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봉화군 석포면은 경상북도의 삼수갑산이다. 태백산 문수봉을 비롯해 청옥산, 비룡산, 오미산, 연화봉, 삼방산, 묘봉 등 해발 1000m 이상의 녹록지 않은 고봉들이 장성(長城)처럼 에워싸고 있다. 석포면 일대를 여기저기 둘러보면, ‘도회에서 멀리 떨어져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변두리나 깊은 곳’이라는 두메의 사전적 의미를 실감할 수 있다.
대개 두메는 산골을 말한다. 그래서 두메와 두메산골은 동의어로 쓰인다. 두메산골 석포면에서는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우거진 숲과 육중한 산봉우리의 연속이다. 외부와 연결되는 찻길도 두 갈래뿐이다. 하지만 마을과 마을 사이에는 아주 오래된 길들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고, 대부분의 길들은 물길을 따라 이어진다.
대체로 물 따라 가는 길은 자연풍광이 수려하다. 또한 그 길에서는 걷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편안해진다. 물은 모든 생명의 시원(始原)이기 때문이다. 태곳적 자연미가 살아있는 석포면 일대에는 풍광 좋고 마음 편한 길이 많다. 특히 석포면 소재지에서 승부역까지 낙동강의 물길을 옆구리에 끼고서 12km가량 이어지는 길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강변 트레킹 코스다. 물길의 흐름을 쫓는 길은 쉴 새 없이 휘어지고 구불거리긴 하지만, 힘에 부칠 정도로 비탈진 구간은 거의 없다. 물길 건너편에는 경북 영주와 강원 태백의 철암 사이를 잇는 영동선(옛 영암선) 철길이 길동무처럼 나란히 달린다. 게다가 석포와 승부 사이의 길에서는 차량 통행량이 적고 민가와 마을도 뜸하다. 그래서 한가롭고 고즈넉한 정취를 만끽하면서 걷기 여행이나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기에 최적지로 꼽힐 만하다.
석포면 소재지를 처음 찾은 이들은 그곳의 두메산골답지 않은 풍경에 의아스러운 눈빛을 감추지 못한다. 거대한 규모의 제련소와 줄지어 늘어선 아파트가 맨 먼저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1970년대에 아연괴, 황산 등을 생산하는 석포제련소가 들어선 뒤로 그와 관련된 건물과 시설이 적지 않다. 거대한 굴뚝에서 뽀얀 수증기를 내뿜는 제련소는 여전히 정상 가동되고 있어서 석포면 소재지의 규모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보이진 않는다.


강 저편에 우뚝한 제련소만 지나면, 금세 길은 무인지경이나 다름없는 산중으로 빨려 들어간다. 메마른 겨울산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흔들고 옷섶을 파고드는 삭풍이 섬뜩하다.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은 한 조각의 잔설도 없을 정도로 메말라 있다. 그나마 겨울철 특유의 풍정을 느끼게 하는 것은 꽁꽁 얼어붙은 강물이다. 오랜 가뭄 탓에 수량은 넉넉하지 않지만, 바위에 부딪치고 여울을 타넘으면서 쏟아내는 물소리는 힘찬 행진곡처럼 두 다리에 활기를 북돋워주는 듯하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동심으로 돌아가 얼음을 지치는 재미도 쏠쏠하다. 풍광이 아름답고 비탈길이 별로 없는 이 길은 걷기가 수월해서 실제보다도 훨씬 짧게 느껴진다.
석포역을 출발해 5개의 다리를 건너면 어느덧 승부리 소재마을에 당도한다. 소재마을에서 길의 종점인 승부역까지는 도보로 10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승부리는 승부동, 소재, 결둔 등 3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주민은 40가구에 70여 명가량 되지만 1, 2, 3반으로 나뉜 마을이 워낙 넓고 인구는 적어서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승부리 주민들이 가장 빈번하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때는 요즘 같은 겨울철이다.
1998년부터 매년 겨울철에는 태백 추전역, 봉화 승부역, 영주 풍기역 등을 거치는 관광열차인 ‘환상선 눈꽃열차’가 한시적으로 운행된다. 이 눈꽃열차가 가장 오랜 시간 정차하는 데가 바로 승부역이다. 하루에 한 번씩 눈꽃열차가 들어서면 내내 조용하던 산골마을은 오일장처럼 시끌벅적해진다. 역 아래 강가에는 콩, 팥, 수수 등의 잡곡을 파는 풍물시장이 들어서고, 강 건너편 산비탈에는 따뜻한 파전과 국수 한 그릇에 막걸리를 곁들이며 추위를 녹일 수 있는 먹을거리 장터가 문을 연다. 장터의 여기저기서 도시 사람과 시골 어르신들 간에 언짢지 않은 승강이가 벌어지고, 강 위의 작은 썰매장에서는 어른 아이가 뒤섞여 즐거운 한때를 보내다 아쉬운 발길을 되돌린다.
이윽고 1시간 30분의 체류시간이 끝나고 승객을 실은 눈꽃열차는 각금굴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만다. 모두에게 아쉬웠던 시간은 그렇게 끝나고, 승부역과 마을은 다시 절간처럼 적막해진다. 그래도 정을 나눌 수 있었기에 남은 사람들의 낯빛은 밝아 보였다. 팔다 남은 잡곡을 등에 지고 귀가하는 어느 노부부의 얼굴에서도 엷은 미소가 사라지질 않았다.
승부역은 1955년 태백지역의 석탄 수송을 위한 영암선(철암~영주) 철도가 개통되면서 생겨난 역이다. 전쟁 직후에 개통된 영암선 구간은 지세가 몹시 험해서 55개의 다리를 놓고 33개의 터널을 뚫는 난공사 끝에 완공됐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직접 승부역까지 내려와 개통식을 열고 친필로 새긴 ‘영암선개통기념’비를 역사 부근의 언덕에 세우기도 했다. 영암선은 1963년에 철암선, 황지본선, 강원북부선 등과 통합되어 영동선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승부역 플랫폼에 놓인 빗돌에는 ‘승부역은 하늘도 세 평이요/ 꽃밭도 세 평이다/ 영동의 심장이요/ 수송의 동맥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1965년에 이 역에서 근무했던 한 역무원이 쓴 구절이라고 한다. 험산준령 사이의 옹색한 협곡에 자리한 승부역의 지형적 특징을 명료하게 표현한 글귀다. 그것을 읽는 순간, 길을 걷는 동안 한 번도 실감하지 못한 단절감이 불현듯 느껴졌다.
승부역에서는 더 가고 싶어도 갈 길이 없다. 여기서 낙동강 하류 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철길뿐이다. 그러므로 이제 해야 할 일은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거나, 자주 오지 않는 열차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기다림이 지루하지는 않다. 뭔가를 이뤘다는 성취감이 적지 않거니와 간간이 만나는 마을 주민과 역무원의 따뜻한 인정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글·사진 양영훈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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