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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090810호

유니버시아드 대회 우승한 한국 여자축구팀



“세계 수준 도달은 남자축구보다 여자축구가 훨씬 먼저 이룰 겁니다.” 2007년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안익수(44) 감독은 2008년 초 인터뷰에서 조심스레 “여자팀이 남자팀보다 우승권에 먼저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99년부터 6년간 성남 일화 코치를 역임한 안 감독은 2006년 대교팀 감독에 부임하면서 여자축구에 입문했다. 2년여 만에 어떤 ‘확신’을 가지게 된 걸까?
 

그는 “걱정스레 맡은 여자축구팀에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2009년 7월, 그의 말은 현실이 됐다.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은 미국, 브라질, 독일 등 세계의 축구 강호들이 대거 참가한 제25회 베오그라드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결승에서 숙적 일본을 4대 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남자팀은 6위에 머물렀다.
 

안 감독이 2007년 말 여자축구 대표팀 감독에 부임한 후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세대교체’였다. 지난해 5월 아시안컵 본선을 앞두고 대부분의 선수들을 20대 초반으로 물갈이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주장 김유미(대교)가 당시 29세. 그간 대표팀의 맏언니로 팀을 이끌었던 유영실(33·대교)마저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안 감독은 “눈앞의 아시안컵이나 피스퀸컵이 목표가 아니다. 멀리 2010년, 2012년 있을 아시안게임, 올림픽을 생각해 젊은 선수들 위주로 팀을 구성했다. 이 선수들이 경험을 쌓아 앞으로 본선 진출, 나아가 한국 여자축구 발전의 축이 돼야 한다”고 했다. 어린 선수들을 불러들인 안 감독은 훈련 방식도 바꿨다. 먼저 선수들의 ‘두려움’부터 해결했다. 여자 선수들은 26~30세에 전성기를 맞지만, 그 시기 이들은 ‘이제 곧 은퇴할 텐데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직업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안 감독은 어린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먼저 했다. 그는 “선수들은 국가관이나 프로로서의 마음가짐,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부족했다.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대교 시절에도 선수들에게 “훈련 외 시간에 제2의 인생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말라. 영어도 배우고, 미용 등 새로운 공부를 하라. 비용은 지원하겠다. 머리를 기르고 화장도 해라. ‘여성스러움’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간 ‘남성성’을 중요시한 지도자들에 비한다면 파격적인 일이다.
 

‘막무가내식 훈련’도 탈피했다. 훈련 도중 전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잦아졌고, 무엇보다 경기 중 선수 개개인의 판단을 중시하는 훈련에 힘썼다. 안 감독은 이에 대해 “아직 전력적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선수 판단으로 경기를 만들어가는 능력을 키우고 있다. 판단력과 인지력이 높아져 앞으로 지난번처럼 후반에 체력이 떨어져 맥없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이해를 하니 움직임이 달라졌다.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도 선수들을 보면서 이런 마음가짐과 실력이라면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믿음이 우승의 원천이 됐다”고 귀띔했다.
 

세대교체에 성공한 여자축구 대표팀은 숙제도 함께 받았다.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넓은 저변이 필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른바 ‘엘리트 여자축구’ 선수들은 1천6백명 정도에 불과하다. 안 감독은 “미국의 경우 9백50만명, 독일과 일본은 3만명에 달한다. 저변을 비교할 수도 없지만, 일단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는 한국이 우승했다. 앞으로 이 같은 실력을 유지하면서 저변을 확대하는 게 여자축구의 가장 큰 숙제”라고 말한다.
 

외국 전지훈련을 다녀온 선수들은 외국의 인프라에도 부러움을 느낀다. 지난해 11월 미국 전지훈련을 다녀온 여자축구 대표팀 선수들은 “연습구장이 9개나 있는데 모두 여자 선수들이 연습하더라. 우리나라의 경우 유소년, 특히 여자팀의 경우 지원이 충분치 않다. 코치들도 많지 않아 골키퍼 등 특수 포지션 선수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변화의 조짐은 조금씩 보이고 있다. 올해 한국여자축구연맹은 한국 여자축구 사상 최초의 실업리그인 ‘WK리그’를 출범시켰다. 그간 여자축구는 몇 개의 단기전을 치렀지만, 이제는 연중 리그에 참가하며 경기력을 유지한다.
 

오규상 한국여자축구연맹 회장은 “리그 출범이 인지도 상승효과 등을 통해 여자축구 저변 확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기존에 비해 경기 수가 늘어난 만큼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도 기여할 것이다. 우리나라 여자축구 세계 랭킹이 현재 21위다. 5년 사이 26위에서 5단계나 상승했다. 우리 여자축구가 유럽이나 북미 등 여자축구 강팀들과 자주 경기를 갖는다면 랭킹은 더 상승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남자축구 선수들처럼 해외 진출의 물꼬도 텄다. 대교 소속이던 박희영(24)과 차연희(23)는 올해 초 독일 분데스리가 1부 SC07 바드 노이에나르와 1년 2개월간 임대 계약을 맺었다. 이진화와 정미정이 2005년과 2006년 일본 고베 아이낙에 진출한 적은 있지만 유럽 무대에 진출한 건 이들이 최초다.이들의 해외 진출은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됐다. 부산 상무 신귀영은 “한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늘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우리 팀 후배들도 ‘나도 열심히 하면 연봉도 높고, 수준 높은 리그에서 뛸 기회가 온다’는 사실에 고무돼 있다”고 전했다.
 

여자팀은 2010년 월드컵과 올림픽 예선을 비롯해 4, 5개 대회에 참가한다. 여자축구 월드컵은 오는 2011년 독일에서, 올림픽은 2012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다. 안 감독의 목표는 ‘예선 통과는 물론 세계적 축구 수준에 걸맞은 경기력’을 선보이는 것이다. 그의 자신 있는 눈빛에서 한국 여자축구의 희망을 읽었다면 과장일까. 끊임없이 노력하는 여자축구의 발전은 ‘현재진행형’이다.
 

글·온누리(중앙일보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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