼지가 출몰해 포수들까지 동원한 포획작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릉은 동구릉 순환산책로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위치한다. 그래서 왕릉을 둘러본 뒤에는 왔던 길로 되돌아나와야 한다. 그럼에도 가까이에 개울이 흐르는 데다 호젓하고 자연스러운 멋이 돋보이는 숲길이라 그냥 지나치기엔 아까운 곳이다.

이제 남은 것은 20대 경종의 왕비 단의왕후 심씨가 묻힌 혜릉뿐이다. 혜릉 가는 길가의 숲에는 참나무가 많지만, 혜릉 자체는 곧게 뻗은 소나무들에 에워싸여 있다. 능의 규모가 비교적 작은 데다 소나무 숲이 울창해서 전체적으로 푸근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동구릉 능역에는 높이 15미터, 수령 2백 년 이상 된 소나무가 약 4백여 그루 있는데, 혜릉 주변의 소나무 숲이 특히 기품 있고 보기 좋다.    

혜릉 남쪽의 깊숙한 곳에도 18대 현종과 왕비 명성왕후 김씨의 능인 숭릉이 있다. 34세를 일기로 승하한 현종도 순탄치 않은 역정을 겪은 임금이다. 아버지인 봉림대군(효종)이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있는 동안 머나먼 이국땅에서 태어났다. 현재 숭릉은 산불 방지와 자연보호를 목적으로 일 년  내내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다.

동구릉의 숲은 깊고도 그윽하다.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도시 한복판에서 강원도 첩첩산중으로 순간이동을 한 듯한 착각마저 든다. 조붓한 숲길을 걷는 동안 새소리와 물소리가 쉼 없이 들려온다. 아쉬운 발걸음을 되돌려 정문을 다시 나설 때면 마치 짧고도 나른한 봄꿈을 꾼 듯한 몽롱함이 한동안 사그라지지 않는다.

글과 사진·양영훈(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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