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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가 체결되자, 국내 포도 농가들은 경쟁력을 잃고 곧 망할 것이라는 위기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란 생각으로 품종개발과 재배기술 혁신으로 칠레의 값싼 포도를 따돌리며 고소득을 올리는 농가들이 늘고 있다.

특히 경북 김천의 포도 농가들은 자신감에 차 있다. 단순히 싼 값으로 밀고 들어오는 외국산 농산물에 맞서기 위해 품질개량에 주력해왔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아무리 외국산 포도 값이 저렴하다지만 국내산에 비해 신선감이 떨어진다”면서 “맛과 품질에서 뛰어나 비싼 값에도 잘 팔려 소득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자랑한다. 김천은 포도의 종가답게 친환경 재배는 물론이고 삼색포도, 사이버 포도농장 등 새로운 형태의 비전을 제시하며 전국 연간 생산량의 11%인 4만 5000톤을 생산하고 있다.

김천 봉산면 시골포도원(www.sigolpodo.com) 에는 항상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은민아 이게 내 포도나무야. 포도가 주렁주렁 열렸는데 따먹으면 맛있겠지?”라고 오빠인 영민(7)이가 자랑한다. 아빠 유경열(42·대구 대명동)씨는 영민이의 유치원 입학기념으로 포도나무를 선물했다.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농장에서다. 인터넷으로 분양받은 포도나무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매주 찍은 사진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준다. 도시의 안방에 앉아서도 포도나무의 성장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가끔 나들이 삼아 농장을 직접 찾아가 잠자리, 개구리 등을 잡고 손수레를 타고 노는 등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사이버 농장·삼색 포도 등 아이디어 넘쳐
유씨는 “어느날 퇴근을 했는데 영민이가 컴퓨터를 보며 파란 포도가 열렸다고 기뻐하는 것을 보고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면서 “처음엔 솔직히 인터넷 분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문도 가졌지만 열매를 맺는 과정 등을 유심히 지켜보는 아이를 보고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이버 농장’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나무가 어떻게 자라고 열매를 맺으며, 수확하는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자연 생태학습도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농장이다.

올봄 처음으로 사이버 농장을 통해 포도나무를 분양한 시골포도원 정창화(61)씨는 “처음 50명에게 분양을 할 계획이었는데 100여 명이 주문을 해와 놀랐다”며 “앞으로 점차 분양을 늘려 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봄에 미리 분양을 하니까 포도농가는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고, 소비자는 싼값에 맛있는 포도를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단다. 또한 아이들에게 농산물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자연과 가까워질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나무 한 그루에는 40∼50 송이의 포도가 열린다. 나무로 분양 받으려면 30만 원 정도로 너무 비싸다. 그래서 김천농업기술센터에서는 ‘송이분양’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6만 원에 거봉 12송이를 분양하는 식이다. 소비자가 부담없이 분양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정씨는 “환갑이 지난 나이에 무슨 사이버 농장이냐고 마누라가 핀잔을 주었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면서 “김천시에서 컴퓨터, 디지털카메라, 홈페이지 운영 등 다양한 지원과 지속적인 교육을 받은 것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와 같은 교육지원이 직접 돈 몇 푼을 지원하는 것보다 큰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도 정부에서는 지속적으로 기술지원과 교육지도 등을 해줘야 변화하는 시대에 농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포도 맛이 꿀맛, 날개돋친 듯 팔려
 김천에서 생산되는 포도알은 왕눈깔사탕보다 크다. 여자들은 한 입에 넣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다. 한 알을 넣고 입을 다물자, 신선함과 더불어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입 안 가득 고이는 포도의 즙은 너무 달콤해 ‘꿀’맛이다.

백화점 과일매장에서 김천 거봉은 ‘5스타(Star)’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가격도 보통 거봉보다 훨씬 비싼 데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친환경 재배로 안전한 데다 맛도 좋기 때문이다.

신세계백화점 조용설 매입 바이어는 “원래 하우스에서 생산되는 거봉포도는 ‘김천’이 최고다. 재배기술 혁신 등 농민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김천의 거봉은 유명세를 타고 판매도 잘되고 있다”면서 “소비자들은 맛있고 신선함 등을 고려한 명품 농산물을 찾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런 소비자들의 추세에 맞추어 우리 농산물도 ‘명품화’하는 등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SET_IMAGE]3,original,right[/SET_IMAGE]김천포도가 명품으로 탈바꿈된 데에는 한·칠레 FTA 체결이 오히려 기폭제가 됐다. 값싼 칠레산 거봉포도가 대거 유입되면서 맞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김천시와 지역 농민들은 팔을 걷어붙였다. 해외 유명 포도 산지를 직접 방문해 선진 재배기술을 익히고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다. 열매가 익어갈 무렵 나뭇가지의 껍질을 벗겨내 완숙도를 빠르게 하는 ‘박피 기술’을 이용해 당도도 높고 출하도 다른 지역에 비해 빠르다. 특히 김천에서 생산되는 거봉포도는 거봉의 원산지인 일본에까지 수출할 정도로 세계적인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포도산업특구로 지정된 김천시는 수입개방에 대비해 다각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2009년까지 70억 원을 들여 산지 유통센터, 포도 터널, 체험장, 포도 문화거리를 만들어 연간 1000억 원 정도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올린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또한 해마다 2000여 명을 초청해 포도따기 체험을 비롯해 4만 5000톤에 이르는 포도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수도권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 야구장 등으로 직접 찾아가 판매한다. 유통 중간이윤을 줄여 농가소득을 높이자는 취지다. 덕분에 소비자는 싼값에 신선한 포도를 구입할 수 있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김영우 김천시 농산물 유통담당은 “산지 유통센터와 상징탑은 이미 만들어졌고 올해 포도터널과 체험장을 완공하는 등 인프라 구축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며 “김천이 세계 최고의 포도생산 1번지로 자리매김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와 농민이 힘을 모아 우리 농산물의 미래를 설계한다면 FTA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농촌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글 사진 한준규 기자

 

미래를 준비하는 선구자 박희광 씨


삼색포도 개발... 시장 평정 자신감

[SET_IMAGE]4,original,left[/SET_IMAGE]“실패를 두려워한다면 어떻게 새로운 것에 도전하겠습니까?”
거봉포도로 한창 잘 나가던 4년 전, 값싼 외국산 포도가 몰려오는 현실에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때라고 결심해 ‘삼색포도’ 생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박희광(47)씨.

까만 거봉, 초록의 청포도, 빨간 홍이슬 포도를 모아 예쁘게 포장한 삼색포도. 지난해부터 시장에 선을 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색깔이 아름다워 누구나 좋아했지만 조그만 문제가 있었다고 시인한다. 빨간 홍이슬 포도는 줄기가 말라야만 당도가 유지된다는 것. 하지만 소비자들은 줄기가 마르면 오래된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 항의가 빗발쳤다. ‘그냥 거봉포도를 생산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사서 고생하느냐’는 아내의 원망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당장 배가 고프다고 먹고 사는 것에 급급해 하면 미래는 없다는 신념으로 재도전에 나섰다.

“비록 올해는 성공을 이루진 못했지만 청포도와 홍포도의 품종을 거봉만큼 알이 굵고 단맛이 강한 것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내년에 수확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실패가 성공의 거름이 된다는 굳은 믿음을 갖고 있는 그는 오늘도 자식처럼 포도를 돌보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내년에는 박씨의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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