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울릉도는 젊다. 섬의 나이도 젊고, 불끈 치솟은 산봉우리와 천태만상의 기암괴석도 젊고 기운차다. 우리나라 유일의 원시림지대가 있는가 하면, 비싼 생수보다 더 물맛 좋은 천연수가 곳곳에 흐른다. 섬 전체를 에워싼 바다의 빛깔은 눈이 시리도록 푸른 쪽빛, 비취빛, 에메랄드빛이다. 이처럼 싱그럽고 건강한 자연을 품은 울릉도는 걸어서 여행하기에 딱 좋은 섬이다.
사실 걷기를 싫어하거나 주저하면 울릉도의 깊은 속내를 들여다보기가 어렵다. 지형이 험한 울릉도에는 차량통행이 불가능한 산길과 해안산책로가 적지 않은 탓이다. 게다가 울릉도에는 아주 매혹적인 트레킹 코스가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수전~석포 간의 옛길은 울릉도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고의 트레킹 코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힐 만하다.
현재 울릉도에는 길이 39.8킬로미터의 해안일주도로가 있다. 국가지원지방도 제90호로 지정돼 있는 이 일주도로 개설공사는 1963년에 시작된 뒤로 40년 넘게 계속됐다. 그런데 동쪽 해안의 섬목과 내수전 사이의 4.4킬로미터 구간은 여전히 개통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자동차를 타고 울릉도 육로관광에 나선 외지인들은 섬목이나 내수전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튼튼한 두 다리를 이용하면 완벽한 울릉도 일주여행이 가능하다. 자동차도로가 없는 내수전과 석포 사이에 일주도로보다 더 운치 있고 아름답고 편안한 옛길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내수전~석포 옛길은 일주도로가 개설되기 전의 오랜 옛날부터 울릉도 동북부와 동남부 지역의 주민들이 서로 왕래할 때 이용해온 길이다. 이 길의 가장 큰 매력은 산중 숲길의 소슬한 운치와 바다의 장쾌한 멋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줄곧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면서도 창망한 바다가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바라보인다. 바다 저편에는 어느 아버지와 아들이 더덕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죽도도 빤히 건너다보인다. 바로 그런 매력 때문에 이 길을 울릉도 최고의 트레킹 코스로 손꼽는 사람들이 많다. 산악자전거(MTB) 동호인들 사이에는 울릉도 최고의 MTB 코스로도 유명하다.

내수전~석포 옛길은 어느 쪽에서 출발해도 걷기가 수월하다. 동네 뒷산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2시간쯤만 걸으면 반대편의 종점에 닿는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이 길을 더듬고 싶거든 내수전 쪽보다는 석포 쪽을 출발지로 삼는 게 좋다. 내수전에서 출발하면 와달리 갈림길을 지날 즈음부터 북면 표지판 부근까지 완만한 오르막길이 한동안 계속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워낙 숲이 울창하고 풍광이 아름다운 데다 어떤 오르막길도 잠시 멈춰서 크게 심호흡 한번 하고 나면 가뿐하게 올라설 수 있다.
울릉도 동북부 해안의 가파른 벼랑과 산허리를 따라가는 내수전~석포 옛길은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진다. 주민들보다는 걷기여행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서 초행인 사람들도 헛갈리지 않을 정도로 길은 뚜렷하다. 딱히 위험하거나 몹시 비탈진 구간도 거의 없다. 길은 산 옆구리에 비단을 두른 듯 자연스럽고 율동감이 넘친다. 바닥에는 녹색융단 같은 이끼와 오랜 세월 쌓인 낙엽이 두툼하게 깔려 있어 발바닥에 와닿는 감촉도 부드럽고 푹신하다.
