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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090928호

작은 음식이 좋은 음식이다




요즘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컬러는 녹색이다. ‘녹색 성장’으로 상징되는 친환경, 저탄소 경제 실현이 화두가 되고 있다. 이런 거대 담론이 아니더라도 이미 몇 년 전부터 ‘친환경’ ‘유기농’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슬로푸드, 슬로시티라는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다.
 

어느 때보다 슬로푸드(Slow Food)에 대한 관심이 높다. 슬로푸드는 패스트푸드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다. 이탈리아 북서부의 소도시 브라(Bra)에서 맥도날드로 상징되는 패스트푸드 문화에 분노한 일군의 요리사들이 모여 ‘슬로푸드 운동’을 선언한 지도 10년이 지났다.
 

많은 사람들은 패스트푸드가 우리의 좋은 음식문화를 망쳐놓았고, 슬로푸드가 대안이라고 이야기한다. 설득력이 있지만,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주장이다. 패스트푸드가 음식문화를 망쳐놓은 게 아니다. 오히려 대량 생산이 문제다.
 

오늘날 세계인들이 건강식의 상징으로 여기는 스시도 에도 시대의 패스트푸드였다. 당시 스시는 간사이(關西) 지방의 ‘하코 스시’였다. 하코(箱子) 스시는 지금의 ‘니기리 스시’처럼 간단하게 식초로 간을 한 밥을 쥐고, 그 위에 신선한 생선살을 올리는 게 아니라, 며칠씩 걸리던 음식이다. 그후 복잡한 하코 스시 대신 패스트푸드 스시가 등장해 스시의 대표 주자가 됐다. 지금 세계인들은 에도 시대의 패스트푸드를 최고의 건강식으로 받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크기’다. 작은 음식은 좋고, 큰 음식은 나쁘다. 우리는 패스트푸드가 가져온 해악에 신경 쓰느라 작은 음식의 가치를 놓치고 있다. 오늘날 문명화된 세계인의 먹을거리는 대부분 공장에서 생산된다. 생명이 살아 있던 음식이 공산품처럼 바뀌고 있고, 다른 생필품처럼 시장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대량으로 생산되는 것이다.
 

모든 생산과정을 과학적으로 처리하고 사료를 배급해서 키운 돼지고기로 만든 햄은 큰 음식이다. 컨베이어 벨트와 같은 거대한 닭장에서 나온 달걀도 큰 음식이다. 대형 마트에서 파는 유명 대기업의 두부는 큰 음식이다. 그것에 비록 ‘유기농’과 ‘우리 콩’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더라도 말이다.

 


 

과거엔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먹이 사슬에서 주도권을 쥔 쪽은 생산자였다. 농부와 어부가 먹을 것을 공급하고, 소비자는 그들이 내놓는 대로 먹었다. 생산자가 먹을거리의 종류와 그것을 만드는 방법을 결정했다. 그런데 이제는 소비자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생산자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먹을거리를 소비자들이 원하는 시간에 내놓아야 한다.
 

이젠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제철과 원산지는 중요치 않다. 먹을거리가 나오는 때와 장소는 무의미해지고 있다. 통조림이 아니라도, 한겨울에도 여름 과일을 먹을 수 있다. 아침에 남태평양에서 잡힌 참치가 저녁때 도쿄 긴자의 스시 다이에 오르고, 북대서양의 연어가 서울의 밥상에 오른다. 먹을거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확실히 세계는 ‘평평’해졌다.
 

세계가 평평해지는 동안 모든 권리의 중심은 소비자였다. 소비자가 옳다, 소비자가 왕이라는 관점이 지배했다. 이는 대체로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모든 문제에 있어 소비자가 항상 옳은 건 아니다. 과도해진 소비자의 권리가 좋은 음식문화를 망쳐놓고 있다.
 

먹을거리에 있어서만큼은, 느림보다는 작은 게 더 중요하다. 작으면서 동시에 느린 음식이 좋은 음식이다. 작은 음식은 손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귀하고 구하기 힘들다. 큰 음식은 공장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값이 싸고 풍부하다.
 

하지만 이제는 작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작은 음식을 되찾는 길은 손[手]을 되살리는 것이다. 우리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손의 가치를.
 

 

글·손일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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