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사람들은 바다의 낭만과 정취를 진하게 느끼고 싶을 때 섬을 찾는다. 망망대해에 일엽편주처럼 떠 있는 절해고도에서는 바다가 유난히 넓고 위대하게 느껴진다. 심연(深淵) 같은 바다에 둘러싸인 섬은 외롭고,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초라하다. 인간과 자연의 경계조차 불분명해진다. 소우주라는 인간도 대자연의 미미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섬에서는 누구나 고독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경남 통영의 사량도에서는 인간이 실제보다 훨씬 커 보인다. 그 섬에서는 내가 서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느껴진다. 발아래 펼쳐진 세상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천연전망대가 곳곳마다 산재한 덕분이다.
사량도는 남해도와 통영 미륵도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북쪽으로는 고성군의 자란만과 마주본다. ‘사량도’라고 하면 흔히들 한 개의 섬으로 오해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너비 3백~4백 미터가량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윗섬과 아랫섬으로 나뉘어 있다. 두 섬 사이의 바다는 마치 강처럼 좁다. 그래서 ‘동강(桐江)’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오동나무처럼 물빛이 푸르고, 강처럼 폭이 좁다는 뜻이다. 두 섬 사이의 바다가 마치 뱀처럼 가늘고 구불구불한 형태를 이루고 있어서 사량도(蛇梁島)라고 불리게 됐다는 말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섬의 형태가 뱀을 닮은 데다 뱀도 많아 사량도라 명명됐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사량도는 바다보다 산이 좋다. 두 섬 모두가 옹골찬 산세를 자랑한다. 윗섬에는 옥녀봉(2백61미터)에서 가마봉(3백1미터)과 불모산(4백미터)을 거쳐 지리산(3백98미터)까지 이어지는 암릉(巖稜)이 우뚝하다. (사량도 지리산은 지리산이 보인다 하여 지이망산(智異望山)으로 불리다가 그 말이 줄어 지리산이 되었다. 국립공원 지리산과 구별하기 위해 통상 사량도 지리산이라 불린다.) 아랫섬에도 칠현봉(3백45미터), 망봉(3백48미터), 용두봉(2백25미터) 등으로 연결된 산줄기가 장대하다.
그중 윗섬에는 면사무소가 위치한 진촌마을을 출발해 옥녀봉, 연지봉, 가마봉, 불모산, 지리산 등의 봉우리를 두루 거쳐 돈지마을로 내려서는 종주코스도 개설돼 있다. 이 코스는 내륙의 어느 명산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산행의 묘미가 다채로운 명품 코스로 유명하다. 주말과 휴일마다 수천 명의 외지인들이 이 섬을 찾는 까닭도 십중팔구는 산행에 있다.
사량도 종주산행에 나선 이들은 대개 돈지마을에서 시작해 진촌마을로 하산한다. 산행을 마친 뒤에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금평항에서 여객선을 이용하거나 주변 식당에서 때늦은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하지만 심신의 피로가 쌓인 산행 후반부에 고난도의 불모산~옥녀봉 구간을 통과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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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진촌마을을 출발해 체력이 좋은 상태에서 옥녀봉~불모산 사이의 험로 구간을 통과한 다음, 비교적 평이하고 안전한 불모산~지리산~돈지마을 구간을 산행의 후반부에 통과하는 것이 안전하다. 더욱이 진촌마을 위쪽의 옥녀봉은 동쪽으로 시야가 훤해서 해돋이 감상 포인트로도 제격이다.
일출 예정시각 1시간 전쯤 진촌마을을 출발하면 옥녀봉 정상에서 한려수도의 절승을 무대로 펼쳐지는 해돋이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진촌마을에서 옥녀봉으로 오르는 길은 시작부터 경사가 만만치 않다. 산행을 시작한 지 20~30분쯤만 지나면 답답한 숲길을 벗어나 시야가 탁 트인 능선 길에 올라선다. 관공서와 민가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진촌마을이 발아래에 놓이고, 호수처럼 고요한 바다가 사방으로 펼쳐진다. 다급했던 발걸음과 마음을 느긋하게 만드는 풍경이다. 하지만 거기서부터 설악산 공룡능선처럼 날카로운 암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잠시도 놓을 수가 없다. 가파른 철 계단을 지나면 옥녀봉 정상이고, 다시 날카로운 능선을 얼마쯤 걷다가 줄사다리를 타고 올라서면 연지봉(2백95미터) 정상이다.
옥녀봉에서 가마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은 황홀하지만 아찔하다. 외줄을 타고 깎아지른 암벽을 오르내리거나 거의 수직에 가까운 철 계단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오르기가 어렵고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높은 구간에는 우회로가 개설돼 있으므로 무리해서 외줄이나 줄사다리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심신의 평정을 되찾은 뒤에 바라보는 풍경은 황홀경 그 자체다.

양쪽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징검다리처럼 떠 있는 남해바다가 보석처럼 반짝이고, 바다와 바다 사이에는 공룡의 이빨처럼 뾰족뾰족한 산줄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올랐다. 바다 빛깔이 어찌나 푸른지 날씨 쾌청한 날이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다. 쪽빛바다와 황금들녘에 에워싸인 섬마을 풍경도 더없이 정겹다.
가마봉 정상에서 망연히 바다를 바라보던 이종원(44) 씨는 “이래서 한번 다녀간 사람들이 ‘꼭 한번 사량도에 가보라’고 권하는가 봅니다. 저도 여러 섬들을 많이 돌아다녀봤는데, 이곳처럼 산과 바다의 조화가 아름다운 섬은 달리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서울에서부터 천리 길을 달려왔다는 이 씨는 “아마 섬을 떠나자마자 그리워져서 금세 다시 찾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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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봉을 뒤로하고 톱날처럼 날카로운 톱바위를 지나면 이내 사량도의 최고봉인 불모산 정상에 당도한다. 불모산 정상의 달바위에서는 남해 금산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워 보이고, 명산 지리산도 한결 또렷하게 다가온다. 불모산의 서쪽에 이웃한 봉우리도 지리산이다. 원래는 ‘지리산을 바라본다’는 뜻의 지리망산(智異望山)이었지만, 언젠가부터 슬그머니 지리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봉우리의 높이나 전체 규모는 진짜 지리산에 감히 견줄 수도 없지만, 그 탁월한 조망만큼은 해발 1천9백15미터의 지리산 천왕봉에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장쾌하다. 지리산에서 돈지마을로 내려서는 길은 저절로 휘파람이 나올 정도로 편안하다. 마을에 도착하니 갑자기 긴장이 풀리고 온몸이 나른해진다. 그래도 뭔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으로 가슴은 뿌듯하다.
사량도는 차를 타고 한 바퀴 둘러보기에도 좋다. 특히 윗섬에는 섬 전체를 한 바퀴 도는 해안도로가 나 있고, 이 길이 지나는 바닷가 곳곳에는 아담한 갯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서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더욱이 면사무소 인근의 대항마을에는 고운 모래가 깔린 대항해수욕장이 있어서 여름철에는 산행 후에 해수욕을 즐길 수도 있다.
사량도는 남해안에서도 소문난 바다낚시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바다가 깨끗하고 수중 암초가 많아서 볼락, 노래미, 참돔, 광어, 감성돔, 농어 등 다양한 어종이 많이 잡힌다. 8월부터 10월까지는 농어와 삼치, 찬바람이 부는 11, 12월에는 볼락과 도다리 등이 잘 잡힌다.
글과 사진·양영훈(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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