이 조붓한 옛길을 에워싼 숲은 원시적인 야성과 정갈함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너도밤나무, 섬피나무, 섬잣나무 등의 울릉도 특산식물과 동백나무, 굴거리나무 등의 상록수, 그리고 고비와 관중 같은 양치식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원시림의 청신한 기운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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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여행 동호회를 통해 오랫동안 오지탐험과 걷기여행을 즐겨왔다는 박수연(41) 씨는 “제가 우리나라에서 걷기 좋다는 길은 웬만큼 가봤는데, 이곳처럼 숲 좋고 풍광이 아름다운 곳은 처음”이라며, “나중에 기회가 되면 MTB를 타고 다시 한번 이 길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이맘때쯤의 내수전~석포 옛길에서는 울릉도 특산식물 중 하나인 섬말나리의 어여쁜 자태가 여기저기서 쉽게 눈에 띈다. 백합과에 속하는 섬말나리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여러 나리꽃 가운데서도 솔나리, 하늘나리, 털중나리와 함께 자태가 곱기로 유명한 야생화다. 특히 섬말나리는 울릉도에서만 자라는데, 6~8월에 주황빛을 머금은 노랑꽃을 피운다. 그래서 녹음 짙은 숲에 한두 송이만 피어 있어도 사람들의 눈에 띈다. 또한 꽃잎에는 반점이 깨알처럼 찍혀 있고, 꽃술은 나 보란 듯이 활짝 젖혀져 있다. 그 때깔이 우아하면서도 도도한 귀부인을 닮았다.
내수전~석포 옛길의 중간에는 정매화골이 있다. 인정 많은 주막집 여인이었던 정매화라는 사람이 살던 곳이어서 그런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이 계곡에는 수백 미터 지하에서 끌어올린 암반수보다 더 깨끗하고 시원한 계류가 폭포수처럼 기운차게 흘러내린다.
현재 정매화골 쉼터가 조성돼 있는 이곳에서 맨 마지막으로 살았던 사람은 이효영 씨 부부였다. 68세 때인 1962년에 3남매를 데리고 이곳으로 들어온 이 씨 부부는 1981년에 이곳을 떠나기까지 19년 동안 폭설, 폭우 등의 기상악화로 조난한 사람 3백여 명을 구조했다고 한다. 이 씨 부부가 살던 집터에는 이제 아담한 정자와 피크닉 테이블이 들어서 있어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쉼터 옆 바위틈에서는 맑은 샘물이 계속 솟아나는데 무색, 무미, 무취의 물맛이 가히 일품이다.
내수전전망대 아래의 포장도로 종점을 출발한 지 1시간쯤 지나면 길고도 나직한 고갯길을 넘어 북면 땅에 들어선다. 바다에서 곧장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스럽고, 이따금씩 길가의 너덜(온통 바윗돌로 뒤덮인 산비탈)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풍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순식간에 씻어준다. 곧게 뻗은 소나무들이 열병하듯 늘어선 숲을 지났다면 내수전~석포 옛길 트레킹 코스의 종점이 지척이다.
솔숲을 빠져나오자마자 두어 해 전에 콘크리트로 포장된 찻길의 삼거리에 들어선다. 이곳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로 곧장 가면 ‘정들깨’라고도 불리는 석포마을이고, 왼쪽 길로 약 2킬로미터쯤 더 가면 죽암마을 바닷가에 당도한다. 좀 더 트레킹을 즐기고 싶다면 석포 쪽의 길을 택하는 게 좋고, 한시바삐 탁 트인 바다에 안기고 싶으면 죽암마을로 내려서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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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해안절벽 위에 올라앉은 석포마을에서는 지척의 죽도는 물론이고 날씨 쾌청한 날에는 독도까지도 육안으로 또렷이 보인다. 그러니 이 마을 사람들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인들의 망발에는 누구보다도 크게 분노하게 마련이다. 석포마을 서쪽에 이웃한 북면 죽암마을은 바닷가 풍광이 빼어난 마을이다. 일주도로를 사이에 두고 바로 앞쪽에는 둥글둥글한 몽돌로 뒤덮인 죽암해수욕장이 있고, 근처의 얕은 바다에는 딴바위(일명 죽암)와 삼선암 등의 기암괴석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남태평양의 어느 휴양지를 연상케 하는 바다 빛깔이다. 옥빛, 에메랄드빛을 띤 바닷물이 마치 심산유곡의 계류처럼 맑고 시원하다. 손가락만한 크기의 치어떼가 헤엄치는 모습도 훤히 들여다보인다. 게다가 죽암해수욕장 옆쪽에는 늘 수량이 풍부한 죽암천이 바다로 흘러들기 때문에 담수욕과 해수욕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마침 날씨 좋은 초여름 날의 해질녘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황홀하고도 눈부신 해넘이와 저녁노을까지 감상할 수도 있다.
글과 사진·양영훈(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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